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30일 토요일

완성도도 'Up'! 만족도도 'Up'!

이제껏 애니메이션을 보고 '진짜 진짜 재미있게 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재미있게 본 작품은 있어도 '재미있다' 앞에 '진짜'를 두 번 붙여야 할 정도는 없었다.

디즈니의 3D 애니메이션 '업(Up)'을 보기 전까지는...

그래봤자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아니냐고?

그렇긴 하다.

그런데, 극장내 분위기는 어찌된 게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화가 끝나니까 박수까지 치더라.

남아메리카 어딘가에 있다는 미지의 세계를 어렸을 적 부터 탐험하고 싶어했던 칼 프레드릭슨이 백발노인이 되어서야 집을 '에어쉽'으로 개조해 탐험에 나선다는 이야기가 그렇게도 재미있었냐고?

그렇다. '진짜 진짜' 재미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3D 애니메이션을 어린이용 판타지 또는 코메디 정도로 생각한다. 이런 수준의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니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업'을 보고나면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다. 실사영화에서도 이처럼 재미와 감동, 유머를 모두 갖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처음엔 '업'도 그저 그런 또하나의 어린이용 코메디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다. 전형적인 '노인과 꼬마 코메디'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탐험가를 동경하는 어릴 적 칼과 그의 소꿉친구(?)이자 미래의 와이프인 엘리가 파라다이스 폭포가 있다는 곳을 언젠가는 함께 찾아갈 계획을 세우며 작은 집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던 이야기, 풍선이 달린 집을 타고 늦으막하게 홀로 탐험을 떠난 칼과 얼떨결에 동행하게 된 꼬마녀석 러셀과의 모험과 우정 등 빼놓을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러셀이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점이다. 얼떨결에 칼의 탐험 파트너가 된 꼬마 캐릭터가 아시안처럼 생겼다는 것을 놓칠 수 없었다. 월트 디즈니 영화/애니메이션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이 메인 캐릭터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월트 디즈니 자매사, ABC 패밀리가 얼마 전 한인 2세 여배우 제이미 정(Jamie Chung)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무라이 걸(Samurai Girl)'이라는 TV 시리즈를 제작한 적은 있어도 월트 디즈니사의 극장용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아시안이 주연급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처음이고 둘 째고 다 좋은데, 러셀이라는 캐릭터를 왜 토실토실하게 만들었냐고?

러셀은 픽사의 애니메이터, 피터 손(Peter Sohn)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고 한다. 그러므로 피터와 러셀을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목소리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다. 왠지 심술스러워 보이는 노인, 칼 프레드릭슨 역으로 에드워드 애스너(Edward Asner)는 왔다 였으며, 일본인 2세 조단 나가이(Jordan Nagai)도 칼의 탐험 파트너가 된 아시안 아메리칸 꼬마, 러셀 역을 멋지게 연기했다. 에드워드 애스너가 1929년생이고 조단 나가이가 2000년생이라니 둘의 나이차는 무려 71살! 노인과 꼬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한 둘이 아니라지만 두 배우의 나이차가 71살이나 나는 영화가 또 있는 지도 궁금해 진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제대로 된 보컬 주제곡이 없다는 것이다. 배경음악들은 아주 좋았지만 메인 타이틀이라고 부를 만한 뚜렷한 보컬 주제곡까지 있었더라면 더욱 멋지지 않았을까? 내년 아카데미상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해 보이는 작품인데, 내친 김에 주제곡상까지 노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았냐는 것이다.

지난 90년대에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주제곡으로 아카데미상을 휩쓸다시피 했기 때문에 2000년대에는 되도록 자제하는 것일까?



그래도 '업'이 2009년 들어서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최고였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스토리도 좋았고, 목소리 연기도 좋았으며, 배경음악도 좋았고, 초콜릿을 주면 졸졸 따라오는 'E.T'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새, 케빈도 좋았다. 감동과 유머가 모두 풍부했다는 것도 좋았다. 한마디로 다 좋았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만 했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애니메이션인 만큼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까? '업'은 금년에 본 영화 중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유일한 영화다. 앞으로 개봉할 영화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만큼 순위가 바뀔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써는 '업'이 2009년에 본 최고의 영화다.

그렇다. 현재로써는 3D 애니메이션 '업'이 다른 실사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치고 '나의 2009년 영화 순위' 탑에 올라 있다.

제목이 괜히 'Up'인 게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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