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 작곡가 존 배리 타계

007 시리즈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영국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가 세상을 떠났다. 1933년 영국의 요크(York)에서 태어난 배리가 2011년 미국의 뉴욕(New York)에서 생을 마쳤다. 향년 77세.

버라이어티에 의하면, 존 배리는 지난 일요일(1월30일) 뉴욕주 오이스터 베이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존 배리는 '닥터 노(Dr. No/1962)',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1963)', '골드핑거(Goldfinger/1964)', '썬더볼(Thunderball/1965)',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1967)',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1971)',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1974)', '문레이커(Moonraker/1979)', '옥토퍼시(Octopussy/1983)', '뷰투어킬(A View to a Kill/1985)',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1987)' 등 12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음악을 맡았던 007 베테랑이다.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이 들을 만 했던 시절에 음악을 맡았던 작곡가가 바로 그다. 007 시리즈 음악이라고 하면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존 배리'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유명한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를 작곡한 것은 또다른 영국인 작곡가 몬티 노맨(Monty Norman)이다. 제임스 본드 테마를 완성한 건 존 배리지만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짜낸 작곡가는 몬티 노맨이다. 몬티 노맨이 먼저 만든 곡을 기초로 존 배리가 제임스 본드 테마로 완성시킨 것으로 되어있다. 이를 두고 몬티 노맨이 최초로 작곡하고 존 배리가 편곡한 것으로 보는 게 맞느냐, 아니면 존 배리가 사실상 새로 모두 다 작곡했다고 봐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존 배리는 007 시리즈 이외로도 'Out of Africa', 'Dances with Wolves' 등 여러 다른 영화음악을 맡았으며, 모두 다섯 차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007 시리즈로는 수상에 실패했다. '존 배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007 시리즈 음악이지만,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렇다면 존 배리가 남긴 지난 007 시리즈 음악들을 몇 곡 들어보기로 하자.

첫 곡은 제임스 본드 테마.


다음 곡은 007 시리즈 제 2탄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위기일발' 주제곡. 노래는 영국 가수 맷 몬로(Matt Monro)가 불렀다.


'위기일발' 사운드트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하나 있다. 바로 '007'이라는 곡이다. 존 배리가 작곡한 이 곡은 '위기일발'을 비롯해 존 배리가 음악을 맡은 여러 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등장했다.


다음은 1964년작 '골드핑거' 주제곡. 노래는 영국 여가수 셜리 배시(Shirley Bassey)가 불렀다.


'골드핑거' 사운드트랙에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곡이 있다. 바로 'Into Miami'다. 60년대 숀 코네리(Sean Connery) 주연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곡이다.


다음은 1965년작 '썬더볼' 주제곡. 노래는 영국 가수 톰 존스(Tom Jones)가 불렀다.


하지만 원래는 다른 노래가 '썬더볼'의 주제곡이 될 뻔 했다. 존 배리가 '썬더볼' 주제곡으로 준비했던 곡은 톰 존스가 부른 '썬더볼'이 아니라 'Mr. Kiss Kiss Bang Bang'이었다. 만약 007 제작진이 'Mr. Kiss Kiss Bang Bang'을 영화 주제곡으로 선택했더라면 노래 제목이 영화제목과 다른 첫 번째 007 시리즈 주제곡이 탄생할 뻔 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NO'를 택했고, 결국 톰 존스가 부른 '썬더볼'이라는 곡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Mr. Kiss Kiss Bang Bang'이 바로 쓰레기통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다. 비록 주제곡이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했으며, 사운드트랙 앨범에도 수록되었다.


다음은 1967년작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주제곡.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딸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가 불렀다.

(낸시 시나트라는 지난 90년대 중반 L.A 근교 선셋 블루버드의 타워 레코드에서 플레이보이 매거진 이벤트가 열렸을 때 직접 만났던 기억이 있다.)


다음은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주제곡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 노래는 미국의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불렀다.


'여왕폐하의 007' 사운드트랙은 최고의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의 메인 타이틀 곡으로 사용된 '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곡이다.


또한 오케스트라 버전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역대 007 시리즈 스코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 아닐까 싶다.

(참고: 마지막에 제임스 본드 테마가 나오는 이유는 엔드 타이틀 버전이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곡은 1971년작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주제곡. 노래는 '골드핑거'를 불렀던 영국 가수 셜리 배시가 또 불렀다.


다음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주제곡. 노래는 영국 가수 룰루(Lulu)가 불렀다.


다음은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 주제곡. 노래는 '골드핑거',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불렀던 영국 가수 셜리 배시가 또 불렀다.

셜리 배시는 이렇게 세 편의 007 시리즈 주제곡을 불렀는데, 세 곡 모두 존 배리가 작곡한 곡이었다.


존 배리와 셜리 배시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전부가 아니다. 배리는 셜리 배시의 2009년 앨범 'The Performance' 작업에도 참여했다. 'The Performance' 앨범 수록곡 'Our Time is Now'의 작사는 돈 블랙(Don Black), 작곡은 존 배리다. 돈 블랙은 '썬더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등의 007 시리즈 주제곡 가사를 쓴 007 베테랑 작사가이다. 셜리 배시, 존 배리, 돈 블랙 등 세 명의 007 베테랑들이 2009년 다시 뭉쳐 발표한 곡이 바로 'Our Time is Now'다.


'문레이커' 사운드트랙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멋진 곡이 있다. 케이블 카 위에서 본드(로저 무어)와 죠스(리처드 킬)가 격투를 벌이는 씬에서 나오는 곡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 곡은 1983년작 '옥토퍼시(Octopussy)' 주제곡. 노래는 미국 가수 리타 쿨리지(Rita Coolidge)가 불렀다.


다음은 1985년작 '뷰투어킬(A View to a Kill)' 주제곡. 노래는 영국 팝그룹 듀란 듀란(Duran Duran)이 불렀다. 이 곡은 빌보드 챠트 1위에 오를 만큼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곡으로, 가장 성공한 007 시리즈 주제곡으로 꼽힌다.


다음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주제곡. 노래는 노르웨이 팝그룹 아하(A-Ha!)가 불렀다. 듀란 듀란의 '뷰투어킬'이 대성공을 거두자 이번엔 아하를 선택했다.


'리빙 데이라이트' 사운드트랙 앨범도 버릴 곡이 거진 없을 만큼 알찬 앨범이다. 또한 존 배리의 마지막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 앨범이기도 하다. '리빙 데이라이트' OST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은 영국 그룹 프리텐더(Pretenders)가 부른 2곡이 있다. 아하가 부른 메인 타이틀 곡이 기대에 상당히 못 미쳤던 대신 프리텐더가 부른 노래들이 있었다.

우선 프리텐더가 부른 'Where Has Everybody Gone?'부터 들어보자. 아하가 부른 '리빙 데이라이트'보다 이 노래가 제임스 본드 영화 주제곡으로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다음은 역시 프리텐더가 부른 'If There was a Man'.


또, 아프가니스탄 무자하딘이 등장하는 사막 씬에서 나왔던 'Mujahadin and Opium'도 잊혀지지 않는 트랙이다.


여기까지가 존 배리의 007 시리즈 음악들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부터 007 시리즈 음악은 어찌 되었을까?

존 배리가 '리빙 데이라이트'를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 이후 주제곡과 사운드트랙이 모두 어떻게 되었는지 되돌아 보면 존 배리가 007 시리즈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80년대를 끝으로 007 시리즈 주제곡 중에서 이렇다 할 히트곡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사운드트랙 퀄리티도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많은 본드팬들이 존 배리의 음악에 익숙하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제임스 본드 음악을 맡고 있는 영국 작곡가 데이빗 아놀드(David Arnold)에 불만이 있는 팬들이 많다. 데이빗 아놀드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어쨌다 하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데이빗 아놀드의 음악이 제임스 본드 사운드트랙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미 여섯 편의 007 시리즈 음악을 맡았는데도 여전히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음악의 맛이 나지 않는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인지, 많은 본드팬들은 작곡가 교체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나도 작곡가 교체를 원하는 쪽에 속한다. 정 안 되겠으면 존 배리라도 다시 모셔오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존 배리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됐다. 존 배리의 타계가 더욱 아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