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3일 토요일

'히어애프터', 별 것 없는 수퍼내추럴 버전 '바벨'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죽으면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후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경험했다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이 전하는 '저승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어떤 사람들은 심령술사를 통해 죽은 사람에 연락을 취하려고도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감독의 새 영화 '히어애프터(Hereafter)'가 바로 이러한 것에 관한 영화다.

'히어애프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영화 '인빅터스(Invictus)'에서 함께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맷 데이먼(Matt Damon)이 다시 한 번 뭉친 영화이기도 하다. 스크린플레이는 '퀸(The Queen)', '프로스트/닉슨(Frost/Nixon)'의 영국 스크린라이터 피터 모갠(Peter Morgan)이 맡았다.

그렇다면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히어애프터'의 스토리는 미국, 프랑스, 영국에서 벌어지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①미국 스토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조지(맷 데이먼)의 이야기다. 그는 사람의 손을 잡는 순간 죽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능력을 지닌 심령술사다. 그러나 조지는 이를 신통한 능력이 아닌 저주라고 하면서 되도록이면 심령술사 노릇을 하지 않으려 한다.

②프랑스 스토리는 몇 해 전 동남아에 쓰나미 재앙이 덮쳤을 때 죽음을 경험하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프랑스 TV 뉴스 진행자 매리(쎄실 드 프랜스)에 대한 이야기다. 매리는 프랑스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가 체험했던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한다.

③영국 스토리는 쌍둥이 형을 교통사고로 잃은 영국 소년 마커스(프랭키 맥래런)의 이야기다. 교통사고로 죽은 쌍둥이 형, 제이슨을 잊지 못하는 마커스는 심령술사를 찾아가 그의 죽은 형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왠지 이 3개의 이야기가 한데 모일 것 같다고?

에이, 뻔한 것 아니겠수?



그렇다. '히어애프터'는 브래드 핏(Brad Pitt), 케이트 블랜칫(Kate Blanchett) 주연의 드라마 '바벨(Babel)'과 아주 비슷한 영화다. '히어애프터'를 사후세계 버전 '바벨'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가 생각 밖으로 시시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빤히 내다보이는 뻔할 뻔자 스토리였다. 약간의 심령 드라마, 약간의 멜로 드라마, 약간의 로맨스 드라마를 섞으려 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다.

특별히 '감동적이다', '로맨틱하다'고 기억에 남을 만한 파트도 없었다. 로맨틱한 씬에선 억지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고, 슬픈 씬에선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려는 게 빤히 보였을 뿐 그러한 느낌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았다.

3명의 스토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부분도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스토리를 억지로 짜맞춘 듯한 느낌이 나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이런 영화를 볼 때 마다 스토리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지를 눈여겨보곤 하는데, '히어애프터'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세 캐릭터가 서로 인연이 닿게 되는 파트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저 말이 되는 선에서 대충 짜맞추고 넘어간 게 전부였다. 3명의 메인 캐릭터들이 한데 모이게 된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으므로 이들 서로간에 얽힌 관계를 좀 더 섬세하게 묘사했더라면 좋았겠지만, '3개의 각기 다른 스토리로 시작했다가 이를 하나로 합친다'는 기초 컨셉에만 충실했을 뿐 디테일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영화의 소재가 크게 색다른 것도 아니었다. 개봉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러블리 본스(The Lovely Bones)도 사후세계를 그린 판타지 영화였으며, 죽음을 체험한(Near Death Experience)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혀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지난 동남아 쓰나미 사태를 영화에 사용했다는 점은 그런대로 눈에 띄었지만, 약간의 재앙영화 분위기를 내고자 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히어애프터'는 'Little bit of this, little bit of that'이 전부였을 뿐 'SOMETHING'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점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맷 데이먼의 연기는 좋았고, 배역과도 잘 어울려 보였다. 데이먼이 'YOUNG-SMART-ASS' 이미지가 강해서 인지, 공장에서 안전모를 쓴 모습은 조금 어색해 보였지만,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열렬한 팬인 살짝 'NERDY'한 면을 지닌 조지 역에 잘 어울렸다.

데이먼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좋았다. 배우경험이 전혀 없었던 아역배우 프랭키 맥래런의 연기도 자연스러웠고, 프랑스 배우들이 등장하는 씬에선 마치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마도 자막을 열심히 읽어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였을까? '히어애프터'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들이 어디서 본 듯 하면서도 누군지 모르겠더라. 프랑스 영화를 보려면 자막을 읽어야 하니 배우들 얼굴을 볼 틈이 없다니까...

배우들의 연기는 전체적으로 좋았다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히어애프터'는 기대했던 만큼 아주 인상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수퍼내추럴을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바벨'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도중에 산만해지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특별한 데가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저 지극히도 평범한 영화일 뿐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맷 데이먼, 피터 모갠이 함께 만든 영화라니까 제법 기대를 했지만 별 것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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