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8일 금요일

'클로버필드' - 미국 최악의 홈 비디오

맨하탄, 뉴욕.

평범한 하루가 저물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롭(마이클 스탈-데이빗)의 성대한 송별파티가 한창이고, 롭의 친구 허드(T.J. 밀러)는 캠코더로 열심히 비디오 촬영 중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괴물'이 나타난 것!

느닷없이 출몰한 괴물은 닥치는대로 뉴욕시를 때려부수고 다닌다.

자유의 여신상도 목이 뎅그렁...



모두들 예상치 못한 괴물의 공격에 놀라 맨하탄에서 빠져나가느라 정신없다.

그러나, 롭의 여자친구 베스(Odette Yustman)가 부상당한 채 고립됐다는 걸 알게 된 4명의 일행은 베스를 구출하기 위해 맨하탄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송별파티에서부터 캠코더를 들고다니던 허드는 괴물의 공격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디오 촬영을 한다.

저런 상황에서 계속 비디오 촬영을 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 같다고?

상식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되는 게 맞다. 비디오 촬영을 할 생각을 한다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몬스터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촬영한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프로페셔널 비디오 저널리스트들도 허드처럼 못할 것이다.

하지만, '클로버필드'의 맨하탄은 일반 상식이 통하는 우리가 알고있는 맨하탄이 아니다. '몬스터 어택'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계속 비디오 촬영을 하더라도 '그런가부다' 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자세가 돼있어야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물론, 허드도 촬영을 집어치우고 도망다니는 데 몰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인데 빌어먹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하지만, 불쌍한 허드는 촬영을 그만두고 싶어도 못한다.

왜? Why?

허드가 촬영을 중단하면 영화도 거기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캠코더는 꼭 들고 다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끝나...ㅠㅠ

이게 무슨 소리냐고?

허드가 캠코더로 촬영한 아마츄어 홈 비디오가 바로 영화 '클로버필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클로버필드'는 아마츄어 홈 비디오처럼 촬영한 영화다.

덕분에 '클로버필드'는 흔들리는 카메라를 빼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카메라를 일부러 심하게 흔들고 이쪽 저쪽 마구 돌리면서 아마츄어 홈 비디오처럼 보이도록 촬영했기 때문에 정신없을 뿐만 아니라 나중엔 짜증까지 난다.

왜 이렇게 촬영했냐고?

'Blair Witch Project'처럼 흔들리는 아마츄어 홈 비디오 스크린을 통해 패닉상태의 현장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한 것이다.

현장에 있던 캐릭터들이 촬영한 홈 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만든 것까진 알겠는데, 구태여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내 생각은 'NO'다.

흔해빠진 몬스터 영화를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으니 참신한 아이디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흔해빠진 몬스터 영화라는 걸 감추기 위해 사용한 얇팍한 수법으로 보인다.

사실, 아마츄어 비디오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 프로페셔널 카메라맨이 촬영했든 우연히 지나가던 시민이 촬영했든 가장 중요한 건 '긴박했던 순간을 담은 비디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디오가 요샌 넘쳐난다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많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고 아수라장으로 변한 맨하탄의 실제상황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지난 동남아시아 쓰나미 사태 당시엔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촬영한 아마츄어 비디오들이 끊임없이 방송을 탔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땐 임베디드 리포터들이 전투상황을 생중계(?)했다. 작년 버지니아 테크에서 발생한 총기사건 역시 건물 주위를 지나던 학생이 카메라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이 CNN 등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아마츄어 홈 비디오 스타일 하나만으로 패닉상태의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살릴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도 줄거리도 없다시피한 단순무식 스타일의 몬스터 영화로 말이다.



줄거리가 없다시피 하다고?

'거대한 몬스터가 느닷없이 나타나 뉴욕시를 때려부순다, 군대가 동원돼 몬스터와 전투를 벌인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고립됐다, 그래서 그녀를 구출하러 간다'

진짜로 여기까지가 전부다. 더이상 거론할 게 없다. 몬스터가 어디서 어떻게 왜 왔는지,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왜 파괴를 하는지에 대해선 일절 언급없이 '몬스터의 공격을 받고있는 맨하탄 한복판에서 캠코더로 상황을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끝난다. 몬스터 영화에서 심오한 줄거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편으론, 다른 판타지 SF 몬스터 영화와는 달리 '몬스터 침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몬스터의 공격이라는 것만 빼면 재앙에 처한 맨하탄을 비교적 그럴 듯하게 그렸다.

게다가, 느닷없이 몬스터가 들이닥쳤으니 몬스터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예고없이 들이닥친 몬스터의 공격으로 패닉상태에 빠진 맨하탄을 그린 것이니 몬스터의 정체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게 정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줄거리를 건성으로 넘어간 데 대한 변명으로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몬스터에 대한 배경설명은 건너 뛰고 몬스터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맨하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는 홈 비디오 스타일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허무한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아마츄어가 촬영한 홈 비디오를 통해 전해오는 리얼한 서스펜스와 스릴로 덮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Blair Witch Project'는 성공하지 않았냐고?

물론이다.

하지만, 'Blair With Project'는 10여년전에 나온 영화다. 그때만 해도 UCC 같은 것이 지금처럼 흔치 않았다.

쟝르도 다르다. 'Blair Witch Project'가 호려영화인 덕분에 '흔들리는 아마츄어 비디오 화면에서 전해지는 색다른 공포'라는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지나쳐선 안된다.

그러나, '클로버필드'는 홈 비디오 아이디어만 빌려와 몬스터 영화에 억지로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게 전부다. 제작비용 등 규모면에선 월등히 앞서겠지만 '홈 비디오 효과'는 'Blair Witch Project'에 견줄만한 수준이 못된다.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긴박했던 순간을 직접 촬영한 아마츄어 비디오를 통해 실감나는 서스펜스와 스릴을 전달하겠다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런 아이디어가 몬스터 영화에 어울리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나 맨하탄을 때려부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도 허구적인데 '홈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지켜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만약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상상해보면 상당히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클로버필드'에서 기억나는 것은 9-11 테러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면서 밀려오던 먼지의 파도, 그리고 이라크전이 한창일 당시 TV뉴스에서 매일마다 방송했던 치열한 전투장면을 엉성하게 재탕한 것으로밖에 보일 뿐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TV 시리즈 '로스트(Lost)', '에일리어스(Alias)'로 유명한 프로듀서, J.J. 에이브람스(Abrams)가 빅스크린용으로 선보인 최신작이라고 해서 '클로버필드(Cloverfield)'를 관심있게 지켜봤다. 하지만, '클로버필드'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나름대로 스타일리쉬한 몬스터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 같지만 흔틀리는 카메라 빼곤 아무 것도 없는 무지하게 허무한 영화일 뿐이다. 차라리 전쟁, 테러나 재앙의 현장을 배경으로 했다면 몬스터 공격보다는 사실적인만큼 현장감 넘치는 영화가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몬스터 영화와 홈 비디오의 결합은 '아니올시다'였다.

'클로버필드'는 영화속 상황에 쉽게 빠져드는 사람이 아닌 이상 재미있게 즐기기 힘든 영화다. 홈 비디오 스타일에서 전해지는 긴박감을 제대로 느껴야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카메라로 이런 맛을 내려고 한 게 아니냐'는 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문제다. 이것을 못보고 지나치면 '무서우리만치 리얼한 몬스터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지간히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못보고 지나치기 힘들 것이다.

'클로버필드'는 이런 사람들에게 권한다:

1.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만 정신없이 흔들리다가 끝나는 허무한 몬스터 영화를 보고싶은 사람.

2. 홈 비디오 스타일로 촬영한 것만 보면 왠지 모르게 찔끔 쌀 정도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

3. 극장에 갈 때마다 한쪽 뇌를 빼놓기 때문에 줄거리가 있어도 모르고 없어도 모른다는 사람.

4. 쿨하게 보이도록 사탕발림 해놓은 영화에 잘 낚이는 사람.

5. '미국 최악의 홈 비디오'를 보고싶은 사람.

불행히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클로버필드'를 건너뛰시구랴.

댓글 4개 :

  1. 예고편은 진짜 재밌어보이던데 별론가보네영.
    솔직히 영화 전체를 홈비디오형식으로만 만든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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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용이라도 좀 더 흥미진진했다면 견딜 수 있었겠지만 이것도 아니고...
    '홈 비디오' 빼곤 볼 게 없는 영화인데 저도 홈 비디오 아이디어가 별로 맘에 안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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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J. 에이브람스는 과연 낚시의 제완이로군요.. 클로버필드. 기대하고 있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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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국서 개봉 첫 주에 의외로 반응이 좋다 싶었는데...
    1주만에 흥행수입이 68.3% 떨어졌군요.
    SF영화팬이 많다보니 개봉 첫 주 사람들이 몰렸다가 빠진 것 같습니다.
    J.J. 에이브람스가 감독한 '스타트렉'은 어떠할지 기대/걱정됩니다.
    올 크리스마스 개봉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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