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3일 화요일

동계 올림픽 덕분에 아이스하키에 재미를...

나는 아이스하키 팬이 아니다. 아이스하키도 나름 흥미진진하지만 미식축구를 더 좋아한다. NHL 경기 중계방송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거리니 말 다했으리라.

내가 아이스하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답답하게 실내에서 뛰어다니는 스포츠보다 풋볼, 축구, 야구 등 야외에서 하는 스포츠를 더 좋아한다. 미식축구 팀이더라도 홈구장이 돔(Dome)인 팀은 좋아하지 않는다. 천연잔디 구장에서 눈, 비를 맞으며 해야 풋볼답지 카펫이 깔린 돔구장에서 뛰어노는 건 제 맛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돔팀들은 지난 1999년 시즌 세인트 루이즈 램스(St. Louis Rams)가 수퍼보울 우승을 하기까지 "돔팀은 수퍼보울 우승을 못한다"는 징크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겨울철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실내에서 하는 종목보다 스키, 스노우보드 등 아웃도어(Outdoor) 스포츠를 더 좋아한다. 실내 아이스링크에서 하는 스포츠는 진정한 겨울철 스포츠로 보기 힘들다. 눈과 얼음을 구경할 수 없는 하와이에도 실내 아이스링크가 있는 판이니 4계절 스포츠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때문에 눈덮힌 산에서 뒹구는 종목들이 진정한 겨울철 스포츠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면 내가 인도어(Indoor) 스포츠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본다.

하지만 동계 올림픽 기간인데 물불 가릴 게 있겠수?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기로 했다. 러시아와 체코의 동계 올림픽 남자 예선 경기였다.

그런데...

워낙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었다. 처음엔 퍽(Puck)이 작아서 인지, 아니면 경기 스피드가 워낙 빨라서 인지 액션이 어디서 벌어지는지 종종 놓치곤 했지만, 곧 익숙해지고 나니까 "이야, 재미있다!"가 됐다.

게다가 3쿼터에 터친 러시아의 세 번째 골은 정말 걸작이었다.

세 번째 골은 러시아 선수가 날린 빅태클로 시작했다. 체코 선수가 해프라인을 넘어오자 러시아 선수가 무지막지한 빅태클를 날려 자빠뜨리며 퍽을 빼앗은 것. 미식축구에서도 드물게 나오는 완벽한 빅태클을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나 태클이 셌는지 중계방송 팀까지 "Oh my goodness!"를 외칠 정도였다.


▲수비하던 러시아 선수가 체코 공격수를 빅태클로 넘어뜨린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빅태클로 퍽을 빼앗아 역공에 들어간 러시아는 불과 몇 초만에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퍽을 빼앗은 러시아가 왼쪽으로 치고 들어가더니...


▲오른쪽으로 패스, 그리고 슛...

저런 태클이 흔히 나오는 지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자주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이스하키 팬들에겐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이번 동계 올림픽 베스트 하이라이트 탑5에 들 만한 장면으로 보였다. 러시아 선수가 태클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Oh shiiiiiit!"이 터져나왔으니까.

만약 러시아의 세 번째 골이 터진 상황을 미식축구에 비유하면 어떻게 될까?

"발티모어 레이븐스(Baltimore Ravens) 수비수, 레이 루이스(Lay Lewis)가 빅태클을 날리자 상대팀 러닝백이 공을 흘리며 턴오버를 범했고, 그러자 레이븐스의 세이프티 에드 리드(Ed Reed)가 공을 줏어들더니 바로 리턴 터치다운을 했다."라고 하면 비슷하려나?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고나서 풋볼타령을 하는 걸 보니 NFL 시즌이 그리운 모양이라고?

불과 몇 주 전에 수퍼보울을 했는데 벌써 그리운 건 아니다. 하지만 NBC에서 썬데이 나잇 풋볼 중계방송을 하는 알 마이클스(Al Michaels)와 크리스 콜린스워스(Chris Collinsworth)가 나란히 앉아서 올림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NFL 생각을 안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수?


▲NBC 썬데이 나잇 풋볼의 알 마이클스와 크리스 콜린스워스

아무튼 러시아 선수의 빅태클 덕분에 아이스하키에 재미를 붙였는지 내친 김에 미국과 캐나다의 경기도 봤다. 아이스하키에 죽고 사는 캐나다와 국가대표간 경기에서 수십년간 캐나다를 이기지 못했던 미국이 맞붙는 빅게임이라니까 꼭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게도 러시아와 체코 경기에서 목격했던 수준의 멋진 빅태클은 나오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아슬아슬했던 상당히 재미있는 경기였다.


▲다섯 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는 미국팀

동계 올림픽 덕분에 아이스하키에 재미를 붙인 모양인데,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이스하키를 볼 거냐고?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실내 스포츠는 여전히 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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