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트론', 아이맥스 3D로 봐도 재미 없었다

"이 영화는 3D로 봐야 재미있다", "아이맥스로 봐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듣는 영화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영화다. 제대로 된 영화라면 영화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3D, 아이맥스로 봐도 재미가 없는 영화가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3D로 봐야 한다", "아이맥스로 봐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영화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소리를 듣는 영화들은 아이맥스 3D로 봐도 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개봉한 디즈니의 '트론(Tron: Legacy)'도 이런 영화 중 하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20년 전 실종된 아버지 케빈(제프 브리지스)의 작업실을 둘러보던 아들 샘(개렛 헤들런드)이 우연히 컴퓨터 프로그램의 세계로 이동했다가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 케빈과 함께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볼 게 많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비디오게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화이다 보니 CGI는 풍부했지만 최근에 나온 SF, 판타지 영화들로 이미 눈이 단련된 상태인 영화관객들을 감탄시킬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름 공을 들인 것 같았어도 우중충한 검정색 바탕에 네온 컬러의 줄무늬만 기억에 남을 뿐 화려하거나 컬러풀한 맛이 없었다.

액션도 볼 게 없었다. 여러 비디오게임들을 연상케 하는 액션 씬은 제법 자주 등장했지만, '트론'이 PG 레이팅을 받은 어린이용 패밀리 영화였기 때문에 많은 걸 기대할 수 없었다.

제법 거칠고 인텐스한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층 남성 영화관객들은 PG와 PG-13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많다. PG는 어린이, PG-13는 13세 이상을 겨냥한 영화라서 그 차이가 쉽게 느껴진다.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를 비롯한 이런 류의 SF 영화는 대개 PG-13을 받는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 모두를 상대할 수 있는 레이팅이 PG-13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트론'은 PG였다.

PG라고 무조건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PG 레이팅을 받은 영화 중에도 볼 만한 영화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조건이 따른다. 폭력과 섹스 등 성인용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대신 다른 것으로 재미를 보충해줘야만 한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PG 레이팅 영화는 어린이용 TV 프로그램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여름에 개봉했던 파라마운트의 '라스트 에어벤더(The Last Airbender)'와 같은 영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트론'도 마찬가지였다.

'트론' 역시 스토리는 흥미가 끌리지 않고, 비쥬얼 효과도 그리 대단하지 않으며, 액션 역시 볼 게 없는 맹탕의 어린이용 SF 영화일 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지루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아이맥스 3D로 봤더라면 달랐을 거라고?

그렇게 했는 데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2D로 만든 부분도 나오지만 그냥 3D 안경을 끼고 보라'는 자막이 나오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게임의 세계만 3D일 뿐 나머지는 2D라는 얘기였다.

100% 3D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3D로 만든 파트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3D라는 것은 그럭저럭 알아보겠는데, 특별하다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다. 형식적으로만 3D 영화였을 뿐 3D 영화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론'이 시작하기 전에 아이맥스 3D 전용으로 제작한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라는 동물 다큐멘타리의 트레일러가 나왔는데, 어찌된 게 '트론'이 트레일러만도 못해 보였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3D 영화 중에 제대로 만든 3D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티켓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3D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을 이용하려는 무성의하게 만든 싸구려 3D 영화들이 대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도 3D 영화 티켓가격은 여전히 일반보다 비싸다. 여기에 아이맥스까지 끼면 영화 한 편 보는데 거진 20불이 들어간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냐고?

없다. 3D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벌써부터 '3D' 하면 넌더리가 나는 데도 다 이유가 있겠지?

'트론'도 비싼 티켓 값을 못하는 영화였다. 겉만 뻔지르했을 뿐 실속이 없었다.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했으리라 본다. 일부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자 허탈한 표정으로 "3D 안경이라도 집에 가져가야겠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이와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면 '트론' 근처에 얼씬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정 보고싶다면 일반버전으로 보길 권한다. 아이맥스나 3D로 봐야 제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참는 게 좋을 것이다. '트론'은 돈 더 내고 아이맥스나 3D로 거창하게 본다고 더 재미있어지는 영화가 절대 아니다.

그래도 프랑스 하우스 뮤지션 Daft Punk의 일렉트로 스타일 사운드트랙은 들을 만 했다. 요새 워낙 일렉트로 하우스가 인기를 끌고있기도 하지만, 음악 스타일이 영화와 비교적 잘 매치되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 하나 있지만, 그 곡을 아이튠스(iTunes) 등에서 구입하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노래가 2분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프렌치 하우스 뮤지션이 음악을 맡았으니 사운드트랙 전곡을 클럽에서 돌릴 수 있을 만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웬걸, '트론' 수록곡 상당수가 채 2분이 안 되는 짧은 곡들이었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그 중 몇 몇 곡들은 익스텐디드 리믹스가 수록된 싱글로 나왔을 법도 한데, 아직 소식이 없는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마지막은 Daft Punk의 그 노래로 하자.


댓글 8개 :

  1. 요즘 통 영화를 못 봐서 그런지...
    세게 땡기는 영화가 없네요.
    대신 미드가 훅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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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금년엔 정말 볼 만한 영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꼭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끌리는 영화가 없습니다.
    미드도 요샌 다 고만고만한 것들밖에 없는 듯...
    제 2의 '24', '로스트'가 언제쯤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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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앗..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런...;;
    아무래도 어린이관객에게 초점이 많이 마췄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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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디즈니 테마공원과 액션피겨 판매에 더 신경을 쓴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애들도 이걸 좋아하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북미 개봉 첫 주 1위는 했지만, 수익이 그리 높진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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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나가다가 트론에 대한 따끈따끈한 정보가 있어서 보러 왔습니다. 트론에 대한 현지 매체 반응이 시큰둥 했던게 괜한 게 아니었나보네요. 글을 읽다보니 다른 리뷰들도 읽게 됐는데요, 영화를 보는 자기 관점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기존에 호평을 받는 영화들에 대해서도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도 상당하신 걸 보면 말이죠 ^^. 한편으론 지금껏 봐온 리뷰글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뚜렷해보이는군요. 글 읽을때마다 조마조마해 하며 봤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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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제가 좀 이상한 것일 수도 있겠...ㅋ
    아마 제가 글을 잘 쓸 줄 몰라서 그런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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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하 cgv갔더니..

    트론패키지로 팝콘팔아서

    피규어도 같이 줬는데 -,-;; 영화가 안습이라

    소장가치가 훅 떨어지는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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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3D 티켓이 비싸니까 극장에서 액션피겨까지 주며 인심을 좀 쓰는 건가요?
    사실, 일반판으로 보겠다는데 극장에서 자꾸 비싼 3D를 권하는 것도 짜증나죠...ㅋ
    요샌 이것 때문에 극장이 아니라 꼭 패스트푸드점에 간 것 같다니까요.
    '엑스트라 치즈', '점보 사이즈'로 업그레이드하라고 묻는 것과 똑같이 들리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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