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6일 일요일

'킬러스', 안 보는 게 돈 버는 것

MGM의 제임스 본드가 '본드23' 제작중단으로 발이 묶인 사이 또다른 사자, 라이언스게이트(Lionsgate)가 스파이 테마의 코메디 영화 '킬러스(Killers)'를 선보였다. 라이언스게이트는 빚더미에 앉은 MGM의 인수에도 관심을 보였던 영화사다.

그렇다면 라이언스게이트의 스파이 코메디 영화 '킬러스'는 어떤 영화일까?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스파이 스펜서(애쉬튼 커쳐)가 프랑스에서 젠(캐더린 하이글)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와 결혼해 평범한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지만 자꾸 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이중생활까지 탄로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그렇다. 이미 수만 번은 본 스토리라인이다. 아놀드 슈왈츠네거(Arnold Schwarzenegger)의 90년대 액션 코메디 영화 '트루 라이스(True Lies)'도 스파이와 남편 역할을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스파이 테마의 코메디 영화라면 제임스 본드 패러디가 빠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물론이다. 킬러스'에서도 제임스 본드 패러디가 여럿 눈에 띄었다. 영화 초반에는 '골든아이(GoldenEye)'의 경치(프랑스 남부)와 자동차(빨간색 페라리)에 '썬더볼(Thunderball)'의 가젯(소형 스쿠바 탱크)을 합쳐놓더니, 나중에는 '골드핑거(Goldfinger)'의 본드걸 푸씨 갈로어(Pussy Galore)의 이름까지 나왔다. 뿐만 아니라 007 시리즈 베드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카메라가 본드와 본드걸이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죽 훑고 지나가면서 보여주던' 것까지 그대로 빌려왔더라.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키득거리기 위해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스펜서(애쉬튼 커쳐)와 젠(캐더린 하이글)이 프랑스에서 처음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데 까지만 볼 만 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영화 트레일러만 봐도 영화 줄거리가 대충 어떠할 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웃기고 즐거움을 주느냐에 모든 게 달린 영화였다. 그러나 '킬러스'는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제임스 본드 패러디까지는 제법 그럴 듯 하게 했지만 그 다음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일단 스파이 테마의 영화인 만큼 액션이 어느 정도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킬러스'의 액션은 80년대 TV 시리즈 수준에도 못 미쳤다. 액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작진은 스파이 액션과 로맨틱 코메디를 오락가락하면서 관객들에게 액션과 로맨스, 웃음을 모두 선사하겠다는 계획이었던 것 같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 유머가 풍부했던 것도 아니다. 아주 웃음이 헤픈 사람들이나 간신히 피식 웃길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의 조크들을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틈이 날 때 마다 술을 마시는 젠의 괴상한 어머니(캐더린 오해러)마저 없었다면 웃을 기회가 전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면 스파이 코메디 영화이면서도 액션도 볼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시원하게 웃을 만한 부분도 없다는 얘기냐고?

바로 그거다. '킬러스'를 '트루 라이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등과 같은 액션과 유머 모두가 풍부한 영화로 생각해선 절대 안 된다. '킬러스'는 스파이 영화도 아니고, 코메디 영화도 아닐 뿐만 아니라, 로맨틱 코메디도 아닌 정체불명의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파이, 액션 같은 것을 아예 떼어버리고 순수한 로맨틱 코메디로 만들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지도 모른다. 애쉬튼 커쳐와 캐더린 하이글이 로맨틱 코메디에 어울리는 배우들인 만큼 결국 그쪽에 가까운 영화가 될 게 뻔했으니 괜히 엉뚱한 데 까지 욕심부리지 말고 하던대로 했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흉칙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며 재미를 느끼라는 것인지가 미스테리인 영화가 되는 건 적어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 '킬러스'는 'Ejector Seat'을 생각나게 만드는 영화였다. '골드핑거'에 나온 '본드카', 아스톤 마틴 DB5(Aston Martin DB5)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냥 영화관에서 튀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래도 돈을 주고 입장표를 샀으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누가 먼저 궁뎅이 드나' 내기라고 하듯 벌떡 일어서게 만든 영화였다.

이런 영화는 안 보는 게 돈 버는 것이다. 그러니 괜히 돈낭비, 시간낭비 하지 마시구랴.

그래도 스파이 테마의 액션 코메디 영화라길래 되도록이면 예쁘게 봐 주려고 했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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