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8일 월요일

워싱턴 D.C 폭설의 추억 - 2003년 VS 2010년

워싱턴 D.C로 와서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보면 9-11 테러, 탄저균 소동, D.C 스나이퍼 사건 등 그다지 좋지않은 사건들이 전부다.

폭설의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D.C로 이동하기 전까지 살았던 지역은 죽었다 깨도 눈을 구경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D.C로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폭설을 목격하게 됐다. 2003년 2월 미국 동부를 강타했던 바로 그 폭설이다.

당시 워싱턴 D.C 적설량은 16.7인치였다고 한다. 센티미터로는 42.4cm라고 한다.

나는 "눈이 이렇게 많이 온 것은 난생 처음이다!"며 흥분했지만, 뉴욕 주 북부에 살았다던 빨간머리 지지배는 "이것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며 면박을 주더라. 뉴욕 북부에 살면서 눈구경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눈이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 걸 목격한 게 머리에 털나고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시 뒷처리가 문제였다. 눈이 며칠동안 계속 오면서 도로를 스키장으로 바꿔놓은 것. 인도에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차도로 걸어다녔는데, 차도에서도 눈이 발목까지 빠졌다. 이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자동차가 아닌 다음엔 통행이 불가능했다.그러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밝았다. 이런 폭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없어서 였는지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신난 표정이었다. 매섭게 추운 날씨에 차도 위를 마치 바닷가의 백사장을 거닐 듯 어기적거리며 걸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차도로 걷고있으니 우리도 신호를 지켜야 하는 거냐"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들 싱글벙글이었다. 간혹 스키를 탄 친구들도 보였고, 괜히 할 일 없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여기까지는 2003년 2월의 이야기였다.

그 이후론 폭설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스노우스톰이 없었다. 매년 겨울철마다 눈이 오긴 했지만 10~20센티 정도에서 맴돌았을 뿐 지난 2003년 2월 폭설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9년 12월 2003년 2월 기록을 위협할 만한 수준의 눈이 내렸다. 하필이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최신작, '아바타(Avatar)'가 개봉하는 주말이었기 때문에 눈에 파묻히기 전에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이 때에도 16.4인치(41.65cm)나 왔으니 2003년 기록을 거진 깰 뻔 했다. 하지만 6년 전처럼 차도가 스키장으로 변한 광경은 볼 수 없었다. 눈이 그친 직후 날씨가 많이 풀린 덕분이었을까?

아무튼 오랜만에 눈다운(?) 눈을 봤으니 이번 겨울은 이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라운드2가 있었다. 2010년 2월 첫 째 주말 워싱턴 D.C를 온통 눈으로 덮어버린 기록적인 스노우스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번엔 20인치 이상이 쏟아졌단다. 50센치 넘게 온 것이다. 이 덕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온 건 머리에 털나고 처음"이라는 소리를 또 한 번 하게 됐다.

일단 눈이 쌓인 걸 보면 장난이 아니다.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진 가로수 나뭇가지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런 나뭇가지들이 전봇대를 덮치면 정전이다. 주차장들도 온통 눈판이다.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도 쉽지않지만, 주차장 주위에 쌓인 눈 때문에 차를 끌고나가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난 2003년처럼 도로가 스키장으로 둔갑하진 않았다. 눈이 그친 직후엔 도로사정이 7년전과 매우 비슷했지만,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도로에 쌓였던 눈이 빨리 녹은 바람에 어지간한 도로들은 이틀만에 거진 정상화 됐다. 여전히 골목이나 주차장 등엔 눈 천지지만, 일단 큰길까지만 나가면 걱정할 게 별로 없다. 거기까지 나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물론 동네마다 사정이 각기 다를 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있는 곳은 2003년 폭설 때보다 제설 복구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았다. 눈이 그치자마자 포근해진 날씨 덕분일 수도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번엔 7년 전처럼 며칠 동안 타운 전체가 스키장으로 둔갑하진 않았다. 그래서 인지, 비록 적설량은 이번이 더 많지만 느끼기엔 7년 전에 눈이 더 많이 왔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스노우스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 눈이 또 온단다. 워싱턴 D.C를 비롯한 미국 북동부 지역에 이번 주 화, 수요일 눈이 또 온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와 Weather.com 모두 또다른 스노우스톰을 예보했다. 이번엔 지난 주 만큼 눈이 쏟아지진 않을 것이라지만, 여전히 8~10인치는 더 올 모양이다. 게다가 이번엔 바람까지 세게 불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아직 눈을 다 치우지도 못했는데 그 위에 눈이 또 온단다.

이제 슬슬 타월을 던질 때가 온 것 같구려...ㅠㅠ

폭설 덕분에 이젠 동계올림픽도 그리 기다려지지 않는다. 문 열고 밖에만 나가면 동계올림픽인데 뭐...

만약 이번 동계올림픽에 '삽으로 눈 치우기' 종목을 추가시키면 워싱턴 D.C 사람들이 금메달 딸 거다. 이번에 다들 삽질훈련 제대로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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