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월드컵 조별 라운드가 끝나고 16강 매치가 시작했다. 월드컵은 16강부터가 진짜이므로 이제야 본격적으로 월드컵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6강 첫 경기서부터 오심이 눈에 띄었다.
16강 첫 경기는 우루과이와 한국의 경기였다.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골키퍼 실책으로 우루과이에 첫 골을 내준 한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수비수가 어이없는 실책을 하면서 우루과이에 득점기회를 내줬다.
그.러.나...
심판은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리플레이 확인 결과 우루과이의 공격수, 수아레즈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축구에선 일단 심판이 오프사이드라고 깃발을 들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만약 심판이 오심을 하지 않고 계속 플레이하도록 놔뒀더라면 바로 2대0이 되었을 것이다. 수아레즈가 한국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거저 굴러온 기회를 날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전반 종료 직전엔 우루과이 선수가 날린 슛을 한국 수비수가 팔로 막았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라이브로 봤을 때도 한국 수비수의 팔에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리플레이로 확인해 보니 실제로 핸드볼이 맞았다.
패널티 박스 안에서 발생했으므로 우루과이의 패널티 킥 기회였으나 주심이 못봤다는데 어쩌겠수?
만약 주심이 이러한 오심을 하지 않았다면 우루과이는 전반전에만 3대0으로 한국을 리드할 수 있었다.
오심 퍼레이드는 16강 둘 째날로 이어졌다. 둘 째날에 벌어진 독일-잉글랜드, 아르헨티나-멕시코 경기 모두에서 골과 직접적인 관련있는 오심이 나왔다.
독일-잉글랜드전에선은 잉글랜드의 중거리 슛이 골라인을 분명히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이를 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크로스바를 맞고 튕기면서 분명히 골라인을 넘어갔는데도 심판은 골을 선언하지 않았다. 독일 골키퍼는 골라인을 넘어갔던 공이 다시 튕겨나오자 이를 잽싸게 낚아채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기를 계속했다.
리플레이 확인 결과 잉글랜드의 램퍼드가 날린 슛이 골라인을 넘어도 한참 넘어갔던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심판이 못봤다는데 어쩌겠수?
이 바람에 잉글랜드는 2대2 동점을 만들 수 있었던 기회를 날리며 2대1로 전반을 마쳤다.
축구와 미식축구는 라인 룰이 다르다. 미식축구에선 공이 골라인에 닿기만 하면 터치다운으로 인정한다. 축구처럼 공이 완전히 라인을 넘어가야만 인정하는 게 아니다. 이는 골라인 뿐만 아니라 사이드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식축구에선 공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가 사이드라인을 밟아도 라인아웃이며, 공이 인사이드에 있었다 해도 플레이어가 라인아웃 위치에 있었으면 아웃이다. 이 때문에 미식축구 팬들의 눈엔 축구선수들이 라인아웃 위치에서 태연하게 공을 차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램파드의 골은 축구 룰로 따져도 명백한 골이었다. 공이 100% 골라인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선에 맞고 튕겨나온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공이 골라인 너머로 들어갔다가 다시 바깥으로 튕겨나온 것을 어떻게 골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건, 1966년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었던 잉글랜드와 독일의 경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세 번째 골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갔는지 불분명했으나 주심이 골로 인정했다고 한다. 이 바람에 잉글랜드는 독일을 4대2로 누르고 월드컵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44년전 월드컵에서 벌어졌던 것과 매우 비슷한 사건이 2010년 월드컵에서 또 발생했다. 그것도 독일과 잉글랜드전에서 말이다. 이 경기를 중계방송했던 ESPN 아나운서는 이를 두고 'Come around goes around'이라고 했다. 44년전 월드컵에서 독일을 열받게 했던 걸 남아프리카에서 되돌려받았다는 얘기다.
스코어도 44년전과 비슷하게 나왔다. 1966년엔 잉글랜드 4, 독일 2였으나 2010년엔 독일 4, 잉글랜드 1.
그렇다고 잉글랜드의 패인이 전적으로 오심에 있는 건 아니다. ESPN 애널리스트 스티브 맥매너맨(Steve McManaman)과 여겐 클린스맨(Jurgen Klinsmann) 모두 잉글랜드가 오심 덕분에 동점을 만들 기회를 날린 건 사실이지만 후반 들어서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되레 2골을 더 내준 점을 지적하면서 오로지 오심 때문에만 졌다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심가지고 칭얼대지 말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울하게 만드는 건 44년전이나 지금이나 골라인 논란이 변함없다는 점이 아닐까...
오심논란은 독일-잉그랜드전에 이어 벌어진 아르헨티나-멕시코전에서도 발생했다. 전반에 터진 아르헨티나의 첫 골이 문제였다. 메시로부터 패스를 받은 테베즈가 골을 넣었는데 문제는 테베즈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는 것.
그러나 심판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심판들이 오프사이드를 놓치는 일이 빈번하므로 여기까지는 '또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심판들이 모여 무언가를 의논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골이 들어갔을 때엔 골로 인정했으면서 뒤늦게 오심을 인정하고 골을 무효화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심판들이 모여 테베즈의 오프사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멕시코 감독은 빅 스크린을 손으로 가리켰다. "리플레이를 봐라. 오프사이드가 명백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심판들은 테베즈의 골을 인정하기로 의견일치를 본 듯 했다. 실수를 했다는 것까지는 알아차린 듯 했으나 판정을 번복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듯 했다.
여기서 심판들이 잘못한 건 골이 들어간 이후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다. 현재 축구 룰대로 하자면 심판이 오프사이드를 못봤더라도 골로 인정했으면 그것으로 끝이어야 옳기 때문이다. FIFA는 현재 리플레이 리뷰를 하지 않고 있으므로, 심판들이 대형 스크린에 나온 리플레이를 보고 오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더라도 판정을 번복해서는 안 된다. 리플레이 리뷰라는 것 자체가 없는데 심판들이 빅 스크린을 보고 판정을 번복하면 얘기가 더 웃겨지기 때문이다. 자칫하단 심판 맘대로 언제는 리플레이 리뷰를 하고 언제는 안 하냐는 또다른 논란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박치기 사건으로 퇴장당했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 심판들의 '언오피셜 리플레이 리뷰' 때문에 퇴장당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었다. 지단이 박치기를 하는 순간을 놓쳤던 심판들이 경기장 빅스크린에 나온 리플레이를 보고 뒤늦게 레드카드를 줬다는 것이었다. 지단이 반칙을 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해도 축구엔 리플레이 리뷰가 없는 만큼 주심이 빅 스크린을 보고 레드카드를 꺼냈다면 잘못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아르헨티나-멕시코전을 맡았던 이탈리아 주심이 골을 그대로 인정한 것은 잘한 것이다. 이를 번복했다면 오심을 한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있었겠지만 룰은 룰인 만큼 골을 인정하는 게 옳았다.
자, 그렇다면 이런 넌센스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 보자.
일단 비디오 리플레이 리뷰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FIFA가 리플레이 리뷰를 도입한다면 독일-잉글랜드전에서와 같은 골 논란은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플레이 리뷰를 하려면 시간이 소요되므로 리뷰를 하는 동안은 경기시계를 정지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저리 타임이 터무니 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는 것보다는 시계를 멈추는 쪽이 훨씬 낫다.
일부는 미식축구처럼 시계가 수시로 멈추면 경기가 너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골을 넣은 팀 선수들이 단체로 자축하는 동안에도 시계가 계속 움직이는 건 시간낭비가 아닌지 묻고 싶다. 시계가 멈추지 않는 게 축구의 전통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골이 들어간 뒤 경기가 속개될 때까지 시계를 멈추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냐는 것이다. 경기가 길어지는 것만 문제일 뿐 경기시간 90분을 낭비하는 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필요할 때 시계를 멈추는 건 전-후반 90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리플레이 리뷰를 하는 동안 시계가 정지하는 것까지 좋다고 치자. 하지만 리뷰를 통해 판정을 번복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지 않냐고?
모든 오심을 전부 다 잡아낼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비디오 리플레이 리뷰를 도입한다 해도 골과 관련된 오심을 바로잡는 정도가 전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식축구에선 리플레이 리뷰로 바로잡을 수 있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축구에선 골을 제외하면 리뷰를 할만 한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 관련 오심도 심판의 오심으로 골을 날린 경우엔 리뷰를 통해 골을 찾아올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골과 무관한 오프사이드 오심은 해결방법이 애매하다. 오프사이드 깃발이 올라가는 순간 공격을 멈춰야만 하는데 리뷰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고 해도 심판이 공격팀에게 프리킥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깃발이 올라간 이후에도 플레이를 계속 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 오심을 확실하게 없애려면 오프사이드 자체를 없애든지 해야지 리플레이 리뷰만으로는 바로잡기 힘들다. 이밖의 여러 파울들도 마찬가지다. 미식축구에서도 파울은 리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따져보면 축구계가 리플레이 리뷰를 도입한다고 해도 골과 관련된 오심을 바로잡는 것을 제외하곤 리뷰 대상을 정하는 데서 부터 애를 먹을 듯 하다. 누구의 몸에 맞고 터치아웃되었느냐는 건 리뷰 대상에 넣을 수 있겠지만, 누가 이런 걸 리뷰하려고 할까? 어떻게 보면 축구에선 리플레이 리뷰가 오심을 바로잡는 데 별 역할을 하지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리플레이 리뷰를 골 오심을 바로잡는 데만 사용한다 해도 미국이 그룹 라운드에서 날렸던 골 2개를 찾아올 수 있으며, 16강전에서 발생한 오심도 모두 바로잡을 수 있다. 그래도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FIFA가 리플레이 리뷰 도입에 관심이 없다는 것.
그들이 왜 리플레이 리뷰에 부정적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40년전에 벌어졌던 오심논란이 지금도 변함없이 발생한다는 것을 21세기 축구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