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팀과 아들 팀의 대결이었다. 아니, 매닝 보울(Manning Bowl)이었다고 할까?
인디아나폴리스 콜츠(Indianapolis Colts) 쿼터백, 페이튼 매닝(Peyton Manning)의 아버지 아치 매닝(Archie Manning)이 뉴올리언스 세인츠(New Orleans Saints) 쿼터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치 매닝은 플레이오프를 비롯한 포스트시즌 경기를 단 한 번도 뛰어보지 못하고 은퇴했다. 1970년대 당시 뉴올리언스 세인츠가 과히 좋은 팀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아치 매닝의 두 아들, 페이튼과 일라이(Eli) 매닝은 모두 수퍼보울 우승까지 맛봤다. 아버지의 한을 아들들이 풀어준 것이다.
하지만 뉴올리언스 세인츠엔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뉴올리언스가 단 한 번도 수퍼보울 우승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승은 고사하고 세인츠는 NFC 챔피언이 된 적도 없었다. 그러난 2009년 시즌 세인츠가 이를 모두 바꿨다. NFC 챔피언쉽에서 브렛 파브(Brett Favre)의 미네소타 바이킹스(Minnesota Vikings)를 누르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NFC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NFC 챔피언은 수퍼보울 진출권을 따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수퍼보울에서 세인츠와 대결할 AFC 챔피언이 아치의 둘 째 아들, 페이튼이 주전 쿼터백으로 있는 인디아나폴리스 콜츠였던 것. 하필이면(?) 이 두 팀이 수퍼보울에서 맞붙게 되었으니 심경이 참 복잡했을 듯 하다. 아치가 누구를 응원했을 지는 짐작이 가지만, 양팀 모두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보니 울고싶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겼을까?
승리는 아버지 팀의 몫이었다. 파이널 스코어는 아버지 팀 31, 아들 팀 17.
전반엔 아들 팀이 어렵지 않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해 전 같은 장소에서 수퍼보울 챔피언에 올랐던 경험이 있는 페이튼 매닝과 인디아나폴리스 콜츠가 '첫경험'인 드류 브리스(Drew Brees)와 뉴올리언스 세인츠보다 여유있어 보였다.
그러나 세인츠는 짜릿한 첫경험의 추억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10대6으로 뒤진 채 전반을 마친 세인츠가 후반을 기습 온사이드킥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 상황에 온사이드킥을 차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만약 실패했더라면 세인츠 엔드존 거의 코앞에서 콜츠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것이므로 무모하기 그지없는 도박이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세인츠 헤드코치 숀 페이튼(Sean Payton)은 "미친 짓을 했다"는 소리를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시켰다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점수내는 기계라고 할 수 있는 페이튼 매닝으로부터 공격권을 빼앗았으니 큰 성공이었다. 수퍼보울의 승패가 바로 이 플레이에서 결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콜츠는 후반들어 세인츠에게 리드를 내주는 등 전반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24대17로 뒤져있던 페이튼 매닝의 콜츠가 경기종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동점 터치다운을 성공시킬 수 있을 듯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를 점치기 힘들게 만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금년 수퍼보울에서도 인터셉션 리턴 터치다운이 터졌다. 이번엔 세인츠 코너백 트레이시 포터(Tracy Porter)의 차례였다. 매닝의 패스를 인터셉트한 포터는 그대로 반대편 엔드존까지 뛰어갔다.
파이널 스코어는 세인츠 31, 콜츠 17.
이렇게 해서 페이튼 매닝은 수퍼보울 전적 2전 1승1패가 됐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다. 매닝 뿐만 아니라 톰 브래디(Tom Brady), 브렛 파브(Brett Favre), 커트 워너(Kurt Warner) 등 쟁쟁한 수퍼스타 쿼터백들도 수퍼보울에서 패한 역사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의 트로이 에익맨(Troy Aikman),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San Francisco 49ers)의 조 몬타나(Joe Montana),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의 테리 브래드샤(Terry Bradshaw) 등과 같은 수퍼보울 불패 쿼터백이 되는 데 실패했다. 테리 브래드샤와 조 몬타나는 각각 네 차례 수퍼보울에 진출에 네 번 모두 우승했으며, 트로이 에익맨은 세 차례 진출해 세 번 모두 이겼다. 현재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벤 로슬리스버거(Ben Roethlisberger)도 수퍼보울에 두 차례 진출해 두 번 모두 승리한 쿼터백이다.
물론 꾸준히 수퍼보울에 진출해 여러 번 우승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톰 브래디는 패트리어츠를 모두 네 차례 수퍼보울까지 이끌었고, 그 중 세 번 우승했다. 비록 1패가 있긴 하지만, 세 번 우승했으면 그것만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페이튼 매닝도 이번 수퍼보울 패배를 뒤로 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퍼보울 패배가 있는 쿼터백과 그렇지 않은 쿼터백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수퍼볼 MVP, 드류 브리스는? 브리스도 브래드샤, 몬타나, 에익맨처럼 수퍼보울 불패 쿼터백이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앞으로 브리스가 몇 번이나 더 수퍼보울에 진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거기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쉽사리 지지 않을 것 같은 선수다. 브리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하나의 수퍼보울 불패 쿼터백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인츠 헤드코치 숀 페이튼...
빌 파셀스(Bill Parcells)가 달라스 카우보이스 헤드코치였을 때 어시스턴트 헤드코치 겸 쿼터백 코치였던 그가 머지않아 훌륭한 헤드코치가 될 줄 알았다. 수퍼보울 우승 다시 한 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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