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1일 수요일

'쉘부르의 우산', 카트린 드뇌브, 그리고 제임스 본드

나는 '본드걸' 하면 60년대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시작한 것도 60년대이고, 인기가 가장 뜨거웠던 것도 역시 그 때 였다. 지금까지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불리는 숀 코네리(Sean Connery)도 60년대 제임스 본드였으며, 푸른 바다에서 흰색 비키니 차림으로 걸어나오면서 가장 유명한 본드걸이 된 허니 라이더(우슐라 안드레스) 또한 60년대 본드걸이다.

그래서 일까? 60년대 클래식 영화에 등장하는 당시 미녀 배우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 본드걸과 겹쳐지곤 한다. 60년대를 살아보지 못해서 일 수도 있지만, 헤어스타일부터 옷차림에 이르기까지의 60년대 스타일 모든 것이 '본드걸 스타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렇다. 60년대 영화를 보면서 아주 멋진 여배우가 눈에 띄면 '만약 저 배우가 본드걸이 되었더라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6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여배우 상당수가 '본드걸' 후보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다. 드뇌브는 60년대 프랑스 영화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영어 제목은 The Umbrellas of Cherbourg)'으로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다.

드뇌브는 1969년 제임스 본드 영화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의 리딩 본드걸 트레이시 역 후보에 올랐었으며, 1973년 영화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의 리딩 본드걸, 솔리테어 후보로도 꼽혔었다.

내가 보기엔 드뇌브는 트레이시, 솔리테어 역보다 '썬더볼(Thunderball)'의 도미노 역으로 왔다였을 것 같다.



물론 드뇌브가 '쉘부르의 우산'에서 자주 입고 나왔던 옷 색깔인 핑크색은 본드걸과 매치가 잘 안 되는 컬러일 수도 있다. 귀여운 외모의 본드걸들이 꽤 자주 나온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에선 핑크색과 어느 정도 매치가 되는 캐릭터들이 있지만 '쭉빵섹시' 글래머 위주의 영화 시리즈 본드걸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은 컬러인 듯 하다.

하지만 핑크색이 잘 어울리는 여자들이 좋지 않수? 특별히 핑크색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남녀 구분하지 않고 핑크색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멋져 보일 때가 있다.






'PRETTY IN PINK', eh?

'Pretty in Pink'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다. 80년대 영화음악이라서 '쉘부르의 우산'과는 시대가 맞지 않지만 '핑크' 하니까 생각났으니 그냥 한 번 들어봅시다.


그런데 '쉘부르의 우산'은 어떤 영화냐고?

뮤지컬이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둘 게 있다: 난 뮤지컬 팬이 아니다. '말로 해도 될 것을 굳이 노래까지 부를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조금 건조한 놈이라고 보면 된다. '쉘부르의 우산'은 이러한 내 취향엔 맞지 않는 영화다. 영화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화와 노래를 오가는 정도가 아니라 대사 전체가 100% 노래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쉘부르의 우산'을 DVD로 볼 때 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왜 대화를 전부 노래로 하냔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노래를 부르듯 말을 걸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며칠전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춤을 추면서 걸어오는 걸 보고 "OW SHIT!" 하면서 급하게 피신했던 기억이...ㅡㅡ; 요즘 날씨도 후덥지근하지, 아마?

하지만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60년대 여배우'와 '영화음악'이므로 뮤지컬에 대한 불평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 영화에 근사한 노래도 나오냐고?

물론이다. 뮤지컬의 썰렁함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멋진 곡이 나온다.



그렇다. 그 노래는 바로 'I Will Wait for You'다. 너무나도 유명한 곡인 만큼 이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곡일 것이다.

'쉘부르의 우산'의 음악을 맡았던 프랑스 작곡가,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버전을 한 번 들어보자. 아래 동영상에서 미셸 르그랑을 소개한 여성은 '골드핑거(Goldfinger)',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문레이커(Moonraker)' 등 세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주제곡을 부른 영국 여가수 셜리 배시(Shirley Bassey)다.


그런데 보컬버전도 있지 않냐고?

있다. 그런데 워낙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모두 열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워낙 아름다운 곡이다 보니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보컬버전을 하나를 꼽아보자면,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버전이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낸시가 1967년 제임스 본드 영화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주제곡을 불렀다. 시나트라 패밀리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인연이 있는 집안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혈액형이 'JB'인 내겐 아무래도 맷 먼로(Matt Monro) 버전이 입맛에 딱 맞는다.

맷 먼로는 1963년 제임스 본드 영화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의 주제곡을 부른 영국 가수다.


셜리 배시, 낸시 시나트라, 맷 먼로 등 007 시리즈 주제곡을 불렀던 가수들 타령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혹시 미셸 르그랑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음악을 맡았더라도 잘 했을 것 같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거냐고?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성과 스타일이 부족한 전자음악으로 때우는 데이빗 아놀드(David Arnold)가 007 시리즈 음악을 담당하고 있어서 인지 요즘엔 르그랑과 같은 재즈 뮤지션이 더욱 생각나는 건 사실이다.

만약 르그랑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음악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사실은 맡은 적이 있다. 숀 코네리 주연의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이 바로 그것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오피셜' 007 시리즈가 아니다. 브로콜리 패밀리가 제작하는 EON 프로덕션의 '오피셜' 007 시리즈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르그랑이 제임스 본드 영화 음악을 맡았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유명한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가 나오는 '오피셜' 시리즈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르그랑은 '오피셜' 007 시리즈 음악은 아직까지 맡은 적이 없다.

'오피셜'이든 '언오피셜'이든 제임스 본드는 제임스 본드 아니냐고?

그렇긴 그렇다. 특히 법원판결로 인해 '언오피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더이상 나올 수 없게 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앞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피셜' 시리즈 이외의 또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3년엔 로저 무어(Roger Moore) 주연의 '오피셜' 007 시리즈 '옥토퍼시(Octopussy)'와 숀 코네리의 '언오피셜'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같은 해에 개봉해 서로 경쟁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살짝 유감이 있다면, 르그랑이 '오피셜' 007 시리즈 음악을 아직까지 한 번도 맡지 않았다는 점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 번 해 주셨으면...ㅋ

아무튼 마지막은 라니 할(Lani Hall)이 부른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 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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