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일 화요일

'본드23'에 빠져도 될 것

스물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본드23(제목미정)'가 2012년 11월9일 개봉 예정으로 밝혀졌다. MGM 사태로 제작이 중단되면서 개봉시기가 불투명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본드23'가 2012년 007 시리즈 50주년에 맞춰 개봉이 가능해진 듯 하다.

'본드23'에 빠져선 안 될 것은 이미 살짝 알아봤으니, 이번엔 빠져도 될 것들을 훑어보기로 하자.

어떠한 것들이 '본드23'에 나오지 말아야 더 나은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베드씬

지금까지 나온 22편의 007 시리즈를 보면 빠지면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베드씬들이 자주 눈에 띈다. 마치 빠지면 큰 일이라도 난다는 듯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베드씬들이 많아서다. 제임스 본드가 여자를 밝히는 캐릭터로 유명한 데다, 007 시리즈가 섹시한 본드걸들로 유명한 시리즈다 보니 필요유무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베드씬을 넣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007 시리즈가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점 중 하나다.

007 제작진은 베드씬을 반드시 넣어야 제대로 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시간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베드씬을 억지로 넣어봤자 아무런 효과도 얻을 수 없다. 영화관객들도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인지 빤히 읽기 때문에 원했던 결과를 기대하기도 이젠 힘들다. "그럼 그렇지", "또 저러는구나"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일부 영화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들어 베드씬 횟수가 줄었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이들에게 딱 한마디 충고를 해주고 싶다. 어디 가서 포르노나 빌려다 보라고...

◇쓸 데 없는 가젯

007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가장 쉬운 이유는 온갖 터무니 없어 보이는 가젯들을 무더기로 영화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영화관객들은 제임스 본드가 느닷없이 엉뚱한 가젯을 사용하면서 위기에서 빠져나가는 씬을 보며 감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과거 6~70년대엔 그러한 것들이 통했을 지 모르지만 온갖 가젯들을 직접 들고 다니는 21세기 영화관객들에겐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수 장비 담당인 Q가 007 시리즈로 돌아오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Q의 복귀에 찬성하는 쪽이다. 그가 돌아오면 유머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화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서다. 다만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가젯들과 함께 돌아오는 것만은 반대다. 특히 시계, 허리띠, 핸드폰 등 자질구레한 것들에서 이상한 게 튀어나가는 종류는 절대 반대다. 이런 것들은 알렉스 라이더(Alex Rider)에 물려줄 때다.

그러나 본드카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지난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처럼 투명자동차까지 동원시키는 오버만 하지 않는다면 영화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에 등장한 에릭슨 핸드폰과 BMW 750 본드카를 좋은 예로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영화에서 본드(피어스 브로스난)가 에릭슨 핸드폰으로 BMW를 시동 걸고 원격조종을 했는데, 현재 원격조종까지는 모르겠어도 핸드폰으로 자동차 시동을 거는 건 가능한 세상이 됐으니까.

◇지나친 격투씬

로저 무어(Roger Moore)가 제임스 본드였을 당시, 많은 본드팬들은 숀 코네리(Sean Connery) 시절과 달리 피지컬하고 박력 넘치는 액션이 영화에서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코네리 시절의 제임스 본드는 'Mr. Kiss Kiss Bang Bang' 노래 가사처럼 "He's tall and he's dark, He looks for trouble, He's suave and he's smooth, The gentleman's a killer..."였는데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영화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조차 제이슨 본이 주먹싸움을 해서 이길 자신이 있는 제임스 본드로 로저 무어를 꼽은 바 있다.

그런데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맨손격투 씬이 부쩍 늘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터지는 씬도 늘었다. 과거 로저 무어, 심지어 숀 코네리 시절에도 제임스 본드가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지만 21세기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는 수시로 개박살이 난다. 신나게 얻어터지고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됐다가 금세 아물고, 또 얻어터치고 또 개박살이 났다가 또 금세 멀쩡해지기를 반복한다. 물론 의학의 발달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MI6가 '초고속 치료제'라는 비밀무기를 갖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보기에 그리 좋지 않다. 게다가 완성도까지 떨어지는 격투씬은 오히려 눈쌀만 찌푸리게 만든다.

물론 007 제작진이 과거 숀 코네리 시절의 피지컬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되살리려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UFC 선수가 아니다. 불필요한 격투씬은 베드씬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영화에 해가 된다.

너무 황당무계하거나 너무 리얼한 플롯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들어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많이 리얼해 졌다는 평를 받고 있다. 수퍼 범죄집단이 말도 안 되는 음모를 꾸미는 걸 제임스 본드가 막는다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수준의 플롯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007 시리즈가 앞으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문레이커(Moonraker)'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류의 플롯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들에게 물려줄 때다. 스펙터(SPECTRE)와 같은 막강한 범죄조직을 다시 등장시키는 것은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어떠한 음모를 계획하느냐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처럼 핵공격을 한다, 전인류를 말살시키려 한다는 둥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음모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리얼한 줄거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정치를 건드리고 무언가를 비판하려고 드는 영화들이 많은 편인데,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그쪽으로 가선 절대 안 된다. 그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실제 첩보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절대 될 수 없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에서부터 그쪽이 아니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줄거리는 실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으면서도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에 머무르는 게 정상이다. 너무 우스꽝스럽게 되어도 문제지만 그 반대로 너무 리얼해져도 문제가 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이전보다 리얼해진 것은 환영하지만, 너무 리얼해지는 것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007 제작진은 현실과 판타지 중간 쯤에 해당되는 스토리를 찾아내야만 한다. 제법 그럴싸한 스파이 스토리처럼 들리면서도 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중동 문제를 다루는 것을 원치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들어 007 시리즈가 리얼해진다더니 결국엔 중동으로 가는구나'라는 소리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댓글 8개 :

  1. 007시리즈 한두 편쯤 안 본 사람은 드물 겁니다.
    제게도 007 영화와 관련된 추억이 있네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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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그 추억을 소개해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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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베드신 동감입니다. ㅎㅎㅎ
    너무 말도 안되는 러브라인이라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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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좀 심하죠...ㅋㅋ
    더이상 눈뜨고 못보겠으니 제발 베드씬 좀 뺐으면 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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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딱..!! 적정 수준을 마추면서 재미있게 연출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자만..^^;
    너무 과하면 좋아보이지 않은 것 같아요..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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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007 시리즈가 정해진 포뮬라에 맞춰 매번 똑같이 찍어내곤 했던 게 문제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를 따져가며 만드는 데 익숙치 않은 지도...

    뻘쭘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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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적극 공감합니다.
    격투신도 적정수준에서 순간적으로 몰입할수 있는 수준이면 좋겠습니다.
    "위기일발"의 객실안 격투신이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엘레베이터 안 격투신처럼 밀도 있는 격투신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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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브로스난 시절엔 무리하게 논스톱 액션에 매달리는 듯 하더니,
    크레이그 시대에 와선 주먹질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액션, 격투 모두 중요하지만 눈에 띄게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보여줘야지 양만 많다고 전부가 아닌데...
    저도 '위기일발'의 객실 격투, '다이아몬드...'의 엘리베이터 격투,
    그리고 이런 격투씬에 재도전했던 '골든아이'의 클라이맥스 격투 같은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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