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 않아 액티비젼(Activision)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게임이 출시된다. 내년엔 '본 콜렉터(The Bone Collector)'로 유명한 미국의 스릴러 작가,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가 쓴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도 나온다.
그렇다. 영화만 빼고 다른 건 다 새로 나오는 셈이다. 이 모든 이유는 다 죽어가는 늙은 사자 한 마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23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103회 생일에 맞춰 발매될 예정인 제프리 디버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로젝트 X(Project X)'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지금까지 알려진 '프로젝트 X'에 대한 정보로는 1)2011년을 배경으로 한다, 2)29세~30세의 젊은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 정도를 대표로 꼽을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2011년에 나이가 29세에서 30세 정도인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시리즈를 리부팅하겠다는 이야기다. 소설 상에서의 제임스 본드의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내려간 것을 보면 '프로젝트 X'를 제프리 디버의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2008년 출간되었던 '데블 메이 케어(Devil May Care)'를 쓴 영국작가 세바스찬 펄크스(Sebastian Faulks)가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연결이 되도록 하기 위해 6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플레밍의 세계와 연결시키려 했던 펄크스와는 달리 디버는 겨우 29~30세에 불과한 어린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새출발을 하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언 플레밍이 쓴 제임스 본드 소설 거의 대부분이 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렇다고 펄크스가 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5~60년대를 배경으로 삼는 것도 곤란할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를 나이를 먹지 않는 'Forever Young' 캐릭터로 만드는 것도 썩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버는 그가 거주하는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의 지역신문 The News & Observer와의 인터뷰에서 시대물을 쓰고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제임스 본드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언 플레밍 퍼블리케이션이 펄크스의 '데블 메이 케어'에서 했던 것처럼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또 요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러시아가 미국을 공격하지 않았고, 핵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과거 냉전시대의 소재들로는 텐션(Tension)을 만드는 게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언 플레밍 퍼블리케이션은 이번엔 현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본드 소설을 원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굳이 '2011년', '29~30세'라고 분명하게 못박을 필요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 1953년에 시작한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가 2000년대까지 계속되는 동안 여러 변화를 겪었다는 정도는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이런 건 적당히 넘어가도 별 탈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 시대배경 등도 알게 모르게 변화해 왔으므로 '냉전시대', '포스트 냉전시대', '포스트 9-11 시대' 등으로 새삼스럽게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스토리이지 시대배경과 제임스 본드의 나이 등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2011년', '29~30세' 부분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콘템프러리 세팅을 원하는 건 이언 플레밍 퍼블리케이션과 마찬가지이므로 '2011년'까지는 넘어간다 해도 제임스 본드를 이라크, 아프간전에 참전했던 베테랑 군인으로 바꾼다는 데서는 브레이크를 밟고 싶어졌다. 그저 시대에 맞추기 위해 2차대전을 이라크, 아프간전으로 바꾼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왠지 중동문제를 다루려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서방 정보부들의 골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중동 테러리스트들인 만큼 혹시 디버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이쪽으로 끌고가려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011년' 배경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29~30세의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이라는 두 가지 점을 합쳐보니 자꾸 '중동'이라는 답이 나왔다.
디버는 "요즘엔 냉전시대의 것 이외의 새로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고도 말했다. 혹시 이것이 중동문제를 의미한 것이었을까? 2000년대에 들어서 나온 스파이 소설 중 거의 전부가 중동 테러리즘을 다뤘는데 혹시 제임스 본드도 그쪽으로 가려는 것일까?
물론 1940년대에 군 복무를 하고 1950년대부터 정보부에서 근무한 이언 플레밍의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를 21세기 버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변화가 전부일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만의 하나 디버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중동문제 쪽으로 끌고 갈 생각이라면 반대하고 싶다. 중동문제를 다룬 스파이 소설이 넘쳐나는데 제임스 본드까지 거기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X'로 알려진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선 현재까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디버는 180쪽 분량의 스토리 아웃라인을 완성했으며, 이언 플레밍 퍼블리케이션의 통과를 받았다고 했지만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 지 힌트를 주지 않았다. 현재까지 디버가 밝힌 것은 '프로젝트 X'가 1)단지 며칠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소설이며, 2)여러 이국적인 장소들을 찾아가며, 3)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4)제임스 본드 팬들에게 친숙한 M, 미스 머니페니 등이 나온다는 점 정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 지 짐작하기 힘들다.
다만 며칠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는 점, 이국적인 장소가 나온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 '썬더볼(Thunderball)'을 탬플릿으로 삼은 게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다. '썬더볼'은 핵미사일 2기를 탈취한 스펙터(SPECTRE)라는 범죄집단이 시한을 정하고 미국과 영국에 돈을 요구하자, 영국 정보부는 협상시한 내에 사건을 풀기 위해 본드를 바하마로 파견한다는 줄거리다. 디버가 말한 '며칠간'과 '이국적 장소' 모두 '썬더볼'과 매치되는 키워드다. '이국적인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사건을 풀어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들어맞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두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스펙터를 연상케 하는 범죄조직 콴텀(Quantum)이 등장했다는 점까지 보태 보면, '프로젝트 X' 줄거리가 '스펙터, 콴텀 등과 비슷한 거대한 규모의 범죄조직이 시한을 정해 놓고 돈을 요구한다'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거대한 규모의 범죄조직이 중동 테러리스트로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핵무기 2기를 탈취한 '썬더볼'의 스펙터를 지금의 알 카에다로 바꾸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중동판 '썬더볼'을 만들기가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100% 추측이므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전부일 뿐이다.
2011년을 배경으로 한 29~30세의 어린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인 제프리 디버의 콘템프러리 소설 '프로젝트 X'가 과연 어떤 소설이 될 지, 이러한 방법으로 디버가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리부팅 할 수 있을 지 지켜보기로 하자.
디버의 '프로젝트 X'는 2011년 5월28일 발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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