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9일 금요일

'로스트 라이언즈', 말이 너무 많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로스트 라이언즈(Lions for Lambs)'를 본 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로스트 라이언즈'라는 제목도 순전히 거짓말이다.

사자 나온단 말이다!



아무튼, 영화로 돌아가자.

'로스트 라이언즈'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 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수 스테판 맬리(로버트 레드포드)의 이야기다.

둘 째는 공화당 상원의원 재스퍼 어빙(톰 크루즈)과 방송사 여기자 재닌 로스(메릴 스트립)의 이야기다.

세 째는 미 육군에 입대해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스테판 맬리 교수의 제자 2명의 이야기다.



이쯤 됐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위의 세 가지 이야기가 만나게 될 것이란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딱 여기까지 볼만하다. 3개의 멀티 플롯라인을 하나로 모이게끔 셋업하는 데까지는 흥미진진한 편이다. 하지만, 수다 토너멘트를 하듯 대화만 열나게 하는 영화로 변신하면서 맥이 풀려버린다. 오죽하면 영화를 보다 말고 양말이라도 벗어 입을 콱 막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겠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정치얘기하는 영화니까 대화가 많은 건 이해해야 하지 않냐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로스트 라이언즈'는 대화가 많은 정도가 아니다. 재스퍼 어빙과 재닌 로스는 재스퍼의 D.C 사무실에서 시작부터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열나게 수다를 떨다가 끝나고, 캘리포니아의 대학교수 스테판 맬리도 농땡이 까는 대학생 토드(앤드류 가필드)를 붙잡고 열나게 수다를 떤다.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투입된 맬리교수의 두 제자도 크게 다를바 없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캘리포니아, D.C, 아프가니스탄에서 2명씩 짝을 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수다를 떨다가 끝나는 영화라고 보면 된다. 대화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화 빼면 남는 게 없는 영화라는 것이다.



아무리 대화가 많더라도 정치영화니까 그래도 흥미로운 게 많지 않냐고?

그렇기를 바랬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굵직굵직한 문제제기를 하는 식이었다면 별 문제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로스트 라이언즈'도 원래는 이런 식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3개의 플롯이 하나로 합쳐진 다음부터는 대화가 전부다. 영화를 계속 끌어줄만한 흥미로운 줄거리도 사라지고 모든 게 대화에 묻혀버린다.

대학교수와 대학생, 정치인과 기자, 아프가니스탄의 군사작전 이야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 것은 아무래도 아프간 군사작전이었다. 세 플롯이 여기로 모이기 때문에 영화의 메인 줄거리를 쫓아가다 보면 당연히 아프간 군사작전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될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전투씬이 많은 액션영화가 될 것을 기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교수와 공화당 상원의원 모두 아프간에서 개시된 새로운 군사작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만큼 줄거리가 아프간 군사작전을 중심으로 바짝 조여질 것으로 생각했다. 대학교수가 학생에게 설교를 하고 공화당 상원의원과 기자가 전쟁을 주제로 서로 잽을 주고받는 것까지는 당연히 나오겠지만 세 플롯이 모인 아프간 군사작전이 메인 이벤트인 것엔 변함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메인으로 생각했던 줄거리는 흐지부지 되고 대학교수와 학생간의 대화내용, 정치인과 기자간에 주고받는 인터뷰 내용이 메인으로 둔갑한다. 처음엔 이들의 대화내용이 흥민진진해 보이지만 대화가 상당히 길어지면서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까진 좋은데 메인은 이게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메인이었다.



지긋지긋할 정도의 대화를 통해 뭔가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까지는 맞다. 하지만, 기나 긴 대화가 유일한 전달방법이다보니 대화내용을 듣다가 지치게 만든다. 뭔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는 영화라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끝이 없어 보이는 대화를 유일한 전달방법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도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전달할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3개의 플롯라인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메인 줄거리를 계속 진행하면서 곳곳에 '메세지'를 심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방법을 찾아내는 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로스트 라이언즈'를 보고나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주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것 하나로 모든 걸 다 해결하려고 했느니 말이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영화를 보라고 만든 게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나누는 대화내용을 들으라고 만든 영화다. 하고싶은 말 다 하겠다는 것 딱 하나 빼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만든 영화다. 영화가 재미있든 없든 상관 안하겠다는 식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목적은 단 한가지: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말 다 쏟아놓는 것이다.

전달하고픈 메세지는 그대로 남겨놓더라도 이것보다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로스트 라이언즈'를 보고 있으면 과연 이 사람들이 '영화의 재미' 따위에 신경을 쓰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재미가 전부라는 건 아니다. 오락영화는 재미가 전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로스트 라이언즈'는 오락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로스트 라이언즈'의 최대무기이기도 하다. 포장 하나는 멋지게 했다. 톰 크루즈, 로버트 레드포트, 메릴 스트립 정도라면 1류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정치영화에 함께 나왔다니까 괜시리 묵직한 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체는 그게 아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쉬지 않고 움직이던 배우들의 입밖에 기억나는 게 없는 영화다.



정치인과 기자의 인터뷰 내용에 관심이 많다면 TV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찾아 보면 된다.

대학교수와 학생간에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게 흥미진진해 보이는 사람은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지한 대화를 나눌 교수를 직접 찾아보면 된다.

육군에 자원입대한 2명의 대학생 이야기? 이보다 훨씬 진한 감동이 전해지는 전쟁영화가 많으니 잘 찾아보면 된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토론이 테마 아니냐고? 토론? 그 흔해빠진 토론? TV를 켜도 토론, 사람들끼리 만나도 토론, 인터넷에서도 토론, 여기도 토론, 저기도 토론판이다.

'로스트 라이언즈'를 극장까지 가서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관련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사람/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인 것 같은데 정작 정치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사람들이 볼 땐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그럴싸 하지만 실제로는 별 것 없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는 것.

공화당, 민주당, 반전영화다 닝기미다 하는 것은 다 둘 째 문제다.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로스트 라이언즈'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 자체에 있다. 영화 보다말고 양발 벗어들고 스크린 앞으로 돌진하는 사태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인데, 정치에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은 '로스트 라이언즈'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정치에 관심 있더라도 대화가 전부인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 또한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렇다고해서 아주 남는 게 없는 영화는 아니다. 난 적어도 하나는 건졌다.

그게 뭐냐고?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리턴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UA 로고가 다시 돌아왔다.

제임스 본드 팬들에겐 매우 정겨운 로고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기대에 못미쳤지만 오랜만에 UA 로고를 본 걸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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