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판타지 영화를 본 뒤 '캐릭터들이 전부 동화에서 곧바로 뛰쳐나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에서 곧바로 나온 것처럼 보였다는 게 전부지 실제로 나온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캐릭터들이 진짜로 동화를 박차고 나온다면?
동화와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캐릭터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로 오게 된다면?
그것도 다른 데도 아니고 우질나게 바쁘고 불친절한 도시, 뉴욕에 오게 된다면?
디즈니의 코메디/뮤지컬 'Enchanted'는 이렇게 시작한다.
'Enchanted'의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지젤(에이미 애덤스)은 동물들을 불러놓고 멋진 왕자와의 결혼 얘기나 하는 '예비 공주님'이다.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동화세계의 지지배'다.
에드워드 왕자(제임스 마스덴)는 지젤을 만나자마자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는 친구다.
눈이 맞자마자 바로 다음날로 결혼식이란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식을 방해하려는 자가 있다.
바로, 에드워드 왕자의 양어머니, 나리사(수잔 서랜든)다.
지젤과 에드워드의 결혼을 저지하기 위해 지젤을 뉴욕으로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 아줌마 덕분에 지젤은 뉴욕으로 오게 된다.
만화 세계에서 쫓겨나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로 왔으니 당연히 만화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 변신했을 수밖에...
자, 그렇다면 에드워드 왕자는 어떻게 할 건데?
결혼 좀 쉽게 해보나 했더니 결혼식 직전에 신부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찾으러 가야겠지?
아무튼, 월컴 투 뉴욕이다.
그런데...
동화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친구들이라서 한가지 고질적인 버릇이 있다.
틈만 났다 싶으면 노래를 부르는 것!
기회가 왔다 싶으면 저렇게 길바닥에서 노래를 불러 제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年'인줄 알 것이다.
평범한 뉴요커, 로버트(패트릭 뎀시)의 눈에도 저런 행동을 하는 지젤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지젤이 전부가 아니다.
틈이 나는대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친구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지젤과 에드워드의 '동화 이야기'는 지지리도 사실적인 뉴욕시로 이어진다.
지젤과 에드워드 모두 '이상한 곳'에 오게 됐다는 것까진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파악이 안되고 있는 친구들이다보니 뉴욕시에 와서도 동화세계에서 하던 대로 그대로 생활한다.
아, 물론 노래는 틈만 나면 부른다. 이들의 고질적인 노래 부르기 버릇 덕분에 영화까지 뮤지컬 비스무리해졌다. 'Enchanted'의 쟝르가 뮤지컬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들이 수시로 노래를 부르던 것을 현실세계로 옮겨놓자 영락없는 뮤지컬처럼 보인다.
자꾸 노래를 부르는 지젤을 로버트가 말리면서 '노래를 부를 필요까진 없지 않냐'고 할 때 한참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웃겨서라기 보다 내가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로버트가 말했기 때문이다:
말로 해도 되는 데 왜 노래까지 부르고 난리야?
노래만 부르면 다행이게?
만화의 세계에서 동물들을 불러모으던 기술이 뉴욕에서도 통할줄이야!
그러나...
뉴욕시에서 불러모을 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겠지?
그렇다면, 뉴욕을 대표하는 동물이 무엇일까 하나 뽑아보기로 하자.
그렇다. 바로 쥐다.
뉴욕에서 동물들을 불러봤자 만화의 세계에서처럼 컬러풀한 동물은 기대할 수 없는 법. 지젤이 부르니까 뉴욕에 사는 동물들이 모이긴 했는데 쥐, 비둘기, 바퀴벌레, 파리떼가 온다.
'Enchanted'는 이런 식이다. 동화의 세계에서 온 지젤과 에드워드가 낯선 도시, 뉴욕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을 코믹하게 그린 판타지 영화인 것.
아무래도 아이들을 겨냥한 영화인만큼 성인들까지 웃기기엔 살짝 곤란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 전체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유치한 수준의 유머가 전부인 건 아니다. 동화속의 캐릭터들이 지독하게도 사실적인 뉴욕시에 나타났다는 설정부터 재미있는데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해프닝들 또한 흥미진진하다.
동화속 캐릭터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로 뛰쳐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속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정신이상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걸 따지지 말고 생각해 보자. 동화속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냔 말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상당히 로맨틱하다.
왕자와 공주 얘기가 나올테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로맨스보다는 유머 위주일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로맨스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
지젤과 에드워드 왕자의 로맨스 스토리가 전부였다면 아무래도 동화수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혼남, 로버트의 스토리가 얽히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여전히 동화같은 얘기인 것엔 변함없지만 '만난지 하루만에 결혼하는' 동화책 로맨스 수준이 전부가 아닌 것.
유머도 좋고 로맨스도 좋다지만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뭐니뭐니해도 에이미 애덤스의 공주연기다.
처음엔 공주역할을 맡기엔 어딘가 살짝 부족한 데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있으면 '에이미 애덤스=동화속 공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순진하고 맹한 데가 있으면서도 밝고 천진난만한 동화속 공주역할에 에이미 애덤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기 때문에 '노처녀 공주'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뮤지컬 배우처럼 노래와 춤도 잘하는 게 '디즈니 공주님' 역할에 딱이었다.
애덤스 이외의 배우들도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어린 딸을 둔 로버트역으로 나온 패트릭 뎀시도 생각보다 패밀리 영화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 왕자로 나온 모델출신 배우 제임스 마스덴의 희극연기도 훌륭했다. 마녀 나리사로 나온 수잔 서랜든은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저 그녀의 모습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스타더스트'에서의 미셸 파이퍼는 상대가 안된다.
살짝 아쉬웠던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특수효과 퀄리티가 약간 의심스러웠다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Enchanted'는 특수효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이런 영화를 보고싶다면 '트랜스포머스'나 '베오울프'를 보면 되는 거다. 때문에, 'Enchanted'의 특수효과 퀄리티가 약간 수상하단 것 정도는 거의 신경에 쓰이지도 않는다. 특수효과 같은 건 이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왕자님과 공주님이 뉴욕에 들이닥쳤는데 지금 특수효과가 문제겠수?
'Enchanted'는 금년에 본 코메디 영화 중에서 최고로 재미있게 본 영화다.
금년이래봤자 이젠 한달 하고 며칠 정도 남은 게 전부니까 그 사이에 대단한 코메디 영화가 또 나오진 않겠지?
한가지 확실한 건, 금년에 본 영화들에 나온 여자주인공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누구냐고 하면 주저없이 지젤을 꼽겠다는 것이다. 2007년 최고의 여배우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얘기 안해도 알 수 있으리라.
아, 물론 이런 영화에 좋은 주제곡이 없다면 허전하겠지?
'공주영화'에 딱 어울리는 가수, 캐리 언더우드의 'Ever Ever After'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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