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네스호에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목이 상당히 긴 친구 말이다.
네스호 괴물이라고 하면 얼마 전까지 TV에서 볼 수 있었던 토요타 자동차의 트럭광고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네스호에 산다는 이 괴물의 이름은 '네시(Nessie)'다. 이름이라기보다는 '네스호에 사는 녀석'이라는 의미 정도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그런데, 알고보니 이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크루소.
크루소? 네스호 물속에 산다는 녀석의 이름이 크루소였어?
그런데 누가 그런 이름을 지었냐고?
2차대전 당시 꼬마였던 앤거스(알렉스 에텔)다.
어쩌다가 앤거스가 네스호 괴물의 이름을 짓게 됐냐고?
바닷가에서 우연히 알을 발견한 앤거스가 괴물에게 이름까지 지어주며 집에서 키웠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네스호 괴물이 된 크루소는 원래 앤거스의 애완동물이었다.
그렇다. '워터 호스'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정체불명의 알을 집으로 가져와 애완동물처럼 키우다가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호수에 풀어놓은 무책임한(?)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딕 킹-스미스의 소설을 읽지 않았거나 영화를 보지않은 사람들은 들어본 적 없는 게 당연하다. 바로 이게 '워터 호스'의 줄거리니까.
'워터 호스(The Water Horse: Legend of the Deep)'는 '베이브(Babe)'를 포함한 여러 편의 패밀리 소설로 유명한 영국 작가 딕 킹-스미스(Dick King-Smith) 원작의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그렇다. '워터 호스'도 또다른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다.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긴 또 하나의 영화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 이후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십중팔구는 미달이다보니 '워터 호스(Water Horse: Legend of the Deep)'에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겨냥한 그렇고 그런 패밀리 판타지 영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워터 호스'는 달랐다.
'워터 호스'는 '스타더스트', '골든 콤파스'와 같은 블록버스터 수준은 아니지만 수준미달의 엉성한 판타지 영화는 아니었다.
'워터 호스'도 거대한 몬스터가 나오는 판타지 영화인 것까진 맞지만 영화의 테마는 어린 소년 앤거스와 그의 거대한 '애완동물' 크루소와의 우정이다. 화려한 특수효과보다 평범한 가족이 2차대전을 겪으면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 과정이 더욱 눈에 띄는 영화다. 지지고 볶고 번쩍거리는 것 빼면 남는 게 없는 수준 낮은 판타지 영화가 아닌 것.
어린 소년이 바닷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줏었다가 가족들 몰래 엉뚱한 애완동물을 키우게 된다는 줄거리는 참신하다고 하기 힘들다.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금새 짐작이 가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2006년 개봉했던 판타지 영화 '에라곤(Eragon)'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도 또다른 문제다. '워터 호스'(1990) 소설이 '에라곤' 소설(2003)보다 먼저 나왔지만 원작소설의 순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에라곤을 모방한 영화'로 생각하기에 딱 알맞게 됐다.
하지만, '워터 호스'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영화다. 몬스터가 나오는 것까진 맞지만 판타지보다 패밀리쪽에 더욱 가까운 영화다. 전쟁으로 상처입은 앤거스 가정에 엉뚱한 애완동물 크루소와 잡역부 루이스(벤 채플린)가 나타나면서 이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메인 테마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 안되는 판타지 이야기가 전부인 게 아니라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영화인 것.
이렇게 보면 '에라곤'처럼 보이고 저렇게 보면 몬스터 버전 '프리 윌리(Free Willy)'처럼 보이며, 어떻게 보면 'E.T'와도 비슷해 보이는 영화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주인공 앤거스역의 알렉스 에텔, 루이스역의 벤 채플린을 포함한 출연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흠잡을 데 없으며 3D 특수효과도 수준급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앤거스와 크루소의 끈끈한 우정과 전쟁의 상처에서 서서히 회복하는 앤거스 가족의 이야기는 성인들도 지루한 줄 모르고 볼 수 있을만큼 흥미진진하다.
그래봤자 '워터 호스'도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인 게 전부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면에서 완벽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것보단 훨씬 잘 만든 영화였다.
어떻게 보면 금년에 나온 판타지 영화 중에서 가장 나은 영화인지도 모른다. 규모면에선 아무래도 밀리겠지만 007년에 본 판타지 영화중에선 '워터 호스'가 단연 최고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시너드 오코너가 부른 주제곡 'Back Where You Belong'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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