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알 카에다, 이라크, 자동차 폭탄테러...
시대가 시대인만큼 최근에 나오는 스파이 소설들은 중동 테러리스트를 다룬 게 대부분이다.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빗 이그내시어스(David Ignatius)의 소설 '바디 오브 라이스'도 이런 소설이다.
'바디 오브 라이스'?
아니다. 콘돌리자 라이스와는 무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Body of Lies'다, 'BODY OF LIES'!
스펠링은 둘 째 치더라도 'L'과 'R'은 똑바로 구분해야겠지?
왜? 그 '라이스'가 아니라 실망했수?
'CIA가 테러리스트를 쫓는다'는 내용의 소설에 식상한 사람들은 더욱 낙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매일같이 중동문제를 떠들어대는데 이것보다 더욱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스파이 소설 소잿감이 어디있겠냐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바디 오브 라이스'도 또다른 중동문제 이야기다. 요새 미국서 인기있다는 스파이 소설 작가, 다니엘 실바(Daniel Silva)처럼 데이빗 이그내시어스의 '바디 오브 라이스'도 폭탄테러를 아주 좋아하는 중동 테러리스트들을 열심히 쫓아다닌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니엘 실바의 소설과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이그내시어스의 소설은 실바와 달리 노골적으로 안티 아랍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CIA 에이전트 로저 페리스(Roger Ferris)는 정치에 관심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는 캐릭터 대부분은 이라크전에 비판적이고 팔레스타인 난민을 동정하며 아랍에 우호적이다. 책 자체는 CIA가 중동지역에서 아랍 테러리스트를 뒤쫓는 내용이지만 아랍 전체를 적으로 몰아세우는 일방적인 내용은 아닌 것.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하면 적이라는 뉘앙스도 풍기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자꾸 책 이야기를 하냐고?
무슨 북클럽이라도 만들 생각이냐고?
아니 뭐 그런 건 아니다.
'바디 오브 라이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가 2008년 10월 미국서 개봉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CIA 에이전트, 로저 페리스는 레오나도 디카프리오, 그의 CIA 보스, 에드 호프맨은 러셀 크로우가 맡았다. 감독은 리들리 스콧.
로저 페리스는 현장에서 정보수집을 하는 필드 에이전트가 전부일 뿐 액션스타가 아니다. 레오나도 디카프리오는 수퍼 스파이가 아닌 매우 사실적이고 평범한 CIA 에이전트, 로저 페리스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
페리스의 CIA 보스, 에드 호프맨역의 러셀 크로우도 훌륭한 캐스팅인 것 같다. 호프맨은 항상 욕을 입에 달고다니는 터프가이로, 임무완수를 위해서는 인정사정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바디 오브 라이스'의 에드 호프맨은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의 리치 로버츠만큼 비중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크로우는 '3:10 To Yuma', '아메리칸 갱스터'에 이어 또다시 2명의 주연급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번엔 공동 주연이 아닌 조연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레오나도 디카프리오, 러셀 크로우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스파이 스릴러 영화라니까 일단 기대가 앞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소설의 줄거리가 '테러리스트 이야기'와 '여자 이야기'를 오락가락하면서 산만해지는 것. 이전 챕터에선 중동 테러리스트 이야기를 하다가 그 다음 챕터에선 워싱턴 D.C에 사는 페리스의 와이프 그레첸의 이야기가 나오고, 중동 테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갔다가 그 다음 챕터에선 페리스가 요르단에서 '참사랑' 엘리스를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러브 스토리로 넘어간다.
이그내시어스는 어떻게서든 '여자 이야기'를 집어넣으려 한 것처럼 보인다. 테러리스트를 쫓는 내용만으론 덜 사실적이고 밋밋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메인 줄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여자의 스토리가 튀어나오면서 소설의 맥을 끊어놓을 뿐 보탬이 된 건 없어 보인다. 내용이라도 읽을만 하다면 또 모르지만 페리스와 그레첸의 이혼 이야기, 앨리스와의 짜맞춘 듯한 러브 스토리 모두 별볼 일 없다.
이그내시어스는 CIA와 중동지역을 취재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매우 사실적인 스파이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가 CIA와 중동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저널리스트인지는 몰라도 소설가로써의 소질은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 얼마나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 영화버전에선 앨리스의 요르단 러브 스토리가 왕창 날아갔다고 한다. 다른 건 둘 째 치더라도 두 여자 이야기는 반드시 손질을 해야할 부분인만큼 여기에 손을 댔다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스크린라이터였다면 워싱턴 D.C에 있는 그레첸 스토리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요르단에 있는 앨리스를 테러리스트 스토리쪽으로 끌어당겼을 것이다. 이혼문제로 중동과 미국을 허무하게 오가다가 영화의 맥이 끊어지는 걸 피하기 위해선 그레첸을 버리고 앨리슨의 비중을 높이는 게 올바른 선택인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화에선 두 여자 이야기가 어떻게든 달라질 것으로 보이니 일단 두고보기로 하고 넘어가자. 그렇다면, '오락가락 여자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스토리는?
'바디 오브 라이스'도 '술레이만'이라 불리는 거물급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흔해빠진 카운터 테러리즘 스파이 스릴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CIA와 요르단 정보부가 알 카에다 뿐만 아니라 서로간에도 속여가면서 비밀스러운 작전을 진행하는 건 꽤 흥미진진하다. 상황이 계속 뒤집히면서 계속 뒷통수를 때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도록 만드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생각하면 된다 .
그렇다고,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건 아니다.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 많이 눈에 띄는 덕분에 이런 쟝르의 책이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겐 새로운 게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르며, 작가가 어느 방향으로 스토리를 끌고가려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디 오브 라이스'는 그런대로 읽을만한 소설이다. 이그내시어스의 스토리텔링 스타일은 지루하지 않으며 유머도 풍부한 편이다. 유치하고 썰렁한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만 없었더라면 훨씬 좋았겠지만 어쩌겠수?
영화 '바디 오브 라이스'는 쓸 데 없는 두 여자 이야기를 깔끔하게 추려내고 산만하지 않게 옮긴다면 '스파이 게임(Spy Game)'과 '시리아나'를 합친 듯한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스파이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로 제대로 옮기기만 하면 2008년 11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로 돌아오는 제임스 본드에게 진정한 스파이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줄만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 레오나도 디카프리오, 러셀 크로우와 전 CIA 국장, 조지 테넷(George Tenet)이 '팩트처럼 보이는 픽션'이라고 극찬한 이그내시어스의 스파이 소설이 만났으니까.
중동 테러리스트를 쫓아다니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리들리 스콧의 '바디 오브 라이스'엔 한번 기대를 걸어 본다.
오우 러셀크로우, 디카프리오...
답글삭제연기잘하는 배우들이랑 영화잘만드는 감독이 뭉쳤으니 기대가 되네요.ㅋ
러셀크로우는 투유마에서 정말 멋졌음!
'3:10 투 유마'... 특히, 마지막에 죽여줬죠.
답글삭제'유마'에 비교하면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보여준 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메리칸 갱스터'에선 댄젤 워싱턴에 가려 존재감이 안느껴졌으니...
'바디 오브 라이스'는 배우와 감독까진 좋은데 영화에서 쓸데없는 여자얘기를 얼마나 걷어내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