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데이라이트' 본드카의 정체

얼마 전에 본드카를 정리하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됐다.

1987년 영화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에 나온 본드카를 아스톤 마틴 볼란테(Aston Martin Volante)로 알고 있었는데 이 이름으로 검색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컨버티블만 뜨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볼란테(Volante)'는 아스톤 마틴 자동차의 컨버티블 모델에만 붙는 명칭이란다.

예를 들면 '아스톤 마틴 밴티지 볼란테'는 '아스톤 마틴 밴티지의 컨버티블(볼란테) 모델'이란 의미다.

▲1986년형 아스톤 마틴 밴티지 볼란테

잠깐!

컨버티블만 '볼란테'라고 부른다고?

영화 '리빙 데이라이트'에 나온 차는 컨버티블이 아닌 하드탑이었는데?

▲'리빙 데이라이트'의 아스톤 마틴

그렇다면 '리빙 데이라이트'의 본드카는 아스톤 마틴 '볼란테'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볼란테=컨버티블'인데 영화의 액션씬에 나왔던 본드카는 '하드탑'이었으니 볼란테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 자동차를 '아스톤 마틴 볼란테'라고 부르는 것일까?

▲CORGI의 다이캐스트 모델도 '아스톤 마틴 볼란테'로 돼 있다.

그 이유는 문제의 자동차가 영화에 처음 나왔을 때는 컨버티블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티모시 달튼)가 망명한 소련장군 코스코프를 만나기 위해 안가(Safe house)를 찾았을 때 몰고 간 자동차는 컨버티블이었다.

이 차는 아스톤 마틴 밴티지 볼란테가 맞다.

▲안가에 들어가는 아스톤 마틴 밴티지 볼란테

▲컨버티블인 것이 확실하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Q가 이 차를 하드탑으로 개조하면서 부터다.

본드가 안가를 찾을 때 운전한 차는 아스톤 마틴 볼란테가 맞지만 Q가 이 차에 하드탑을 달면서 정체가 모호해 진다.

작업중이던 Q가 하드탑에 머리를 부딪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아마도 '컨버티블에 하드탑을 붙이는 개조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아스톤 마틴 볼란테에 하드탑을 붙이는 개조를 한 게 전부이므로 개조된 차도 아스톤 마틴 볼란테인 데 변함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이다.

▲하드탑을 붙이는 Q

그렇다. 영화상에선 본드가 안가에 갈 때 몰았던 차와 액션씬에서 나왔던 차가 같은 차인 것으로 나온다. Q가 개조를 하는 바람에 컨버티블에서 하드탑으로 바뀌긴 했지만 본드가 안가에 갈 때 끌었던 아스톤 마틴 밴티지 볼란테에 Q가 하드탑을 붙인 게 전부이므로 '영화상'에선 둘 다 같은 아스톤 마틴 볼란테라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로 컨버티블, 하드탑 모델 모두 한 데 묶어 '아스톤 마틴 볼란테'로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번호판 'B549 WUU'도 일치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상에서의 설정일 뿐 실제로 아스톤 마틴 볼란테에 하드탑을 붙이는 개조를 한 건 아니다.

실제로는 컨버티블과 하드탑 2종류의 아스톤 마틴을 사용했다. 안가에선 아스톤 마틴 볼란테(컨버티블)를 사용하고 액션씬에선 중고 아스톤 마틴 밴티지 V8 하드탑 모델을 사용한 것. 영화상에선 안가에 나왔던 차와 액션씬에 나왔던 차가 동일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론 다른 차였던 것이다.

그렇다. 미사일을 쏘는 본드카 역할을 한 실제 자동차는 아스톤 마틴 볼란테가 아니라 중고 아스톤 마틴 밴티지 V8이었다.

▲1984년형 아스톤 마틴 밴티지 V8

그렇다면 '리빙 데이라이트' 본드카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까?

아스톤 마틴 볼란테? 아니면 아스톤 마틴 밴티지?

영화상에서의 설정으로 따지면 아스톤 마틴 볼란테가 된다. Q가 아스톤 마틴 볼란테에 하드탑을 붙이는 개조를 한 것으로 나오므로 영화상에선 컨버티블, 하드탑 모델 모두 아스톤 마틴 볼란테다.

하지만, 영화촬영에 실제로 사용된 자동차를 따진다면 안가에선 아스톤 마틴 볼란테, 액션씬에선 아스톤 마틴 밴티지가 각각 사용됐다고 해야 옳다.

▲영화상에선 '볼란테'지만 실제론 '밴티지'인 본드카

자동차 전문가이거나 아스톤 마틴 자동차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는 사람이 보기엔 별 것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게 '밴티지'고 무엇을 '볼란테'라고 하는지 몰랐던 난 헷갈릴 수밖에...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