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소니언 연구소(Smithsonian Institution) 소장, 피터 솔로몬이 온몸에 문신을 한 괴한에게 납치된다.
그의 납치사실을 모른 채 워싱턴 D.C에 도착한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랭든(Robert Langdon)은 절친한 사이인 피터 솔로몬을 구출하기 위해 납치범이 요구하는대로 프리메이슨(Freemason)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랭든은 피터 솔로몬을 비롯한 프리메이슨 멤버들이 목숨보다도 중요시 하는 비밀을 밝히는 게 올바른 건지 고민한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사안이긴 해도, 인질로 잡힌 솔로몬 역시 죽으면 죽었지 프리메이슨의 비밀이 엉뚱한 자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치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프리메이슨 멤버도 피터 솔로몬의 목숨보다 비밀이 더욱 중요하며, 솔로몬 자신도 이를 잘 알고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솔로몬이 죽는 한이 있어도 납치범의 요구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터 솔로몬의 여동생, 캐더린은 입장이 다르다. 프리메이슨의 비밀이고 나발이고 오빠를 구출해야만 한다는 것.
여기에 CIA까지 가세한다. CIA는 랭든이 납치범의 요구대로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계속 밝혀내기를 바라는 눈치다.
자, 여기서 한가지 짚어볼 게 있다.
실제로 저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상식적으로 올바를까? 그 '비밀'이라는 게 별 것 아니라면 사람을 살리고 보는 게 당연하겠지만, 만약 그 비밀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면? 인질 역시 비밀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않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뜻을 따르는 게 도리가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랭든이 납치범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지키기로 하면 고대 암호와 심볼을 해독할 기회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댄 브라운(Dan Brown)의 새로운 소설에 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게다가 제목까지 '로스트 심볼(The Lost Symbol)'이니 아무래도 어쩔 수 없겠지?
꼭 납치범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도 암호와 심볼을 해독하는 부분을 넣을 수 있지 않냐고?
물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 댄 브라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하다. 랭든이 납치범이 시키는대로 따르면서 암호를 해독하도록 하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스토리를 복잡하게 꼬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브라운 역시 약간 걸리는 데가 있긴 있었나 보다. 랭든이 납치범의 요구를 따라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달기 위해 CIA를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National Security Crisis'. 스파이 소설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를 잡는 내용도 아닌데 CIA, 'National Security Crisis' 타령을 하는 게 약간 우습긴 하지만, 작가 댄 브라운은 랭든이 계속해서 프리메이슨의 암호와 심볼을 해독해야만 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National Security Crisis'를 일으킬 만한 것일까?
알고봤더니 별 것 아니더라. 스캔달 거리는 돼도 'National Security Crisis'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뭐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겠지?
그래도 온몸에 문신을 한 거한의 납치범은 제법 흥미롭게 들린다고?
지금까지 나온 세 편의 로버트 랭든 시리즈에 이와 비슷한 성격의 악당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캐릭터다. 게다가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동기가 무엇인지가 너무 금새 드러나기까지 한다. 그의 정체와 동기가 마지막 순간까지 미스테리로 남아있어야 재미가 있겠지만 '로스트 심볼'에선 책의 절반을 읽기도 전에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살짝 보여주면서 암시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빤쓰까지 내리고 다 보여주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댄 브라운이 'Strip Tease'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니다. 극적인 순간에 끝나면서 '다음 주에 계속...'이라고 나오는 낚시성 TV 시리즈처럼 소설을 쓰는 데 소질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스피디하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딱 자르고 궁금증을 남기면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곤 하는 것. 어쩌다 한 두 번 정도 이러는 게 아니다. 거의 매 챕터마다 끝나갈 때가 되면 항상 큰 '느낌표'가 기다리면서 다음 챕터에서 어떻게 될지 독자들이 궁금하게 만들도록 셋업한다. 댄 브라운은 독자들이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듯. 그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덕분이라고 본다. 브라운은 소설보다 TV 시리즈 스크린플레이를 쓰라고 하면 아주 잘 할 것 같은 작가다.
댄 브라운의 클리프행어(Cliffhanger) TV 시리즈 스타일에 일단 빠져들면 전반적인 줄거리가 엉성하다는 것에 신경 쓸 겨를없이 숨쉴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내용도 별 볼 일 없고 제대로 된 미스테리도 하나 없지만 긴박하게 흐르는 사건 전개에 휩쓸려버리는 것이다. 일부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고도 할 것이다.
이런 류의 스릴러 소설은 100% 인터테인먼트 용인 만큼 가볍게 즐겼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건 아니다.
작가 댄 브라운은 독자들이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을 주지않고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도록 만든 데다, 약간 억지처럼 보이긴 해도 로버트 랭든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암호해독까지 곁들였으니 할 것 다 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줄거리 흐름이 빤히 보이고 제대로 된 미스테리가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재로 삼은 프리메이슨의 비밀에도 흥미가 끌리지 않았다. 아무리 가벼운 스릴러 소설이더라도 이름값을 하려면 못해도 미들급(Middleweight) 정도는 되어야 했으나 '로스트 심볼'은 플라이급(Flyweight) 수준에 그쳤다.
이전 로버트 랭든 소설은 못해도 라이트급(Lightweight)은 됐다. 하지만 '로스트 심벌'은 플라이급에 그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 프리메이슨을 꼽아야 할 것 같다. 프리메이슨도 많은 비밀을 갖고있는 단체라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 '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와 '앤젤스 앤 디몬스(Angels & Demons)'의 흥행수익을 비교해 봐도 답이 쉽게 나온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그린 '다 빈치 코드'는 월드와이드 7억5800만불을 기록했으나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 '앤젤스 앤 디몬스'는 월드와이드 4억8400만불에 그쳤다. '로버트 랭든이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려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서 암호를 해독한다'는 스토리라인은 두 편 모두 차이가 없었지만 '앤젤스 앤 디몬스'는 '다 빈치 코드'의 흥행수익에 크게 못 미쳤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세계 영화관객들이 바티칸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 빈치 코드'와 '앤젤스 앤 디몬스' 흥행수익의 차이는 예수와 바티칸의 차이라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로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바티칸에 대한 이야기에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는데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이 워싱턴 D.C에 피라미드를 만들었든 만리장성을 쌓았든 관심이나 가질까?
그런데도 댄 브라운은 프리메이슨을 '로스트 심볼'의 소재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작가 댄 브라운이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 시리즈를 너무 감명깊게 본 때문일까? '내셔널 트레져'가 브라운의 로버트 랭든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인 만큼 이번엔 브라운이 '내셔널 트레져' 흉내를 내기로 한 것일까?
이 부분을 읽어보면 그 이유가 대충 감이 잡힌다.
"Okay, and how many of you have ever been to Washington?"
A scattering of hands went up.
"So few?" Langdon feigned surprise. "And how many of you have been to Rome, Paris, Madrid, or London?"
Almost all the hands in the room went up.
As usual.
'로스트 심볼'에서도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로버트 랭든이 관광명소들을 여러 곳 방문하는 만큼'다 빈치 코드 투어', '앤젤스 앤 디몬스 투어'가 생겨났던 것처럼 이번엔 워싱턴 D.C에 '로스트 심볼 투어'가 생길 수도 있다. 소설 덕분에 워싱턴 D.C에 관관객들이 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로스트 심볼'을 읽고 워싱턴 D.C를 방문할 생각을 하게 될 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로스트 심볼'이 '다 빈치 코드'를 기억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 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 빈치 코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종교와 관련된 매우 민감하면서도 논란거리가 될 만한 소재와 줄거리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스트 심볼'은 생각밖으로 깨끗했다. 매우 민감하면서도 전세계인들이 공감할 만한 문제를 다루지 않았고, 논란이 될 만한 부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다 빈치 코드' 하면 생각나는 게 무엇인가? 암호해독과 살인 미스테리인가? 아니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인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살인 미스테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해도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 하나만은 뚜렷하게 기억날 것이다. '다 빈치 코드'가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렸던 이유도 댄 브라운의 미스테리 스릴러 때문이 아니라 소설에 나온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 댄 브라운이 아주 기막힌 소재를 고르는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지 서스펜스 스릴러로써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에서 논란거리를 제하고 나면 남는 건 숨막히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암호해독하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작가 댄 브라운이 흥미로운 소잿감을 고르는 재주, 재미있는 퍼즐을 만드는 재주, 줄거리를 숨막히게 전개시키는 재주는 있어도 훌륭한 스릴러 소설가가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논란거리를 제한 나머지에선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엔 프리메이슨을 소재로 삼았다. 여기서부터가 실수였다. 국제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잿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그 앙상함이 드러나고 말았다. 댄 브라운의 소설에서 섹시한 소재와 논란거리를 제하고 나면 얼마나 앙상한지 보여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얼마나 앙상했냐고?
'로스트 심볼'은 암호해독 퍼즐을 제외하곤 하나부터 열까지 넘겨짚었던대로 척척 맞아떨어질 정도였다. 나름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미스테리를 마련한 듯 했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흔해빠진 이야기에 불과했다. 스릴러 영화나 소설을 어지간히 본 사람들이라면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퍼즐을 풀 단서를 찾아 헤매는 재미도 예전만 하지 않았다. '앤젤스 앤 디몬스'와 '다 빈치 코드'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이라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소재가 흥미진진했다면 견딜 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메이슨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내용을 죄다 파악했기 때문인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젠 그만 좀 돌아다니고 끝내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밀려온 그 후련함이란!
그래도 어떻게 보면 오락용 스릴러 소설로써는 그런대로 제 역할을 한 듯 하다. 내용은 둘 째 치더라도 댄 브라운의 숨막히는 듯한 전개에 휩쓸리기만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내려가게 되는 것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러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다. 애초부터 '로스트 심볼'에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맥빠질 줄은 몰랐다. '로스트 심볼'은 지금까지 나온 댄 브라운의 로버트 랭든 시리즈 중에서 최악이다.
마지막으로, '로스트 심볼'이 영화화 된다면?
영화로 얼마나, 어떻게 잘 옮기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써는 '앤젤스 앤 디몬스'만큼 벌어들이는 것도 힘들 것 같다.
굳이 하나 더 보태자면, 여자주인공인 캐더린 역에는 줄리앤 무어(Julianne Moore)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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