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2일 월요일

역시 월드컵 결승전은 무술대회 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했다는 것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프랑스 선수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선수를 박치기로 때려눕혔던 사건이다.

그런데 월드컵 결승에서 축구를 하다 말고 무술을 하는 사건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또 발생했다.

지난 번 월드컵 결승이 '박치기 결승'이었다면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격돌한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 결승은'발차기 결승'이었다.

이번 월드컵 결승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경기가 시작한 지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스페인 선수가 네덜란드 선수의 파울로 인해 잔디를 뒹굴었다.




파울로 경기를 시작한 네덜란드의 반 퍼시(Van Persie)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이 옐로카드를 챙겼다.



반 퍼시의 옐로카드 직후엔 스페인의 차례였다. 푸욜(Puyol)이 반 퍼시에 뒤질세라 바로 옐로카드를 챙겼다.



그 다음 차례는 네덜란드의 반 보멜(Van Bommel). 반 보멜은 공을 차려던 게 아니라 스페인 선수 이니에스타(Iniesta)를 자빠뜨리려는 의도로 태클을 한 것으로 보였다. 고의성이 보이는 태클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도 옐로카드를 챙겼다.



네덜란드가 또 옐로카드를 받자 스페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번엔 스페인의 라모스(Ramos)가 옐로카드를 챙겼다.



이렇게 서로 옐로카드를 주고받더니 나중엔 옐로카드를 받은 푸욜과 반 보멜이 뒤엉키기도 했다.

그러나 둘 다 옐로카드를 이미 받은 처지였기 때문인지 '여차하면 레드카드라는 그 심정 이해한다'는 듯 서로 포옹까지 했다. 둘이 나란히 레드카드 받으면 데리고 살겠더라.



그러나 포근함도 잠시였을 뿐! 무술축구는 계속됐다.

이번엔 네덜란드의 데 영(De Jong)이 스페인의 알론소(Alonso)에 완벽한 발차기를 날렸다. 데 영의 발차기에 가슴을 맞고 K.O당한 알론소는 한동안 필드에 쓰러져 있었다.

격투기에 가까운 장면이 연출되자 ESPN 해설자는 "이건 쿵푸 킥이었다"며 레드카드감이라고 했지만 데 영은 옐로카드를 받았다.

월드컵 결승전이 이럴 줄 알고 '카라테 키드(The Karate Kid)'를 안 본 거라니까!

얼마 전에 마라도나가 자꾸 '태권축구'가 어쩌구 했는데, 그 때 저렇게 제대로 차이지 않았다는 걸 감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은 며칠 전 벌어졌던 스페인과 독일의 4강전과는 완전히 다른 판이었다. 스페인과 독일의 4강전은 ESPN 해설자가 "마치 프렌들리 매치 같다. 양팀 모두 공을 빼앗거나 태클할 생각도 안 한다"고까지 할 정도로 얌전한(?) 경기였다. 그러나 결승전은 달랐다. 네덜란드는 작심한 듯 공이 아닌 스페인 선수들을 걷어차느라 바빴고, 스페인도 이에 질세라 파울로 화답했다. 스페인과 독일의 경기가 '프렌들리 매치'였다면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경기는 '격투기 매치' 였다.

네덜란드는 독일이 했던 것처럼 수비위주로 경기를 하면서 스페인을 소프트하게 다루면 진다고 판단하고 거칠게 몰아붙이기로 작심한 듯 했다. 적어도 방향은 바로 잡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옐로카드 였다. 전반에만 옐로카드가 수두룩하게 나온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결승전 매치는 누가 먼저 레드카드를 받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았다. 골이 많이 터지는 경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으므로 레드카드가 나오지 않는다면 0대0으로 승부차기까지 가기 딱 알맞아보였지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레드카드가 먼저 나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올 게 왔다. 네덜란드 선수가 연장전에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으며 퇴장당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늦게 레드카드가 나온 바람에 네덜란드가 몇 분만 더 버틴다면 승부차기까지 충분히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0명이 뛴 네덜란드는 몇 분을 버티지 못했다. 스페인의 이니에스타에 결승골을 내준 것이다.



스페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하는 순간이었다.

Congratulation man!




퀄리티와 조직력, 선수들의 매너 등 모든 면으로 봤을 때 스페인은 월드컵 우승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달랐다. 네덜란드는 이번 월드컵내내 그리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4강전에선 '다이브', 결승전에선 '무술'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가 결승전을 이길 수 있었던 기회를 한 번도 잡지 못한 건 아니다. '아!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가 이기는구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득점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다. 그러나 축구장에서 다른 종목의 스포츠를 하는 데 더욱 관심이 많은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네덜란드는 천금같았던 기회들을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만약 네덜란드가 그 때 그 기회들을 모두 살렸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2010년 7월11일은 '무술축구의 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2010년 스페인 팀도 월드컵 스타트가 좋지 않았다. 그룹 라운드에서 스위스에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 데다 간판 공격수 토레스(Torres)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왠지 이번에도 월드컵 운이 따라주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해냈다. 스페인 국민의 모든 스트레스를 자그마한 체구의 이니에스타의 한 방이 날려버렸다. 골이 조금 일찍 터졌더라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조금이나마 편했겠지만, 스페인 팀이 피하고 싶어하는 승부차기를 코앞에 두고 터지는 바람에 그 짜릿함이 더욱 컸다.

이렇게 해서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은 남유럽팀이 월드컵 트로피를 차지하면서 막을 내렸다. 유럽팀이 유럽대륙 밖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아메리카 팀(브라질)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이 있지만 유럽팀들은 여지껏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만 우승했을 뿐 그 이외의 대륙에서는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이걸 스페인이 바꿨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린 첫 월드컵에서 유럽팀 첫 '원정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하필이면 유럽팀 중에서도 월드컵 우승경험이 없었던 스페인이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유럽팀도 유럽대륙 밖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다음 번엔 힘들 것 같다. 브라질에서 열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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