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휘두르는 사나이, 인디아나 존스가 십계 석판이 들어있다는 궤를 찾아나섰던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제 1탄이다.
2탄은 3년 뒤에 나왔다. 눈알수프 등 험악한(?) 음식들로 한동안 화제를 모았던 '인디아나 존스 2(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 처음 봤다"고 조잘거리던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난다.
5년 뒤 인디아나 존스가 아버지 헨리 존스(숀 코네리)와 함께 성배를 찾아다니는 3탄(Indiana Jones and Last Crusade)'이 개봉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이렇게 3편으로 끝난 듯 했다. 어렸을 때 워낙 재미있게 본 시리즈라서 약간 섭섭하기도 했지만 3탄이 마지막인 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2008년 인디아나 존스가 돌아왔다!
1989년 3탄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떠난 줄 알았던 인디아나 존스가 19년만에 돌아온 것.
중절모와 채찍만 돌아온 것이 아니다.
1942년생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도 인디아나 존스로 돌아왔다.
잠깐!
그렇다면 인디아나 존스가 60대 중반이란 의미?
그렇다. '인디아나 존스 4(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Crystal Skull)'에서의 인디아나 존스는 백발의 노인이다. 이전 시리즈에서 씽씽 날아다니던 인디아나 존스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하기에 해리슨 포드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게 아닌지 걱정도 됐다. 그러나, 머리가 백발로 변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예전의 인디아나 존스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휘두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뱀을 아주 싫어하는 것까지 예전의 '인디아나 존스' 그대로 였지 '할아버지 존스' 티가 심하게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당장, '누가 운전하느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인디아나 존스 3'에선 인디아나 존스가 모터싸이클을 운전하고 아버지 헨리 존스(숀 코네리)를 옆에 태웠다.
하지만, '인디아나 존스 4'에선 사정이 약간 다르다.
이번엔 멋(Mutt) 윌리암스(샤이아 라버프)가 모는 모터싸이클 뒷좌석에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앉았다. 3탄까지만 해도 인디아나 존스가 직접 모터싸이클을 몰고 다녔지만 4탄에선 20대 초반의 샤이아 라버프에게 운전을 맡기고 60대 중반의 해리슨 포드는 뒤에 탔다.
'인디아나 존스 3'에서 숀 코네리가 맡았던 노인역할을 해리슨 포드가 4탄에서 물려받은 셈이다.
잠깐!
그렇다면 멋 윌리암스(샤이아 라버프)가 혹시...?
DNA 검사까지 하지 않더라도 뻔한 얘기 아니겠수?
척하면 뻔히 보이는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이지만 스포일러라고 우긴다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이쯤에서 닥치기로 하고...
아, 가만 생각해 보니 멋 윌리엄스의 어머니는 소개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팬들에겐 낯익은 얼굴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제 1탄 '레이더스'에서 존스걸(?)이었던 마리온(캐런 앨런)이다.
아줌마로 확실하게 변신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악당이 누구냐고?
또 그 지긋지긋한 나치냐고?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비디오게임이라면 이젠 신물이 넘어오는데?
'인디아나 존스 4'는 시대 배경이 1950년대라서 더이상 나치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이번엔 소련군이다. 뿐만 아니라 MI6, KGB 등 냉전시대 배경의 첩보영화에나 나옴 직한 조직들까지 등장한다.
좋다. 그렇다면 줄거리는?
'인디아나 존스 4'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전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판타지 어드벤쳐지만 스토리는 SF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SF영화로 보일 정도로 심하게 변질된 건 아니다. 하지만, 구태여 그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Area51이나 '크리스탈 해골'을 가진 미확인 생명체가 나오는 영화는 'X-Files'만으로 충분한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까지 그쪽으로 간 이유는?
'다 좋은데 이것만은 맘에 안들었다'는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스토리가 SF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꼽겠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는 왠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크리스탈 해골'을 가진 미확인 생명체 이야기는 그래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줄거리 때문에 이런 영화를 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용납할 수 없는 게 있다:
유머가 무지하게 부족하다는 것.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대표하는 최대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풍부한 유머였다. 인디아나 존스의 사카스틱한 유머부터 시작해서 약간 유치하고 아동틱한 유머, 화끈하게 뒷통수 한방 때리는 시원한 유머 등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대표적인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유머였다.
그런데, '인디아나 존스 4'에선 이러한 유머들이 거의 사라졌다.
인디아나 존스가 60대 중반의 노인이 된 만큼 심술맞은 노인을 연상케 하는 유머러스한 씬이 풍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멋 윌리암스를 연기한 샤이아 라버프도 코믹연기에 능한 끼가 있는 배우인 만큼 큰 기대를 했는데 영화내내 어색해 보이기만 할 뿐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 '디스터비아(Disturbia)'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였다.
'인디아나 존스 4'의 해리슨 포드와 샤이아 라버프 콤비도 3탄에서의 포드-코네리 콤비 못지 않게 재미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해리슨 포드와 숀 코네리가 입을 열 때마다 웃음이 번졌던 '인디아나 존스 3'에 비하면 '인디아나 존스 4'는 유머가 아예 없다고 해야 할만한 수준이다.
그래도 액션은 볼만하지 않냐고?
'인디아나 존스 4'도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 '콴텀 오브 솔래스(The Quantum of Solace)' 액션씬을 맡은 댄 브래들리가 세컨드 유닛 감독을 맡았다.
그렇다면 자동차 추격씬이 빠지지 않았겠지?
'인디아나 존스 4'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액션씬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자동차 추격씬이라고하겠다. 인디아나 존스 일행과 소련군들이 빠른 스피드로 쫓고 쫓기면서 크리스탈 해골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 하다.
그런데, 이 장면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액션씬이 없었다. 이것 빼곤 '핵폭탄이 터지면 냉장고에 숨으라'는 지식을 하나 얻은 것밖엔 기억나는 게 없구려...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인디아나 존스 4'도 실속보다는 네임밸류에 치중한 영화였다. '중절모', '채찍', '유적탐사', '판타지 어드벤쳐' 등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것들만 샘플로 맛 보여주듯 만든 티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 도중에 지루해지거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치하고 조잡스러운 영화라는 건 절대 아니다. 보다 나은 줄거리, 풍부한 유머와 익사이팅한 액션을 기대했던 인디아나 존스 팬들은 아쉬움이 남겠지만 이번 영화도 그저 편안히 즐기기엔 전혀 무리없을 만한 볼만한 오락영화다.
또한, 매우 훌륭한 패밀리 영화이기도 하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모두 패밀리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양반들인 만큼 이번 '인디아나 존스 4'도 패밀리용으로 적합한 영화로 만들었다. 판타지 액션과 어드벤쳐 뿐만 아니라 가족애, 인디아나 존스와 마리온의 푸근한 사랑 이야기, 교육문제에 이르기까지 종합 영양제 저리가라 할만한 수준이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눈요깃 거리 위주로 포장한 다른 블록버스터 '패밀리' 영화들과는 어딘가 다른 데가 있다는 게 느껴진다.
자, 그렇다면 이것으로 전부일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4편으로 끝나는 것일까?
프로듀서 조지 루카스는 5탄의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했다. 샤이아 라버프를 주인공으로 하는 '신세대 버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만들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NOT A BAD IDEA!
'해리슨 포드 없는 인디아나 존스를 상상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리즈를 접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수?
신세대 인디아나 존스로 샤이아 라버프가 어울리냐고?
'인디아나 존스 4'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만 놓고 본다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라버프는 인디아나 존스에 도전해볼 만한 배우다. 꽃미남은 아니지만 어리버리하면서도 코믹한 연기 덕분에 절대로 밉게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다듬으면 매우 훌륭한 신세대 인디아나 존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버프를 주인공으로 하는 신세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흥할지 망할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없지만 'GO FOR IT!'이라고 외치고 싶다. 배우가 아닌 캐릭터와 프랜챠이스를 보고 한번 밀어부쳐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007 시리즈처럼 수십년씩 이어지긴 힘들겠지만 가는 데 까지 가보는 거다.
'인디아나 존스 4'가 끝이 아닌 'NEW BEGINNING'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트레일러나 한번 더...ㅋ
어제 밤에 심야로 보고 왔습니다.
답글삭제요즘 영화보다는 80년대의 존스 시리즈를 연장해놓았다는 느낌이 크게 들더군요.
일부 CG가 튀는 장면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아날로그로만 촬영된 장면이 많아서 보기엔 편하더군요.
하지만, 네… 그 유머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그건 저도 정말 아쉬웠답니다.
할아버지가 된 인디와 아줌마가 된 마리온, 그리고 아들, 이렇게 셋이서 옥신각신하는 패밀리 영화가 될 줄 알았습니다...ㅋㅋ
답글삭제만약, 요즘 영화처럼 뻔지르하게 만들었다면 오히려 망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듭니다. 작년에 '다이하드4' 죽쒔던 것처럼 말이죠.
뭐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습니다...ㅋ
그런데, 샤이아 라버프 이녀석이... 전 해리슨 포드보다 라버프 이녀석이 '미래'라 생각했기 때문에 유심히 봤거든요. 근데 영...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