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6일 일요일

'트와일라잇' - 우리 학교에 뱀파이어가...!

'트와일라잇(Twilight)'이란 소설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무엇에 대한 얘기인지 전혀 몰랐다. '트와일라잇'이란 소설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정보를 슬쩍 훑어보니 뱀파이어 스토리였다.

그런데, 이 영화가 금년 겨울 개봉한단다.



그렇다면 살짝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겠지?

그래서 책을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표지가 낯이 익었다. 서점 앞을 지나면서 여러 번 본 기억이 났다.


▲스테파니 마이어의 '트와일라잇'

그런데...

몇 페이지 읽다보니 '이거 틴에이져 여자애들 보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이사벨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고등학생인 데다 1인칭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절룩절룩 하면서 조금 더 읽어보니 스토리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간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뱀파이어 스토리라니까 '호러'와 '서스펜스'를 기대했는데 알고보니 벨라(이사벨라의 애칭)와 꽃미남 뱀파이어 에드워드의 하이스쿨 러브스토리였다. 굳이 쟝르를 정해보자면 '틴 로맨스(Teen Romance)'라고 해야 할까?

로맨스 소설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뱀파이어 스토리로 위장한 러브스토리에 걸릴 줄이야!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스토리나 살짝 짚고 넘어갑시다.

스토리는 주인공 벨라가 애리조나에서 워싱턴주로 이사와 뱀파이어 가족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학교에선 '컬렌 패밀리'로 불리는창백한 얼굴의 5남매는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항상 가족들끼리만 어울려 다닌다.


▲왼쪽부터: 앨리스, 에밋, 벨라, 에드워드, 로살리, 재스퍼

그런데, 이들 중 하나인 에드워드가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 벨라를 구해준다. 말을 걸지도 않고 거북한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벨라를 노려보기만 하던 녀석이 벨라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면 바람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밤낮 넘어질 만큼 칠칠맞은 데다 춤이나 운동에 전혀 소질이 없는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이는 벨라에게 창백한 꽃미남 소년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

그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벨라는 처음엔 브루스 웨인, 피터 파커와 같은 코믹북 수퍼히어로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다...ㅡㅡ;

나중에 정체를 알게 되지만...


▲뱀파이어 + 수퍼 히어로 = 뱀파-히어로?

정체를 알고 난 뒤에도 벨라는 에드워드와 날이 갈수록 가까워지고 컬렌 패밀리는 에드워드가 인간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우려한다. 둘의 사이가 불안하긴 에드워드도 마찬가지. 인간을 공격할 생각이 없어도 너무 가까이서 얼쩡거리면 흥분(?)되기 때문에 인간들과 거리를 두고 생활해 왔는데 벨라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억제력을 테스트 하게 된 것이다.

과연 에드워드는 뱀파이어의 본능을 억제하고 벨라와 가깝게 지낼 수 있을까?

그렇다. '트와일라잇'은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러브 스토리다.

그런데, 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애리조나에서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던 벨라가 미국에서 비가 가장 자주 온다는 워싱턴주의 Forks라는 곳으로 이사해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는 설정은 80년대 뱀파이어 영화 '로스트 보이스(The Lost Boys)'와 흡사하다. 등장인물이 전부 틴에이져이고 고등학교가 배경인 것은 90년대 뱀파이어 TV 시리즈 'Buffy the Vampire Slayer'와 비슷하다. '트와일라잇'에 무엇보다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작품은 'Interview with the Vampire'다.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동물의 피를 먹고 사는 'Civilized' 뱀파이어와 인간을 공격하는 뱀파이어가 나오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인간을 뱀파이어로 둔갑시킨다는 등 뱀파이어의 내면을 자세하게 그린 것도 '인터뷰...'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렇다면 '트와일라잇'은 '로스트 보이스+버피+인터뷰 SHAKEN NOT STIRRED'가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트와일라잇'의 핵심은 '하이스쿨'과 '러브스토리'다. 소설의 2/3가 Forks High School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24개 챕터 중에서 16개 챕터가 벨라와 그녀의 여자친구들, 그리고 에드워드의 하이스쿨 이야기라면 '하이스쿨 러브스토리'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감이 잡힐 것이다.

옛 생각이 났기 때문일까? 그 중에서 '하이스쿨'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하이스쿨 졸업한지 한참 지났지만 책을 읽다보니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났다. 특별하게 좋은 추억거리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때가 좋긴 좋았나 보다. 내가 다녔던 하이스쿨엔 아쉽게도 뱀파이어는 없었다. 대신 Goth들이 있었다. 미술반에 Gothic 스타일 여자아이 2명이 있었는데 이녀석들 미술숙제를 내가 거의 다 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벨라의 시간표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학교 이야기가 반복되는 바람에 나중엔 약간 물린다. 하이스쿨 추억에 젖는 맛에 책을 끝까지 읽게 됐다지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반복되다 보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던 것. 나중엔 하이스쿨 시절로 되돌아간 꿈까지 꿨다오...ㅠㅠ

'러브스토리' 파트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인간과 뱀파이어가 사귄다는 부분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어도 이들의 옥신각신 러브스토리가 어느 쪽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에드워드가 벨라와 사귀기 위해 뱀파이어의 본능을 억제한다'는 뻔한 내용을 가지고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러브스토리를 만들고자 했지만 '하이스쿨 키드들의 데이트'를 빼곤 건질 게 없었다. 내가 로맨스 소설을 (아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기분이 수시로 뒤바뀌는 센시티브한 틴에이져들의 러브스토리도 아주 부담스러웠다.

'트와일라잇'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미흡한 부분은 마지막 1/3 파트다. 소설의 2/3를 하이스쿨 러브스토리로 채웠지만 그래도 명색이 '뱀파이어 스토리'인 만큼 마지막은 짜릿하게 장식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뱀파이어 vs 뱀파이어' 파트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 게 없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할 수 없는 소설이지만 웃기지도 않는 '뱀파이어 추격전'은 그 중에서 가장 어수선 했다. 순정만화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어드벤쳐의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겠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쉽게 나올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 걱정했던 만큼 마지막까지 끝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렇다고 아주 재미없었던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취향에 맞지 않았고, 중-고등학생 틴에이져들을 위한 책인 데다 남자들이 읽기엔 난감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 도중에 포기할 정도로 극복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로맨스, 러브스토리 쟝르는 영화든 책이든 질색인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트와일라잇'의 속편인 '뉴 문(New Moon)'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하지 못했지만 책꽂이에서 대기중...

위에서 밝혔듯이 영화제작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트와일라잇'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스테파니 마이어라는 30대 소설가도 몰랐고,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제법 많은 틴에이져 팬들을 거느린 것 같았다. 잘생긴 데다 수퍼파워까지 갖춘 에드워드는 틴에이져 여자아이들이 꿈꾸는 '판타지 보이프렌드'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캐릭터인 만큼 그 또래들로부터 꽤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여자아이가 '판타지 보이프렌드'를 갖게 된다는 별 것 아닌 내용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녀석들이 많은 것 같더라.

자, 그렇다면 영화는?

현재로써 가장 궁금한 건 영화도 소설처럼 2/3를 하이스쿨 로맨스로 채우고 나머지 1/3만 어드벤쳐에 할애할 것인지, 아니면 영화에선 어드벤쳐의 비중을 늘릴 것인지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금년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기대작 리스트에 포함되긴 힘들 것 같다. 벨라와 에드워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3편의 '트와일라잇' 시리즈 소설이 영화화 될 계획이라고 들었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에 견줄만한 시리즈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단 나는 책까지 읽었으니 영화가 개봉하면 보러 가게 될 것 같지만 현재로썬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책까지 찾아서 읽게 됐냐고?

낸들 알겠수?

아무래도 나도 나름대로 뱀파이어를 좋아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