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8일 화요일

셜록 홈즈 미스테리보다 더 풀기 어려웠던 잘못 인쇄된 책의 비밀

최근에 방영된 CBS의 TV 시리즈 '하와이 파이브-오(Hawaii Five-0)' 에피소드에 영국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 쓴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숏스토리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The Adventure of the Dancing Men)'이 나왔다.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은 셜록 홈즈가 춤추는 사람 모양의 이상한 '댄싱 맨' 암호를 해독해 살인범을 잡는다는 내용의 숏스토리다.

그런데 이게 어쩌다가 '하와이 파이브-오'에 나왔을까?

스티브 맥개렛(알렉스 올러플린)의 살해당한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일본에서 온 엽서에 문제의 '댄싱 맨' 암호가 적혀있었다. 스티브의 살해당한 아버지가 수사하고 있었던 사건의 단서가 이 암호 속에 숨겨져 있었다.

스티브는 엽서에 그려진 괴상한 그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의 여동생 매리(타린 매닝)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읽어주던 셜록 홈즈 스토리를 기억하냐"면서 '댄싱 맨' 암호를 한 눈에 알아본다.

여동생의 도움으로 엽서에 적힌 그림의 정체를 알게 된 스티브는 '어드벤쳐 오브 셜록 홈즈(The Adventure of Sherlock Holmes)'라는 책을 펴들고 엽서에 적힌 '댄싱 맨' 암호 해독작업에 들어간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수?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책이 없었으므로 일단 서점에 가서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이 포함된 셜록 홈즈 숏스토리 콜렉션을 사오는 게 순서였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해서 읽게 되는구나' 싶었다.

서점에 갔더니 하드커버에 삽화까지 곁들여진 셜록 홈즈 콜렉션이 $7.99에 판매중이었다. 이런 책이 10불 미만에 판매된다니 거저먹기 같았다. 게다가 달랑 한 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길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집었다.



그런데 책의 두께를 보니 선뜻 덤벼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다른 스토리는 나중에 읽기로 하고 우선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만 읽어보기로 했다.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을 읽다보니 어렸을 적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듯 했다. 옛날에 해문문고(? 불확실)에서 나온 추리소설을 참 많이 읽었는데, 그중에 셜록 홈즈 스토리도 있었다. 하지만 암호해독 파트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암호 해독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갔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암호 해독이 안 되더라니까!!

'댄싱 맨' 스틱피겨들을 노트북에 적어가며 책에서 설명하는대로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한순간 갑자기 막혔다.

문제는 'R'이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붉은색 박스 안에 다섯 개의 댄싱 맨 스틱피겨가 있는 게 보일 것이다.



셜록 홈즈는 이 다섯 개의 스틱피겨가 N-E-V-E-R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제일 오른쪽에 있는 스틱피겨는 R이 된다.



그런데 다른 암호를 해독하면서 저 스틱피겨를 R로 읽으려 하자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셜록 홈즈는 아래 이미지에 나오는 스틱피겨 암호를 이렇게 해석했다:

"AM HERE ABE SLANEY"



그런데 책에서 가르쳐준 대로 해독해보니 "AM HE_E ARE SLANEY" 였다.

그렇다. 'B'와 'R'이 뒤바뀐 것이다. 내가 'R'로 알고 있었던 게 'B'가 되었고, 모르고 있던 스틱피겨가 'R'이 되어있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서 설명하자면, 왼쪽 붉은 원 안에 있는 스틱피겨의 의미는 모르고 있었고 오른쪽 원 안에 있는 것을 'R'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왼쪽 것이 'R'이고 오른쪽 것이 'B'라는 것이었다. 바로 위에서 'N-E-V-E-R' 다섯 개 암호를 해독할 때 분명히 'R'이라고 설명했던 스틱피겨가 이제와선 'B'로 둔갑한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코난 도일이 해독이 안 되는 암호로 독자들에게 사기를 쳤단 말이야?

순간 인터넷으로 뒤져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웹 브라우저 윈도우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NO STRATEGY GUIDE THIS TIME!"

공략집에 의존해 비디오게임을 즐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이다.

그래서 또 서점에 갔다. 다른 셜록 홈즈 책과 비교해보기 위해서 였다. 코난 도일이 해독이 안 되는 암호로 사기를 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산 첫 번째 책이 인쇄가 잘못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건 볼 것 없으니 바로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으로 넘어갔다.

그랬더니...

그렇다. R이 달랐다. 위에 있는 첫 번째 책의 'N-E-V-E-R'와 아래에 있는 두 번째 책의 것을 비교해 보면 맨 오른쪽에 있는 'R'이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배울 점이 있다: 싸다고 무조건 좋아하지 말 것!

하드커버에 삽화까지 곁들여진 그럴싸한 책이 8불밖에 안 하길래 웬 떡이냐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서점에 한 번 더 가서 또다른 셜록 홈즈 책을 또 사게 됐으니 말이다. 싸고 좋은 것 산 줄 알고 좋아하다 되레 손해 본 케이스다.

아무튼, 셜록 홈즈의 '댄싱 맨' 암호를 해독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하와이 파이브-오'의 엽서에 그려져 있는 암호도 풀어보려 했다.

극중에선 스티브가 셜록 홈즈 책을 읽어가며 어느 정도 암호를 해독한 것으로 나온다.

아버지의 엽서에 적혀있던 '댄싱 맨' 암호는 'HIRO NOSHIMURI' 였다. 하와이에서 활동하는 야쿠자 거물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스티브가 노트북에 적어놓은 것을 보니 제법 정확하게 해독한 듯 했다.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에 'U'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나머지 'H-I-R-O-N-O-S-H-I-M-_-R-I'는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엽서에 그려진 오리지날 '댄싱 맨' 암호를 보면 머리가 멍해 진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해독불능이다. 스티브가 노트북에 적은 것은 해독이 가능했지만, 엽서에 적인 암호는 무슨 그림인 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글자 수도 틀리다. 'HIRONOSHIMURI'는 글자 수가 13개인데, 엽서에 적힌 '댄싱 맨' 암호는 11개가 전부다.

그래서 엽서 해독은 기, 기권...ㅡㅡ;

엽서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보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암호 해독을 기권한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언제였더라?

아하! 영국 BBC의 미니시리즈 '셜록(Sherlock)'을 보면서 였다.

'셜록'이라고?

그렇다. '셜록 홈즈' 할 때 그 '셜록'이다. BBC의 2010년 미니시리즈 '셜록'의 독특한 점은 19세기말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21세기 현재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다. 콘템프러리 세팅으로 바꾼 셜록 홈즈 TV 시리즈인 것이다.

시대를 21세기로 바꿔놓으면 좀 이상할 것 같다고?

무슨 소리를... 아니, 영국산 시대극에 아직 지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단 말이오?

셜록 홈즈의 파트너, 존 와트슨의 배경 스토리도 21세기와 기가 막히게 딱 맞아 떨어졌다. 코난 도일의 원작에 나오는 와트슨은 19세기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21세기판 와트슨 역시 21세기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던 것으로 나온다.

아래 이미지는 21세기 버전 셜록 홈즈(왼쪽)와 와트슨(오른쪽).



여기에서도 코난 도일의 클래식 '어드벤쳐 오브 댄싱 맨'을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문화재를 밀수하는 중국갱들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는데, 바로 여기서 이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가 등장했다.

하지만 코난 도일이 만는 '댄싱 맨' 암호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드라마에 나온 암호는 한자를 이용해 만든 것이었는데, 아예 해독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봤다.

아래 이미지는 BBC의 '셜록'에 나온 암호다.



BBC의 TV 시리즈 '셜록'은 제법 볼 만 했다. 워너 브러더스의 영화 '셜록 홈즈'보다 BBC의 '셜록'이 훨씬 나았다.

그런데....

문제는 책이다. '하와이 파이브-오'에 나온 암호를 해독한다면서 셜록 홈즈 책 두 권을 샀는데, 저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나??

댓글 8개 :

  1. 아... 역시나 암호는 어렵습니다....;;;
    나중에 저도 한번 찾아서 자세히..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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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권은 완전 버렸군요. ㅎㅎ( 싼 게 비지떡?)
    저 두꺼운 책... 진짜 언제 다 읽나요?
    암호 해독 재밌을 것 같은데, 꼬맹이 때 셜록 홈즈 무쟈게 좋아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무뎌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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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종이에 직접 그려가면서 해독하면 그리 어렵진 않지만,
    책이 협조를 안 해주면...ㅡㅡ;
    암호에 인쇄오류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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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안 된 건 사실이지만,
    첫 번째 책엔 삽화가 있으니까 뭐 그림책으로...^^
    저도 어렸을 적에 추리소설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아직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 영향이거든요.
    그러나...
    새로 사온 저 두꺼운 셜록 홈즈 책들을 보면 깜깜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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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런 쪽 미스테리물 계열은 영국이 확실히 강한 것 같아요.
    이언 플레밍은 영국 쪽 전통과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 쪽 하드보일드 전통이 믹스 된 듯 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소설 본드는 상당히 비장하잖아요.^^

    작년에 나온 BBC의 셜록 상당히 볼만 하더군요.
    그런데 약간 퀴어 같은 느낌이...
    참, 그리고 확실히 다우니 주녀의 셜록보다는 확실히 괜찮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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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제 생각엔 플레밍이 웨스턴, 히치콕 스릴러 등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플레밍이 본드 시리즈를 TV, 영화로 옮기려 무던히 노력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저도 BBC의 셜록이 다우니 주니어의 영화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인데도 별로 재미없었다는 것밖에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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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흥미진진한 글이네요 ㅎㅎㅎ
    오타난 것은 정말 대박이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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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한 권만 사도 될 걸 두 권 사게 됐죠.
    역시 싸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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