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9일 토요일

2백만불에 목숨 걸었냐, FRIEND-O?

질문 하나 하겠다, FRIEND-O!

우연히 2백만불이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자고?

좋다.

앞면: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 있으니 건드리지 않는다.

뒷면: 평생 2백만불 만질 기회 다시 오지 않을테니 죽든 살든 들고 간다.

앞면인가 뒷면인가?

Call it, FRIEND-O!



1980년 텍사스.

사냥을 즐기던 용접공, 르웰린 모스(죠시 브롤린)는 총상을 입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을 우연히 발견한다.

르웰린은 이들이 타고 온 자동차에서 대량의 마약을 발견하면서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멕시칸 마약딜러들이란 걸 알게 된다.

거래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면서 자동차에 마약을 그대로 쌓아둔 채로 총격전을 벌이다 다들 쭉 뻗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돈도 어딘가에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르웰린은 마약딜러 시체 옆에서 현찰로 가득찬 돈가방을 발견한다.

2백만불 캐쉬!

비록 죽은 마약딜러의 돈이지만 현찰로 가득찬 가방을 그냥 두고 지나칠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범죄자들의 돈에 손을 댄만큼 이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했다.

마약딜러들이 '돈가방 도둑(?)'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르웰린은 아내 칼라 진(켈리 맥도날드)을 친정집으로 피신시킨다. 아내라도 일단 피신시킨 뒤 돈가방을 회수하려는 범죄자들을 상대하려는 것.

칼라 진은 르웰린과 결혼한 '텍사스 아가씨'인데 영어 발음과 외모가 'British'한 게 신경에 거슬린다. 하지만, 'Texan Chick'이라는데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가야지 별 수 있겠수?



그런데 문제가 더욱 골치아파진다.

르웰린을 뒤쫓는 범죄자들 중에 '물건'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앤튼 쉬거(하비에르 바뎀)다.

Chigurh? 이 친구의 이름을 발음하기가 약간 골때린다.

얼핏 들으면 '슈가(Sugar)'처럼 들린다.



하지만, 앤튼 쉬거는 달콤한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친구다.

협상이 통하지 않는 무자비한 킬러기 때문이다.

냉혈 싸이코 킬러인 게 전부가 아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인지 뒷면인지 맞춰보라는 '게임'을 즐기고, 산소탱크를 마치 총처럼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친구다.



이런 친구가 문앞에 버티고 서 있는 걸 보고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앤튼 쉬거에게 잘못 걸리면 죽음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뚜렷한 이유가 없더라도 죽이고 싶으면 살인을 하는 친구니까.

동전 던지기 결과에 따라 살해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정도로 살인이란 것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친구다.



그렇다면, 르웰린은 운이 좋은 친구일까?

2백만불이 들어있는 가방을 줏었으니 운이 좋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돈가방을 되찾으려는 싸이코패스 킬러, 앤튼 쉬거를 상대해야만 한다면 그다지 운이 좋은 것 같지도 않다.



'2백만불 돈가방' 사건에 르웰린과 앤튼 쉬거만 휘말린 건 아니다.

앤튼 쉬거를 제거한다는 조건으로 고용된 카슨 웰스(우디 해럴슨)가 르웰린과 앤튼의 '2백만불 숨바꼭질'에 끼어든다.



여기에 보안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까지 르웰린과 앤튼 쉬거의 뒤를 쫓는다.

버려진 트럭이 르웰린의 것이란 걸 알아본 벨은 그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르웰린과 앤튼 쉬거를 추격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벨의 부하로 나온 웬델(개럿 딜라헌트)다.

그를 본 순간 어디서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말이다.

실제로 만나봤다는 게 아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아주 최근에 본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언뜻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였다.

FOX TV의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Terminator: The Sarah Connor Chronicles)'에서 '크로마티'라는 이름의 싸이보그로 나온 그 배우였다.

어쩐지 아주 최근에 본 것 같더라, FRIEND-O!



여기까지가 'No Country for Old Men'의 간추린 내용이다.

그렇다. 'No Country for Old Men'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르웰린과 앤튼 쉬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부인 영화다.

줄거리도 길게 늘어놓을 게 없다. 르웰린이 돈가방을 들고 사라지자 앤튼 쉬거가 그를 뒤쫓는다는 게 전부다. 영화의 줄거리를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무지하게 단순하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는 스토리의 영화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짜임새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작부터 약간 생뚱맞은 데다 살짝 어거지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저 단순하게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싸이코 킬러가 나타나 쫓고 쫓기게 됐다'는 정도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따지고 들면 설명이 필요한 데가 꽤 될 것이다.

그런데도 잡다한 대화씬이 자주 나오면서 영화를 약간 지루하게 만든다. 스토리가 볼 게 없는만큼 대화보다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필요로 하는 영화인데 메인 줄거리와는 별상관 없어보이는 대화씬이 영화의 흐름을 끊는다. 원작에 충실히 영화화 하면서 생긴 결과라면 할 말 없을지 모르지만 메인 줄거리와 별 상관 없는 부분은 빼도 무방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건 마무리다. 허무할 정도로 얼렁뚱땅 정리해버리고 끝내는 바람에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걸 멍하니 보면서도 영화가 끝났다는 게 실감이 가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띠잉~'한 엔딩을 연출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문제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

천상 이 영화의 주제는 돈에 살고 돈에 죽는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죽고 살고, 쫓고 쫓긴다는 게 전부다. 이런 내용의 영화에 아주 그럴싸한 엔딩을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것보다는 나은 마무리를 기대했다. 스토리는 그렇다 쳐도 마지막 '한방' 없이 서두르 듯 얼렁뚱땅 마무리 지어버린 건 실망스럽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뭐냐고?

또라이 킬러, 앤튼 쉬거다.



원래 악역은 악랄해질 수록 매력적이 된다. 때문에 영화를 볼 때 마다 '이 영화의 악역은 얼마나 지독한가'를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다.

악역이 시원찮으면 '그저 흐지부지 지지고 볶다가 끝나겠구나' 한다.

하지만, 악역이 예사롭지 않으면 그 친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다. 나중엔 그를 응원까지 해준다. 닥치는대로 다 죽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악랄해질 수록 악역의 매력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앤튼 쉬거가 바로 이런 캐릭터다. 특히, 잔뜩 겁 먹은 가게주인 앞에서 동전을 던지더니 앞면인지 뒷면인지 맞춰보라고 묻는 장면은 걸작 중 걸작이다. 그 결과에 따라 가게주인의 운명이 엇갈리는 상황이었지만 "Call it, FRIEND-O!" 하는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평범하게 들리는 몇 마디 말로 상대방을 매우 불편하고 섬짓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쿨한데 사카스틱한 유머감각까지 뽐낼 줄이야!

하지만, 'No Country for Old Men'은 앤튼 쉬거라는 캐릭터를 제외하면 볼 게 많지 않은 영화다. 앤튼 쉬거가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만큼 그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No COuntry for Old Men'은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에 무뚜뚝한 표정으로 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어찌보면 영락없는 터미네이터처럼 보이는 앤튼 쉬거를 빼면 건질 게 너무 없는 영화다.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두서없이 그저 쫓고 쫓기는 게 전부다. 80년대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영화라는 데서 오는 나름대로의 '맛'이 있긴 하지만 흔해빠진 미국 남부 터프가이들 이야기에 싸이코 킬러를 보탠 게 전부로 보일 뿐 스페셜하다고 할만한 영화로 보이지 않는다.

아카데미상 8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도 아닌 것 같다. 'No Country for Old Men'이 나름대로 쿨한 영화라는 것까지는 동의할 수 있어도 8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특히, 작품상, 각색상, 편집상 후보에 오른 건 의외다.

8개부문 중에서 노미네이트 될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드는 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뎀(Javier Bardem)이다.

또라이 킬러, 앤튼 쉬거를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Give him the Oscar, FRIEND-O!

아무튼, 노미네이트된 8개부문 중에서 몇 개나 이기는지 두고보겠다, FRIEND-O!

댓글 2개 :

  1. 아~ 늙은이의 땅이 아니다 그 영화군용.
    국내에서 영화제목 특이한거 하나 있길래ㅋ
    글을 워낙 재밌게쓰셔서 재밌어보여요!
    저 악역때문이라도 함 봐야겠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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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고, 과찬이십니당...ㅋㅋ

    제가 사실 매력있는 악당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범죄자이고 천하에 몹쓸 악당이란 건 알겠는데...
    그래도 왠지 모르게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끌리는 악당이 있죠.
    전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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