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일 화요일

'본드23'가 성공하려면...(3) - 악당

닥터 노(Dr. No), 로자 클렙(Rosa Klebb), 골드핑거(Goldfinger), 블로펠드(Blofeld), 스카라망가(Scaramanga), 드랙스(Drax), 코스코프(Koskov), 산체스(Sanchez), 트레빌리안(Trevelyan), 레나드(Renard), 르쉬프(Le Chiffre)...

이들의 공통점은 제임스 본드를 없애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한 캐릭터들이란 점이다.

여기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나름 노력은 열심히 했지만 그 중 어느 누구도 제임스 본드를 없애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으면 그 댓가를 치뤘겠다고?

물론이다. 대부분 이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본드23'에선 어느 불행한 친구가 미스터 본드를 없애려 할까?

아니, 이 친구는 빼고...


▲"Meow~~~"

007 제작진이 한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 과거 로저 무어(Roger Moore),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절로 돌아가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코믹북에나 나옴 직한 캐릭터들은 더이상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재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와 어울리지 않아서가 전부가 아니다. 6~70년대에 통했던 코믹북에나 어울릴 듯한 악당들에겐 더이상 미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90년대말~2000년대초까지 제임스 본드였던 피어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죽을 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브로스난의 007 시리즈는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 주연의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 이후 6년간의 공백을 거쳐 제임스 본드가 다시 돌아왔다는 데 의미가 있었을 뿐 시대감각엔 뒤처진 영화들이었다. '제임스 본드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1차 목적이었지 시대과 유행에 맞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선보이는 건 나중의 문제였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본드팬들과 영화관객들은 브로스난의 영화에 금새 식상하게 됐다. 청소년들도 이전 만큼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열광하지 않았다. 코믹북을 기초로 한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인기를 끌면서 부터 더더욱 그러해 졌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늙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늙어가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다시 젊어질 수 있었던 건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덕분이었다. 과거의 제임스 본드는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과 같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에 가까웠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는 달랐다. 얻어터지고, 피 흘리고, 고문까지 당하는 매우 사실적인 캐릭터 였다.

악당도 달라졌다. '카지노 로얄'의 르쉬프(Le Chiffre)는 세계정복과 같은 터무니 없는 목표에 매달리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악당 또한 사실적으로 바뀐 것이다.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스토리가 시원찮은 바람에 도미닉 그린 역을 맡았던 프랑스 배우 매튜 아말릭(Mathieu Amalric)이 제대로 빛을 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방향 만큼은 올바른 쪽이었다.

'본드23'에도 이전 두 편의 영화에서처럼 사실적인 악당이 등장해야 한다. 줄거리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더라도, '콴텀(Quantum)'이라 불리는 범죄조직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본드23' 악당은 사실적인 캐릭터이어야만 한다. 'Fanatsy Villain'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의 몫이 되었으니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악당은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해서 사실적인 캐릭터가 나와야만 한다.

그렇다면 '본드23'엔 어떤 악당이 어울릴까?

나더러 만들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적인지 동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애매한 캐릭터가 될 것이다. 냉전도 이젠 지나간 이야기다 된 만큼 한눈에 적이라는 게 뚜렷하게 드러나는 캐릭터보다는 어느 쪽인지 분간하기 힘든 캐릭터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본다. 개인 또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중, 삼중, 더블, 트리플 크로싱하는 캐릭터 말이다.

그렇다고 손바닥 뒤집듯 수시로 편을 바꾸는 싸구려 스릴러에나 어울리는 캐릭터를 말하는 건 아니다. 21세기 제임스 본드 시리즈엔 'HQ에서 분명히 위험인물로 브리핑 받았는데 직접 만나보니 그게 아닌 것 같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임스 본드의 생명까지 구해준다. 그런데 겉으론 젠틀맨 같으면서도 뒤로 진행하는 일들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더라' 하는 알다가도 모를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적인지 동지인지 헷갈리는 만큼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가 된다면 아주 멋질 것 같다.

하지만 저런 악당이 나온다면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칙칙해 지는 것 아니냐고?

꼭 그런 건 아니다. 16트랙 중 한 개의 트랙에 하드한 사운드를 넣었다고 해서 나머지 전체를 모두 다 하드 스타일로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드한 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하나에만 몰두한 나머지 전부를 다 하드하게 만들면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지기 쉽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미스테리한 악당을 등장시켰다고 해서 영화 전체가 무겁고 어두워질 필요가 없다. 제임스 본드는 무뚝뚝하고 악당은 적인지 동지인지 헷갈리는 세팅도 '가젯', '본드카' 등 전통적인 007 시리즈 포뮬라와 믹스가 충분히 가능하다. 007 제작진이 '본드23'에서 밸런스를 맞출 필요성이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역할에 잘 어울릴까?

영국 타블로이드, 더 썬(The Sun)에 의하면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로빈 후드(Robin Hood)'의 마크 스트롱(Mark Strong)도 007 시리즈 악당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마크 스트롱은 영국 영화 'Flashback of a Fool (2008)'에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스트롱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헐리우드 영화배우 조(다니엘 크레이그)의 에이전트 역으로 나왔다.





마크 스트롱이라면 제임스 본드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젠틀한 악당 역을 멋지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트롱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에서 스카라망가 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리(Christopher Lee),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에서 맥스 조린 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워큰(Christopher Walken)처럼 너무 물렁해 보이지도 않고,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에서 엘리엇 카버 역을 맡았던 조나단 프라이스(Jonathan Pryce)처럼 바보스럽게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걱정되는 건,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에서 레나드 역을 맡았던 로버트 칼라일(Robert Carlyle)처럼 되기 딱 알맞아 보인다는 점이다. 스트롱이 007 팀에 조인한다면 레나드와 비슷한 스타일의 막 나가는 테러리스트/전사 역할로 캐스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스트롱이 풍기는 분위기가 '언리미티드'의 레나드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듯 하다.

하지만 007 제작진이 스트롱에게 제대로 된 역할을 맡긴다면 아주 멋진 제임스 본드 시리즈 악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매튜 아말릭에게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MGM. 제임스 본드가 물리치기 가장 힘든 적이 바로 MGM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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