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베오울프', 영화의 미래를 보여주다

'요샌 3D 캐릭터도 상당히 리얼해 보이는데 꼭 영화배우가 나와야 영화인가?'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 몇 년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 감독은 곧 3D 캐릭터가 영화배우를 밀어낼 것이라고 했다. 조만간 영화배우들이 전부 실업자가 될 것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3D 캐릭터가 영화배우를 대신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란 얘기였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3D 캐릭터가 영화배우를 밀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3D 모델 퀄리티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졌다지만 실제 영화배우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눈을 만족시키기엔 아직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무조건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도 무조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는 맹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게임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등급이 있고 게임 중에도 성인용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게임이라고 하면 전부 어린이용인 것으로 생각한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카툰식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적인 캐릭터가 나오더라도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 2가지를 한데 합쳐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결국, 풀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려면 기술적인 한계에 도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라는 고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과도 부딪쳐야 하는 것.

로버트 저메키스의 풀 3D 애니메이션 영화 '베오울프(Beowulf)'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베오울프'를 보고 있으면 제작팀이 무엇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는지 한눈에 보인다:

'베오울프'는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어린이용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벗기기' 아닐까?

베오울프가 전라상태로 그렌델과 싸우는 것부터 의도된 연출로 보인다. 베오울프가 전라로 격투를 한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이래도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거냐'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알몸으로 격투를 해야만 한 베오울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을 뿐.

이 날씨에 불X이 많이 시렸을 텐데...ㅠㅠ



그런데, 베오울프 혼자서 벗고 설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고 느꼈나 보다.

왜냐면 안젤리나 졸리도 3D 누드파티(?)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오호라! 그러니까 다 내밀고 얘기하자 이거지?

안젤리나 졸리가 섹시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 없다.

애니메이션에 섹시한 여자 캐릭터가 나오는 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순수한 의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를 빼닯은 3D 캐릭터의 누드를 보면서 흥분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성인 관객들을 유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것으로 보일 뿐이다.



여기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앤써니 홉킨스는 뭐냔 말이다!

늙은 왕으로 나온 3D 앤써니 홉킨스까지 스트립쇼(?)를 한단 말이다!

그렇다! '베오울프'에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벗는다.

그렇다고 성기 등 재미있는 동네까지 죄다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금색 페인트를 칠한 '보디페인팅 상태'로 재미있는 데를 죄다 가리고 나오며, 베오울프의 전라 격투씬도 성기노출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교묘하게 편집했다.

이런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맞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베오울프' 제작팀은 이런 것에서 뭔가를 기대했던 것 같은 눈치다. 성기노출씬이 그대로 나오는 언컷(Uncut)버전이 나온다던 이야기가 괜히 나온 건 아니리라. 'Unrated' 스페셜 에디션 DVD 같은 걸 통해 결국은 나올지도 모른다.

성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헨타이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문제는 세 캐릭터가 나와서 낯 간지러운 수준의 스트립쇼를 하는 것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름모를 여자 캐릭터의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도 클로즈업 하더라.

이쯤되니까 어이가 없어지더라. 이걸 유머라고 넣은 건 아닐 게 아니냔 말이다. '야하다', '애들 보라고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걸로 보일 뿐이다.

비디오게임에서라면 어떻게서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해 볼 수 있겠지만 '베오울프'는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더라도 극장서 개봉한 영화인데 이렇게 유치하게 만들어도 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더라.

잠깐! 비디오게임이라고?

그렇다. 바로 비디오게임이다.

'베오울프'는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 비디오게임처럼 만든 것 같다.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 게 목표였던 것까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봐도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게임 중간에 들어가는 컷씬(Cut Scene)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거의 모든 걸 M등급(17세 이상 이용가) 비디오게임 수준에 맞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폭력수위도 그렇고 '섹시'한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테크모의 'DoA: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에서 '섹시'를 빌려와 캡콤의 '귀무자(Onimusha)'의 '액션'과 결합시킨 다음 배경만 기원후 5세기 덴마크로 바꿔놓으면 '베오울프'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나 뿐일까?

그렇다면, '베오울프'는 게이머들을 위한 영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베오울프' 제작팀은 성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한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다보니 M등급(17세 이상 이용가) 비디오게임 유저들의 눈에 들면 성인 눈높이에 맞춘 셈이라는 식의 기준을 정하고 여기에 맞춰 '베오울프'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3D 애니메이션'이라니까 '비디오게임'이 떠올랐고, '성인용'이라니까 'M등급 게임'이 떠오르자 이 두가지를 결합시켜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베오울프'가 기저귀를 떼기 위해 몸부림 친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위해서 말한 것처럼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이들용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훨씬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더라도 꼭 저렇게 눈에 띌 정도로 간지럽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냐는 생각은 해보게 된다.

3D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하면 '슈렉', '마다가스카', '해피 피트',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비 무비(Bee Movie)'와 같은 아동틱한 것이 많다보니 이들과 차별화 시키려다 이렇게 된 것 같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차별화 방법이 영 맘에 안든다.

바로 이것이 '베어울프'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다. 덕분에, 초반엔 영화에 제대로 빠져들기 힘들었다. 영화가 관객들을 제대로 이끌어 줬다면 적응시간이 짧아졌겠지만 '베오울프'는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냐'는 생각이 들 뿐 진지하게 볼 수 없었다.

성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와 같은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했다면 시작부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면 해결될 문제다. 관객들이 3D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잊고 빠져들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단지 그래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래픽은 아직까진 실사수준에 못미치더라도 판타지 영화를 그대로 3D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3D 세계라는 것만 제외하면 일반 영화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오울프'는 방법을 잘못 택했다. 3D 애니메이션이다보니 일반 영화처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잘못하다간 '베오울프'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몰리면서 성인들이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청 컸던 것처럼 보인다. 이렇다보니 오버를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3D세계에 쉽게 빠져들지만 성인들이 진지하게 애니메이션을 보도록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장 캐릭터들이 스트립쇼를 한다고 성인 관객들이 진지해지는 건 아니다. 성인 관객 눈높이에 맞춰야 성인들이 진지하게 볼 수 있다는 것까진 맞지만 캐릭터들이 툭하면 벗고 돌아다니고 출렁거리는 여자 캐릭터 가슴이나 클로즈업 하는 게 '성인 눈높이'인 건 아니다. '베오울프' 제작팀이 원한 게 무엇인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방법이 틀렸단 것이다.

하지만, 일단 고비를 넘기고 나면 많이 나진다. 영화에 빠져들기까지 걸린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게 문제라는 거지 그게 아주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간지러운 부분들이 지나간 이후부터는 3D 애니메이션이란 걸 잊고 제대로 '베오울프'를 즐길 수 있었다.

'베오울프'의 줄거리는 '바바리안'을 연상시키는 전사, 베오울프가 몬스터들을 때려잡는다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여느 판타지 영화와 비교하더라도 손색없을만 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 게 아니라 영화를 3D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으로 성인 관객들까지 사로잡으려다보니 초반엔 우왕좌왕도 했지만 방향까지 완전히 잘못 잡은 건 아니었다.



'베오울프'는 미래의 영화가 어떠할지 살짝 보여준 영화다. 몇 년전 조지 루카스가 말했던 '3D 캐릭터들이 영화배우를 대신하는 날'이 오면 이런 식이 될 것이라는 걸 로저 저메키스가 '베오울프'를 통해 직접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영화였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본다.

아직은 완벽한 수준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실사수준에 근접해가는 3D 캐릭터들을 '영화배우'로 받아들이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아직까지는 영화배우가 안나오는 '영화'엔 관심없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언젠가는 '꼭 실제 영화배우가 나와야만 하는 법은 없는 것 같다'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앞으론 액션/어드벤쳐, 공상과학, 호러, 코메디 등 다양한 쟝르의 3D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파이널 판타지'에 이어 '베오울프'까지 3D 애니메이션 영화는 판타지 쟝르가 전부였는데 앞으론 쟝르가 다양해졌으면 한다.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다음부턴 '어린이용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오버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베오울프'에서처럼 까놓고 보여줘야 '어린이용 아니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매번 이런 사람들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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