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7일 금요일

내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갔던 게 언제였더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지금이 추석시즌이라고 한다. 추석? 참 낯선 단어다. 주위에서 '추석'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지 한참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는 친지들이 이메일 또는 전화로 "추석이다"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친다.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미식축구 경기가 없으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도 그냥 지나칠 판인데 추석까지 챙기라는 건 너무 야무진 바람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살았을 때에도 추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시골'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텅 빈 서울을 누비며 이집 저집 오락가락했던 게 전부라서다. 우리 패밀리는 남쪽으론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북쪽으론 '미수복지역'까지 올라가므로 서울을 벗어날 일이 없었다. 성묘라는 것도 내 기억이 허락하는 한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인터넷을 가득 채운 추석관련 글들을 죽 둘러보다보니 한국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갔던 게 언제였더라?'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언제였더라?

그러고 보니 '조금' 된 것 같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어도, 조금있으면 20년이 되는 듯 하다. 그렇다. 나는 인천에 새로 지었다는 공항은 구경도 못 해봤다. 김포가 국제공항일 때 거기서 몇 번 뜨고 내린 적은 있었지만 인천공항엔 가 본 적이 없다.

위에 대한항공 이미지를 사용했지만, 사실 나는 대한항공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다. 대한항공은 한국에 갈 때나 타볼 수 있는 비행사인데, 이상하게도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지금은 없어졌다) 등 미국 비행기만 걸렸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을 타고 온 사람들을 픽업하러 공항에 나간 적은 있지만, 나와 한국 항공사와의 인연은 아직까지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승무원들과 술 한잔 한 적은 더러 있는데 이런 건 생략하고...

그런데 내가 여기에 사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씩 대한항공에서 우편물이 날아온다. 대한항공을 한 번도 탄 적이 없고, 한국 방문계획이 앞으로도 당분간은 잡혀있지 않은데 대한항공 로고가 인쇄된 두툼한 편지봉투를 종종 받는다. '왜 안 타느냐', '한 번 좀 타라 이 씨댕아'라며 시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20년씩이나 방문을 안 했으면 한국 생각이 많이 나지 않냐고?

한국에서 금방 온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저런 질문을 던지면 "물론이죠"라고 답한다. 하지만 실제론 아니다. 제 1의 고향보다 제 2의 고향이 더 그립다. 태어난 곳보다 청소년기를 보낸 데가 고향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블로그에 끄적일 때 사용하는 한글도 10대때 배웠던 국어실력을 지금까지 울궈먹는 것일 뿐 노트북을 착 덮고 나면 한글을 읽고 쓸 일이 전혀 없다. L.A 코리아타운이나 뉴욕 퀸즈 등 한인 밀집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는 인터넷을 벗어나면 한글을 쓸 일이 진짜로 없다. 종이에 한글로 내 이름을 써놓아도 생소하게 보이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정체성이 어쩌구..." 하는 소리를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소리 하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2~3년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자. 툭하면 '미국식,' 미국 스타일' 타령하고,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 중얼거리면서 미국물 먹은 티 혼자 다 내고 다닐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싹 변한 사람들을 몇몇 본 적 있다. 미국에 이민오기 전엔 툭하면 "빠다냄새가 어쩌구..." 하더니 미국에 온 뒤론 몇 해 지나지도 않았는데 대뜸 "미국에선 미국식으로 살아야 한다", "완전히 미국인이 되어야 성공한 것이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미혼일 때엔 "사내녀석이 어떻게 지지배한테 잡혀 사느냐"고 큰소리 탕탕 치던 남자가 결혼한 뒤 와이프의 애완견이 된 경우가 자주 눈에 띄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미혼일 땐 "사나이로 태어나서~!" 하더니 결혼한 뒤엔 와이프가 꼬리치라면 치고, 핥으라면 핥고, 박으라면 박고, 때리면 맞고, 꾸짖으면 질질 짜고...

물론 해외생활 오래 하다보면 한국생각을 자주 안 할 수도 있다지만, 그래도 명절에 맞춰 음식을 차려먹을 수는 있지 않냐고?

내 주변에서도 때가 되면 음식을 하는 한인들을 더러 본 적 있다. 대부분은 미국 명절이든 한국 명절이든 "오면 오는 구나, 가면 가는구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음식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주머니에 동전을 잔뜩 넣고 나간다. 안 그러면 잘못하단 날아간다. 얼마 전 한 지지배가 내 옆구리를 손으로 잡으면서 "그래도 나잇살은 있네"라고 하는 바람에 한 번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난 살과 음식과는 거리가 좀 있다. 먹는 걸 즐기는 게 아니라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귀찮게 여긴다. 그런데 내가 명절에 맞춰 음식 찾아먹게 생겼수? 한 번은 어느 아는 한 분이 "설날 지났는데 떡국 먹었느냐?"고 묻길래 "아니 그걸 왜 먹어야만 하느냐"고 했다가 연초부터 옥신각신했던 기억이...ㅋ

그런데 추석엔 뭘 먹더라? 설날에 떡국먹는다는 건 알겠는데 추석엔 뭐였더라?

아무튼 한국에 사는 분들 추석 잘 보내시구랴...

댓글 2개 :

  1. 한국에선 추석에 송편을 먹지요.낯선 땅에서도 주체적으로 잘 사시는 분 같아서 아주 부럽습니다. 저는 한국에
    살아도 점점 더 이방인인 것만 같은 기분이거든요.
    특히 명절같을 땐 더더욱 그렇구요.사실 한국분위기가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갈수록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게 되가고 있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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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구글의 코멘트 스팸 필터링이 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우선 먼저 사과부터 드립니다. 왜 자꾸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 송편이었군요! 워낙 명절과 관계없이 살다보니 언제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걸 다 까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떡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송편을 좋아했었는데 그걸 잊다니 참...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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