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4일 일요일

'펠햄 123', 밋밋한 올드스쿨 스릴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미국 영화배우, 댄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의 영화를 단골로 연출하는 감독이 있다. 바로 토니 스코트(Tony Scott)다.

영국 영화감독, 토니 스코트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댄젤 워싱턴이다.

이들 둘이 다시 뭉쳤다. 쟝르는 물론 액션 스릴러다. 레이팅도 R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까지 악역으로 출연했다.

상당히 화끈한 여름철 액션영화처럼 들린다고?

우선 줄거리부터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펠햄 123(The Taking of Pelham 123)'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뉴욕시 지하철 펠햄 123호를 하이재크한 라이더(존 트라볼타) 일당이 인질살해를 위협하며 1시간내에 1천만불 지불을 요구하고, 하필이면 이날 근무중이던 지하철 배차 담당인 월터 가버(댄젤 워싱턴)는 어떨결에 인질범 협상자 역할까지 맡게 되면서 사건에 계속 말려든다는 내용이다.



일단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펠햄 123'이 시간과의 싸움을 그린 스릴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약속시간까지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는 인질범들의 협박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에 쫓긴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 스토리가 워낙 뻔한 내용이었기 때문인지 스릴이나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Breakbeat 사운드트랙으로 긴박한 분위기를 살려보려 노력한 듯 하지만 소용없었을 뿐만 아니라 되레 어색해 보이기만 했다.

그렇다. 해리 그레그슨-윌리암스(Harry Gregson-Williams)의 사운드트랙도 이상했다. 영화는 올드스쿨 스릴러인데 배경음악은 Breakbeat이다보니 서로 매치가 되지 않았다. 코나미의 비디오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시리즈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한 그레그슨-윌리암스의 일렉트로 음악을 이용해 올드스쿨 분위기를 누르고 현대적인 맛을 내려 한 듯 하지만 배경음악 혼자서만 신난 듯 했다.

라이더(존 트라볼타)와 가버(댄젤 워싱턴)의 관계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긴 하지만 서로간에 친근감이 형성될 정도는 아니었다. 댄젤 워싱턴과 존 트라볼타라는 멋진 남자배우 2명이 나오는 만큼 '사나이 영화'다운 무언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무 것도 건질 게 없었다.

그렇다고 영화배우와 그들의 연기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아니다. 워싱턴과 트라볼타는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문제는 밋밋한 캐릭터와 스크립트에 있었다.

댄젤 워싱턴이 평범한 지하철 공사 직원이 아니라 터프가이 형사였다면 더욱 볼만 했을 지 모른다. 주인공이 차라리 형사였다면 화끈한 액션씬이나마 풍부했을 테지만 워싱턴이 연기한 가버는 경찰이 해야할 일을 대신 하면서도 터프가이 액션맨은 아닌 어중간한 캐릭터였다. 범죄와 인질극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평범한 남자가 말도 안되는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설정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포텐셜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존 트라볼타가 연기한 라이더라는 캐릭터도 아쉬움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얼핏보기엔 싸이코 킬러 같지만 그다지 악랄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이런 성격의 영화에서는 악랄할수록, 또라이같은 짓을 많이 할수록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가 되는데 트라볼타의 라이더는 그런 시늉만 하는 정도에 그쳤다. 라이더가 약간 또라이 기질이 있는 납치범이긴 해도 싸이코패스 시리얼 킬러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비춰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트라볼타의 라이더는 기대했던만큼 쿨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캐릭터들 간의 드라마가 부족하다면 액션씬이라도 풍부해야겠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폭력수위도 R레이팅이 무색할 정도 였다. 간만에 R등급을 받은 여름철 액션 블록버스터가 나오나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아니었다. '펠햄 123'는 PG-13과 피 한방울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 영화는 R레이팅이다'라는 것을 억지로 강조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액션씬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PG-13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펠햄 123'이 올드스쿨 스릴러라고?

토니 스코트의 스타일이 올드스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리메이크작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오리지날과 리메이크 둘 중 어느 게 더 나은 것 같냐고?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지만 책과 70년대판을 모두 보지 않은 관계로 2009년판과의 비교는 곤란하다. 하지만 그래도 오리지날이 이번 리메이크보다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토니 스코트 연출에 댄젤 워싱턴, 존 트라볼타 주연의 R레이팅 액션 스릴러라니까 은근히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많겠지만 '펠햄 123'는 지극히도 평범하고 밋밋한 올드스쿨 스릴러에 불과하다. 평균이하는 아니지만 평균을 크게 웃돌 만한 영화는 못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할 정도는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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