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8일 일요일

러닝백 에밋 스미스, NFL 명예의 전당 입성!

미국 NFL의 32개 구단 중에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라는 팀이 있다. 'NFL의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라 불리는 매우 유명한 풋볼 팀이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정도는 알고, 축구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쯤은 알고 있듯 미식축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하더라도 달라스 카우보이스 정도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70년대에 두 번, 90년대에 세 번,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 수퍼보울 챔피언에 올랐다. 카우보이스는 몇 해 전 여섯 번째 우승에 성공한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에 이어 수퍼보울 최다 우승팀 공동 2위에 올라있는 팀이다. 카우보이스와 함께 수퍼보울 5회 우승을 기록중인 또다른 팀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즈(San Francisco 49ers)다.

이 세 팀 모두 만만치 않은 팀들이다. 피츠버그가 70년대를 대표하는 팀이고 샌프란시스코가 80년대라면,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90년대를 대표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피츠버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강팀으로 남아있으며,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최근들어 매년마다 수퍼보울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세대교체에 실패한 샌프란시스코는 아직 피츠버그, 달라스에 견줄 만한 엘리트 팀에 속하지 못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금년시즌부터 포티나이너즈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그렇다면 수퍼보울 우승을 세 번씩이나 했던 90년대 달라스 카우보이스 팀엔 어떤 선수들이 있었을까?

쿼터백 트로이 에익맨(Troy Aikman), 러닝백 에밋 스미스(Emmitt Smith), 와이드리씨버 마이클 얼빈(Michael Irvin)이라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들 셋은 '환상의 공격 트리오'로 불렸다. 물샐 틈 없었던 달라스 카우보이스 수비도 수퍼보울 우승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에익맨-스미스-얼빈 'Triplet'을 빼놓는 건 불가능하다. 그만큼 이 세 선수의 공헌이 컸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트로이 에익맨, 에밋 스미스, 마이클 얼빈

당연한 얘기겠지만, 트로이 에익맨과 마이클 얼빈은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뒤 NFL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입성했다.

금년엔 에밋 스미스의 차례였다.

그가 '삼총사' 중 가장 늦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이유는 그가 셋 중에서 제일 늦게 은퇴했기 때문이다. 에익맨과 얼빈이 부상으로 먼저 은퇴했지만 스미스는 2002년 시즌 달라스 카우보이스 선수로 NFL 러싱야드 기록을 세운 뒤 애리조나 카디날스(Arizona Cardinals)로 팀을 옮겨 계속해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200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스미스는 은퇴한지 5년이 지나 NFL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를 자격을 얻었는데,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후보 자격을 얻은 첫 해인 2010년에 바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90년대를 풍미했던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삼총사' 전원이 NFL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다.

에밋 스미스가 8월7일 오하이오 주 캔튼에서 열린 명예의 전당 행사에서 스테이지에 오르자 팬들은 "Emmitt! Emmitt!"을 연호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와 앙숙 관계인 워싱턴 D.C 팀, 워싱턴 레드스킨스(Washington Redskins) 팬들마저도 "에밋 스미스는 싫어할 수 없는 선수"라고 할 정도로 있기있는 선수였으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스미스는 명예의 전당 입성 소감을 밝히는 연설에서 '삼총사'로 불렸던 팀메이트, 에믹맨과 얼빈에 감사를 표했다.

그 다음 차례는 누구였을까?

행사에 참석한 카우보이스 팬들은 그게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Mooooose~!"를 외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대릴 '무스' 존스톤(Daryl 'Moose' Johnston)이었다. 풀백이었던 존스톤은 에밋 스미스를 상대 수비로부터 보호하며 블로킹을 해주는 임무를 맡았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섹시한 롤은 아니었지만 존스톤이 없었다면 에밋 스미스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에밋 스미스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블로킹을 했던 존스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스미스는 NFL 러싱야드 기록 수립 뿐만 아니라 명예의 전당 입성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게 바로 에밋 스미스였다. 스미스는 지난 2002년 월터 페이튼(Walter Payton)의 기록을 넘어 새로운 NFL 러싱야드 기록을 세웠을 때에도 중계방송차 경기장을 찾았던 대릴 존스톤에게 달려가 함께 기쁨을 나눴었다.

존스톤은 목부상으로 스미스보다 먼저 선수생활을 접고 FOX에서 NFL 중계방송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FOX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2002년 에밋 스미스 러싱야드 기록 수립 순간


▲경기장을 찾은 마이클 얼빈과 대릴 존스톤(위)
존스톤을 찾아가 껴안는 에밋 스미스(아래)

에밋 스미스는 이번에도 대릴 존스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미스는 존스톤을 향해 "You mean the world to me..."라면서 "You sacrificed so much. I love you Daryl from the bottom of my heart."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스미스는 그의 고등학교 풋볼팀 헤드코치에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의 대학팀 풋볼코치였던 스티브 스퍼리어(Steve Spurrier)는 건너뛰고 90년대초 달라스 카우보이스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였던 노브 터너(Norv Turner. 현 샌디에고 차저스 헤드코치)로 바로 넘어갔다는 사실. 고등학교에서 NFL로 바로 넘어간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스미스는 풋볼명문대 중 하나인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Florida)을 다녔는데, 당시 플로리다 풋볼팀 헤드코치가 스티브 스퍼리어 였다. 그런데 스퍼리어는 패싱공격 위주의 코치였기 때문에 에밋 스미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 했다.

그러나 에밋 스미스가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 본 것은 또다른 플로리다 주의 풋볼명문대인 마이애미 대학(University of Miami)의 헤드코치였던 지미 존슨(Jimmy Johnson)이었다. 90년대초에 달라스 카우보이스를 두 차례 수퍼보울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 지미 존슨이다. 마이애미 대학을 떠나 1989년 달라스 카우보이스 헤드코치직을 맡은 지미 존슨이 1990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한 선수가 바로 플로리다 대학의 러닝백, 에밋 스미스 였다.

에밋 스미스는 그를 드래프트 해 준 지미 존슨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헤드코치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90년대 달라스 카우보이스 수퍼보울 팀 '삼총사' 모두 명예의 전당 식구가 됐다.

이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명예의 전당 후보가 더 없냐고?

찾아보면 많다. 당장 내년엔 디연 샌더스(Deion Sanders)가 유력 후보 중 하나다. 아틀란타, 샌프란시스코, 달라스, 워싱턴, 발티모어 등 여러 팀들을 두루 거쳤지만, 샌더스는 95년 시즌 달라스 카우보이스 소속으로 수퍼보울 우승을 맛봤다. 바로 이전 해인 94년엔 샌프란시스코 소속으로 수퍼보울 우승을 하더니 바로 다음 해엔 팀을 바꿔 2년 연속 수퍼보울 우승을 맛봤다.

또다른 후보는 오펜시브 라인맨, 래리 앨런(Larry Allen)이다. 앨런은 달라스 카우보이스로 95년 시즌 수퍼보울 우승을 맛봤으며, 프로보울 플레이어로도 무려 11회나 선정되었던 선수다. 아직 은퇴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래리 앨런의 명예의 전당행은 문자 그대로 시간문제일 뿐이다.

90년대 달라스 카우보이스 선수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더 NFL 명예의 전당 식구가 되는지 앞으로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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