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제이슨 본 4탄엔 제이슨 본이 안 나온다?

유니버설이 네 번째 제이슨 본(Jason Bourne)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토니 길로이(Tony Giloy)가 제이슨 본 4탄 연출과 스크린플레이를 맡았으며, 2012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있다는 정도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소식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관련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제이슨 본 4탄엔 제이슨 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에 의하면, 제이슨 본 4탄의 연출과 스크린플레이를 맡은 토니 길로이가 Hollywood Elsewhere와의 인터뷰에서 "제이슨 본 4탄엔 제이슨 본도, 맷 데이먼(Matt Damon)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길로이는 제이슨 본 4탄이 리부트, 리캐스트, 또는 프리퀄이 아니라면서, 줄거리는 본 트릴로지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관련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지금 토니 길로이는 "제이슨 본 영화에 제이슨 본이 안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제이슨 본 4탄은 세계와 줄거리가 이전 트릴로지와 연결되는 게 전부일 뿐 제이슨 본이 주인공도 아니다. 즉, 제이슨 본 4탄은 메인 캐릭터 제이슨 본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그린 '스핀-오프/사이드 스토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게 있다: 제이슨 본이 안 나오는 영화를 '제이슨 본 4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물론 토니 길로이가 구상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는 수퍼맨, 배트맨, 제임스 본드 시리즈처럼 캐릭터 중심의 시리즈지 '스타 워즈(Star Wars)',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처럼 유니버스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가 아니다. 제이슨 본이 다른 유명 캐릭터에 비해 인기와 인지도가 낮다고 해도 제이슨 본 시리즈는 캐릭터 중심의 액션 스릴러지 여러 음모들이 복잡하게 얽힌 첩보세계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중심을 캐릭터에서 첩보세계로 옮기면 이전의 본 트릴로지와 비스무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느 정도의 커넥션은 분명하게 눈에 띌 것이다. 굳이 이전 트릴로지와 연결시키려 노력하지 않더라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비슷비슷한 음모 타령을 늘어놓으면서 메인 캐릭터를 도망자로 설정하기만 해도 제이슨 본 영화 분위기가 제법 풍길 것이다. 그러나 제이슨 본이 메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보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간단하게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비교해 보자.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이 아닌 데도 그 영화를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영화에 등장하지만 않을 뿐 여전히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해도, 제임스 본드가 메인 캐릭터가 아닌 영화를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 중엔 이런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다. 로저 무어(Roger Moore) 주연의 1977년 영화는 원작의 내용은 놔둔 채 제목만 사용한 게 전부이므로 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원작소설은 다른 얘기다. 소설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플레밍의 이전 제임스 본드 소설들과 달리 비비안 미첼(Vivienne Michel)이라는 영국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시점 소설이다. 플레밍의 다른 007 소설들은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3인칭 시점 소설이지만,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코믹하게도, 영국을 떠나 미국에 온 생전 들어보지 못한 영국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가 아예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소설에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미스터 본드는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어슬렁거리며 등장한다.



만약 007 시리즈 제작진이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로 옮겼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개인적으로는 1977년 영화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의 흔적이 뚜렷하게 눈에 띄는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더 좋아해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될 것이다. 제임스 본드가 아닌 비비안 미첼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더라면 난리가 났을 테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제이슨 본 시리즈가 이언 플레밍의 '나를 사랑한 스파이' 루트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제이슨 본 시리즈에 제이슨 본이 주인공이 아니고, 그의 존재가 느껴지긴 해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마치 제임스 본드 소설인데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이 아닌 플레밍의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비슷하게 보인다.

굳이 이런 식으로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아마도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 4탄으로 돌아오지 않는 만큼 급한대로 짜낸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맷 데이먼은 어디로 갔냐고?

두 편의 제이슨 본 영화를 연출했던 영국 영화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난다고 발표하자, 맷 데이먼 역시 그린그래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도 그만 둔다며 함께 시리즈를 떠났다. 제이슨 본 시리즈 이후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은 박스오피스에서 죽을 쑨 이라크전 영화 '그린 존(Green Zone)'에서 함께 했다.

하지만 토니 길로이는 맷 데이먼이 미래에 다시 제이슨 본 시리즈로 돌아오길 희망하는 듯 하다. 길로이가 "No one's replacing Matt Damon"이라며 제이슨 본을 다른 배우로 교체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후에 제이슨 본이 영화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것만 보더라도 그의 속내를 대충이나마 읽을 수 있다.

"the world we're making enhances and advances and invites Jason Bourne's return [down the road]." - Tony Gilroy

제이슨 본 시리즈가 'STAYING POWER'가 높은 시리즈가 아닌 만큼 길로이가 맷 데이먼에 목을 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보다 주연배우의 이름값이 더 높은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이 돌아왔더라면 그의 얼굴을 팔아서 한 두 편 정도는 쉽게 더 울궈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유니버설 픽쳐스 또한 거의 유일한 노다지인 제이슨 본 시리즈를 그냥 묻어버리기 싫었을 것이다. 최근들어 NBC 유니버설의 TV 시리즈와 영화들은 "누가 빨리 정상에 오르나가 아니라 누가 빨리 바닥에 떨어지나 내기를 하고 있다"는 우스겟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다. 그런 만큼 박스오피스 성공작인 제이슨 본 시리즈에 미련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맷 데이먼이 시리즈로 리턴하지 않기로 했다면 새 얼굴로 리부팅을 하는 게 가장 옳지 않았을까 싶다. 제임스 본드, 배트맨 등과 비교하기엔 캐릭터 인지도가 낮은 게 약점이긴 하지만, 데이먼이 돌아오지 않기로 했다면 새얼굴로 리부팅하는 게 최선책이었다.

영화로는 아무래도 곤란한 것 같다 싶으면 TV 시리즈로 새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제이슨 본이 빅 스크린 익스클루시브 캐릭터인 것도 아니다. 맷 데이먼의 영화 시리즈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지난 80년대에 리처드 챔벌레인(Richard Chamberlain) 주연의 '본 아이덴티티(Bourne Identity)' 미니 시리즈가 제작된 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들어 너도 나도 스파이 테마의 TV 시리즈를 선보이거나 계획중인 판인데, 제이슨 본 시리즈 만큼 섹시한 TV 아이템이 또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칫 겹칠 수도 있었던 FOX의 '24'까지 종영한 만큼 제법 진지하고 서스펜스풀한 성공적인 스파이 TV 시리즈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24'의 잭 바우어(Jack Bauer)가 빅 스크린으로 이동했으니 제이슨 본이 TV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니버설은 빅 스크린을 고집하는 듯 하다. 맷 데이먼이 시리즈로 돌아오지 않는다니까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를 아예 빼버리면서 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4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는 듯 하다. 어느 배우에게 그 역할이 돌아갈 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맷 데이먼이 출연하지 않는 데다 제이슨 본 까지 등장하지 않는다는 빈 공간을 메꾸기에 충분한 배우에게 역할이 돌아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주인공이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으며('살트'?), 또는 흑인일 가능성도 있지만('언더커버'?) 누가 주연을 맡든 간에 제법 스타파워를 갖춘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맷 데이먼의 스타파워가 제이슨 본 트릴로지를 이끌었던 것처럼...

유니버설의 네 번째 제이슨 본 영화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4개 :

  1. 제이슨 본이 없는 4탄이라~
    외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쉽네요~ 이 영화 정말 재밌게 봤던 시리즈인데 ㅠㅠ

    답글삭제
  2. 맷 데이먼이 떠났으면 분명한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트릴로지로 끝내든가, 아니면 새로운 얼굴로 리부팅을 하든가...
    근데 이건 좀 어정쩡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토니 길로이가 스파이 스릴러 쟝르에 일가견이 있는 양반이죠.

    답글삭제
  3. 앗.... 아쉽고 슬픈 소식이네요...;;;
    본 시리즈에 멧데이먼이 빠지다니...;;
    앙꼬없는 찐빵이네요.....;;

    답글삭제
  4. 맷 데이먼이 꼭 나와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본 시리즈에 제이슨 본이 안 나온다는 건 별로 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뭐, 비디오게임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도 제목엔 '솔리드'가 들어갔어도 주인공은 라이든이었지만...ㅋ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