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파이터', 그저 또하나의 복싱영화일 뿐이었다

나는 스포츠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토리라인, 감정코드 등이 항상 비슷비슷한 뻔할 뻔자 영화가 대부분이라서다. 그래서 나는 스포츠 영화는 되도록이면 피하는 편이며, 아주 가끔 스포츠 테마의 코메디 영화를 보는 정도가 전부다. 스포츠 드라마는 실제 경기를 관전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똑같은 틀에 맞춰 찍어낸 헐리우드 스포츠 드라마를 굳이 봐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볼만한 스포츠 영화가 꽤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 끌리지 않는 쟝르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권투영화는 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권투를 그리 즐겨 보지 않는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주먹 좀 쓰는 건달형 캐릭터가 권투선수가 되어 실컷 두들겨 맞다가 마지막에 양팔을 들어 올린다'는 스토리라인이 안 봐도 비디오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뿐만 아니라 아이리쉬, 이탈리안 건달들의 이야기에도 이젠 지쳤다. 툭하면 아이리쉬 건달, 이탈리안 갱스터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거의 모두 비슷비슷할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처진 듯한 느낌이 들며, 재미도 없다.

그렇다.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 크리스챤 베일(Christian Bale) 주연의 '파이터(The Fighter)'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모아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메사스세츠 주 아이리쉬 형제 복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니까.



'파이터'는 괴짜 가족과 마약중독에 빠진 전직 권투선수 형을 매니저로 둔 아이리쉬계 미국인 복서 미키 워드(Mickey Ward)가 세계 챔피언에 오르기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마크 월버그는 주인공 미키 워드 역을 맡았고, 크리스챤 베일은 매니저로써 동생 미키를 돕고자 하면서도 마약문제 등으로 항상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형 디키 역을 맡았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파이터'가 어떠한 영화인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어디에서 갈등이 생기고, 무엇으로 감동을 주려는 영화인 지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했다. 미키 워드의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 이외의 무언가 다른 것들이 더 숨겨져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별다른 게 없었다. 예상되었던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얼핏 보기엔 얼마 전 개봉한 미키 루크(Mickey Rourke) 주연의 '레슬러(The Wrestler)'와 비슷한 데가 많아 보였으나 그것처럼 흥미를 당기는 스토리가 아니었다. 마약중독자 디키(크리스챤 베일)는 거진 교과서 수준의 망나니 짓을 계속 할 뿐이었고, 미키의 나머지 괴짜 가족들의 이야기, 미키(마크 월버그)와 샬린(에이미 애덤스)의 로맨스도 흥미롭지 않았다. 스포츠, 패밀리, 로맨스로 구성된 스포츠 영화에 필요한 준비물들은 그럭저럭 갖춘 듯 했지만 기승전결에 맞춰 그저 죽 늘어놓은 것으로만 보였을 뿐 영화에 빠져들게 만들 만한 '무언가'가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찾고있었던 '무언가'는 미키와 디키의 진한 형제애였다. 스토리는 "빤스를 내리면 꼬추가 튀어나온다"는 것 만큼 이미 뻔한 것이었으므로 배경 이야기는 최대한 압축하고 '가능성이 엿보이는 복서와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망나니 형과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두 남자의 우애와 갈등에 제대로 초점을 맞춰야만 따분한 전기영화 또는 평범한 스포츠 영화가 아닌 감동적이고 볼 만한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키와 디키의 이야기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 디키가 마약중독자로 심하게 방황했고, 미키의 가족들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은 제대로 묘사한 듯 했지만, 미키와 디키가 서로 얼마나 절친한 형제 사이였는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미키와 디키 형제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 좀 더 비중을 뒀어야 했을 것 같은데, 막바지에 접어들어 잠깐 반짝하는 게 전부였을 뿐 별다른 느낌이 전해오지 않았다. 비록 진부한 스토리였더라도 끈끈한 형제애가 제대로 와 닿았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크리스챤 베일은 마약중독 망나니 역으로 호연을 펼쳤다. 겉으론 망가졌어도 속으론 따뜻한 디키 역에 정말 잘 어울렸다. 베일은 세련된 캐릭터보다 디키처럼 망가진 캐릭터 역으로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만약 베일이 앞으로 열리는 영화 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받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주인공 미키 역을 맡은 마크 월버그의 연기도 좋았지만, 만약 이 영화로 누군가 연기상을 받는다면 크리스챤 베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영화제를 휩쓸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전체적으로 그리 잘 만든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형제간의 우애에 초점을 맞춰 보다 감동적으로 그려냈더라면 영화도 더 재미있었을 것이고 상도 더 받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파이터'로는 많은 것을 달성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갑자기 왜 상 타령이냐고?

에이, 상 받으려고 만든 영화라는 거 다 알면서 왜그래...ㅋ

마지막은 이 영화에 가장 자주 나온 노래인 The Heavy의 'How You Like Me Now'로 하자.


댓글 8개 :

  1. 제가 좋아하는 두 배우가 나오니 안 볼 수가 없네요^^

    답글삭제
  2. 마크 월버그와 크리스챤 베일 둘 다 멋집니다...^^

    답글삭제
  3. 마크 월버그와 크리스찬 베일 제가 좋아하는 배우네요.
    마크 월버그 한동안 안 보인다 싶었더니, 저 영화를 찍었군요. ^^
    크리스찬 베일이야 뭐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이니 ㅎㅎ

    답글삭제
  4. 멋진 배우들이 나왔네요...ㅎㅎ
    전 권투영화하면 역시 "Raising Bull"이나 다른 영화도 좋지만... Rocky의 필라델피아 에서 트레이닝 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노래는 "Gonna Fly Now" 하고요.ㅋㅋ
    "Eye of the Tiger"나 "Burning Heart"도 좋았지요.^^

    마크월버그는 예전에 랩할때보다 훨씬 멋져진것 같네요.

    답글삭제
  5. 마크 월버그보다 크리스챤 베일이 더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베일은 작년의 '퍼블릭 에너미' 이후로 '파이터'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베일은 브루스 웨인도 좋지만 부랑자, 터프가이 역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3:10 투 유마'와 같은 웨스턴에도 잘 어울렸죠.

    답글삭제
  6. 제가 복싱을 별로 안 좋아해서...ㅡㅡ;
    하지만 저도 록키 음악 좋아했습니다. 특히 서바이버가 부른 주제곡들이요.
    근데 록키 음악 하면 떠오르는 게...
    '유어 아이스 온리'...ㅋㅋ
    빌 콘티...

    마크 월버그가 마키 마크였을 때 인기가 좀 있었죠.
    2집은 말아먹었지만...
    그래도 뉴 키즈 온 더 블락의 다니 월버그보단 마크가 낫죠?

    답글삭제
  7. 두 배우 좋아하는데...
    스토리가 좀 진부했나보네요..^^;

    답글삭제
  8. 뻔한 복싱얘기보단 진한 형제애 쪽에 기대를 걸었었는데요,
    제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