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가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역을 맡았다고?
'아이언맨(Iron Man)'의 다우니가 아더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셜록 홈즈라니!
이 소식을 듣고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를 왜 캐스팅했는지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아이언맨'을 통해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관객들에게 낯익은 배우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예전과 달리 진지하고 과격해지면서 공석이 된 'TONGUE-IN-CHEEK' 스타일의 히어로 자리를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로 메꾸려던 것으로 보인다.
기왕이면 영국배우가 셜록 홈즈 역을 맡았더라면 더욱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배우가 셜록 홈즈 역을 반드시 맡아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 007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1962년 시리즈 1탄부터 지금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호주출신 배우들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왔지만, 셜록 홈즈는 이와 같은 전통이 없으므로 미국배우가 맡았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다우니 주니어가 19세기 영국의 명탐정, 셜록 홈즈 역에 잘 어울렸을까?
아무리 봐도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는 어렸을 적에 밤 늦게까지 읽곤 했던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서까지 '원작 vs 영화' 타령을 할 생각은 없지만, '19세기에 나타난 아이언맨'으로 보였을 뿐 셜록 홈즈 역으로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Tony Stark)의 캐릭터를 '셜록 홈즈'로 옮겨오도록 한 것까지는 좋은데 '다우니 주니어=셜록 홈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셜록 홈즈' 영화를 약간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같으면서도 약간은 제임스 본드 영화와 같은 스타일리쉬하면서 코믹한 어드벤쳐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은 문제될 게 없었다. 트레일러만 보더라도 '셜록 홈즈'가 어떠한 성격의 영화인지 금새 파악되는 만큼 진지한 미스테리 영화가 아니라 얼렁뚱땅 액션 코메디라는 데 실망한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럴싸하게 구색만 갖췄을 뿐이라는 데 있었다. 제작진이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이에 필요한 파트들도 거의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성수기에 쏟아져 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드벤쳐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들려 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구색만 갖췄을 뿐 제대로 흉내내지 못한 것.
바로 여기까지가 가이 리치(Guy Ritchie) 감독의 영화 '셜록 홈즈'의 한계였다.
틴에이저용 코믹 어드벤쳐 영화도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다. 똑같이 실없고 유치한 영화이더라도 이런 영화에 대한 노우하우가 풍부한 제작진이 만든 영화는 어딘가 달라도 다르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야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에선 이러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줄거리부터 재미가 없었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주드 로) 듀오가 함께 풀어야 하는 미스테리가 있긴 있었지만, 셜록 홈즈의 명성에 걸맞는 수준의 미스테리나 반전은 없었다.
그나마 유머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억지로 쥐어짜는 유치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옅은 미소조차 지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코믹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으니 그나마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더라면 미소지을 기회가 전혀 없을 뻔 했다.
대부분의 틴에이저용 어드벤쳐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적어도 한 번쯤은 시선을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의 메갠 폭스(Megan Fox)를 꼽을 수 있다. '셜록 홈즈'에선 이 역할을 레이첼 맥애덤스(Rachel McAdams)가 맡았다.
그렇다. 맥애덤스가 할 일이 없어서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면서 등을 살짝 보여준 게 아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녀가 맡은 캐릭터 아이린과 셜록 홈즈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볼 게 없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마지 못해 여주인공을 집어넣었다는 티를 내 듯 뻔한 내용이 전부였다.
마크 스트롱(Mark Strong)을 악역으로 캐스팅한 것은 그런대로 좋았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블랙우드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나 어울림 직한 캐릭터였다. 이 바람에 그의 악역 연기가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로 가야 하는데 '셜록 홈즈'로 온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악당'처럼 보였다.
영화가 좀 수상하다보니 악당들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헷갈리는 듯.
그렇다. '셜록 홈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빼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다 보니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무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앉아있다가 엔딩 크레딧 올라가가는 것을 보면서 일어선 기억밖에 없다.
이런데도 영화 제작진은 시리즈화를 계획하는 듯 하다. 요샌 너도 나도 시리즈화에 도전하는 판이니 '셜록 홈즈'라고 안된단 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셜록 홈즈'를 보고나면 속편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가 멋진 어드벤쳐 영화 시리즈로 자리잡는 것을 보고싶지만, 이런 식으로 할 바엔 집어치우는 게 나을 것이다.
새로운 해석과 시대 분위기에 맞춰가는 건 좋지만...
답글삭제만일 유머와 색다른 해석이 목표라면...
셜록 홈즈 캐릭터 특유의 시니컬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라도 유머러스 하게 만들수 있었을 듯 합니다.
다우니 주니어는 마치 골드러시 시대의 글도 읽을 줄 알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잘생긴 똘똘한 카우보이가 영국으로 이민가서 탐정사무소 개업한 캐릭터 같아서 쪼금 실망입니다...^^
애초부터 셜록 홈즈 영화를 제대로 만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코믹북 버전 셜록 홈즈라고 해야겠죠.
답글삭제카우보이라 하셨으니 말인데요, 전 이 영화가 윌 스미스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와 같은 서부영화처럼 보였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