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6일 목요일

데이빗 이그내시어스의 '인크리먼트', 영화로도 성공할까?

몇 년전 '바디 오브 라이스(Body of Lies)'라는 스파이 소설을 읽은 이후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칼럼니스트, 데이빗 이그내시어스(David Ignatius)의 소설엔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레노나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이었지만,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009년 출간된 이그내시어스의 새로운 스파이 소설을 집어들었다.

제목은 '인크리먼트(The Increment)'.

2009년 하드커버판으로 나왔을 때 바로 구입하지 않았던 책이다. 읽지 않은 책들이 많이 밀려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썩 내키지도 않았다.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라니까 다소 흥미가 끌리긴 했지만, '바디 오브 라이스'로 실망했던 기억 때문이었는지 그저 집었다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서점에 갔다가 '인크리먼트'가 페이퍼백판으로 나온 것을 보고 사왔다. 읽어야 할 책들은 여전히 밀려있었지만, 페이퍼백판으로 나오면서 책의 가격도 많이 떨어졌으니 '이제 살 때가 왔구나' 싶었다.



자, 그렇다면 스토리부터 살짝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인크리먼트'는 핵무기 개발 연구를 하는 이란의 젊은 과학자가 느닷없이 인터넷을 통해 CIA에 무기개발 현황을 흘리면서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CIA의 이란 담당 책임자 해리 패퍼스. 패퍼스는 문제의 이란 과학자를 망명시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캐려 하지만, 백악관과 네오콘은 더 시간낭비할 것 없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이란을 공격하고 보자는 식으로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패퍼스는 영국 SIS의 도움을 빌어 미국 정부와 CIA 몰래 위험에 빠진 이란 과학자를 구출함과 동시에 전쟁발발을 막을 방법을 찾게 된다.

그렇다. '인크리먼트는 네오콘 비판에 포인트를 맞춘 소설이었다. 덮어놓고 "폭격하고 보자"고만 하는 네오콘 스테레오타잎에다 주인공 해리 패퍼스의 아들이 이라크에서 전사한 것으로 설정한 것 정도만 봐도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폭격만 주장하는 네오콘 스테레오타입'을 보며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동원할 방법이 이렇게 진부하고 유치한 것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도 아닌데 이렇게 간지러워서야 되겠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전체적인 완성도는 '바디 오브 라이스'보다 높았다. 적어도 이번엔 '바디 오브 라이스'에서처럼 부부사이에 벌어지는 관심없는 공방전을 읽어야만 했던 짜증스러움은 없었으니까. 패퍼스가 미국의 네오콘과 대립하는 뻔할 뻔자 파트도 짜증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부부싸움 얘기보다는 참을 만 했다.

여기에서 이그내시어스가 한가지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다. 억지로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어내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이그내시어스가 중동문제와 CIA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칼럼니스트라지만, 실력있는 드라마 작가는 아니다. 그는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잘 어울려 보인다. 그러므로 굳이 픽션을 쓰겠다면 논픽션처럼 쓰는 게 읽는 사람들을 덜 피곤하게 만들 것이다. 머릿속에서 영화나 TV 시리즈를 생각하면서 자꾸 유치한 소프 오페라(Soap Opera)를 만들려 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그내시어스의 소설을 멀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신선도다. '인크리먼트'는 다니엘 실바(Daniel Silva)의 '메신저(The Messenger)'와 톰 클랜시(Tom Clancy)의 잭 라이언 시리즈,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러시아 하우스(Russia House)' 등을 합쳐놓은 듯 했을 뿐 참신해 보이지 않았다. 스파이 소설이 다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지만, 이그내시어스의 '인크리먼트'는 책을 읽는 도중에 다른 스파이 소설들이 자꾸 떠오를 정도였다.

제일 먼저 떠오른 소설은 다니엘 실바의 '메신저'였다.

이 소설과의 공통점은 여러 명으로 구성된 특수요원 팀이 작전을 벌인다는 점이다. 차이가 있다면, '메신저'에선 이스라엘 모사드 팀이고, '인크리먼트'에선 영국 SAS 요원들이라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난 건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시리즈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크리먼트'의 주인공, 해리 패퍼스가 필드 에이전트가 아니라 잭 라이언과 비슷한 CIA 애널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크리먼트'가 폴리티컬 스릴러 성격을 띄면서 'Clear and Present Danger'와 겹치는 부분도 있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톰 클랜시의 '레드 래빗(Red Rabbit)'과도 겹치는 데가 있었다. '미국 CIA가 영국 SIS와 함께 망명자 구출 작전을 한다'는 스토리라인이다.

책은 2000년대초에 출판되었으나 8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삼은 클랜시의 스파이 소설 '레드 래빗'은 잭 라이언이 영국 SIS와 협조해 소련 망명자를 구출한다는 줄거리다. 여기서 시대를 2000년대로 바꾸고, 소련 망명자를 이란 과학자로 바꾸면 이그내시어스의 '인크리먼트'와 아주 비슷해 진다.



이란 과학자?

'과학자가 기밀정보를 흘린다'는 스토리라인이라고 하면 바로 생각나는 스파이 소설이 하나 있다.

그렇다. 존 르 카레의 '러시아 하우스'다. '러시아 하우스'는 지난 1990년 숀 코네리(Sean Connery)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이쯤 되니까 제목을 'The Increment'에서 'The Recycler'로 바꿔야 할 것 같지 않수?

그렇다. '인크리먼트'는 그렇고 그런 소설이었다. '바디 오브 라이스'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으며, 읽는 도중에 '지루하다', '더이상 못 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은 뒤 만족감이 없었다. 스토리는 별다를 게 없었고, 나름 긴박감이 흐르는 파트도 수많은 스릴러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막판엔 약간의 미스테리와 반전을 시도했으나, 역시 효과가 없었다. 스토리라인이 워낙 뻔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만 파악해도 어떠한 결말이 나올 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SEE-I-TOLD-YOU-SO' 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다 보니 아직도 이그내시어스가 노련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될 계획이냐고?

그렇다. 디즈니의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가 이그내시어스의 '인크리먼트'를 영화화할 계획이라고 몇 해 전 버라이어티가 보도한 바 있다. 주로 패밀리 영화를 만드는 디즈니와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같지만, '캐리비언의 해적들(The Pirates of Caribbean)' 시리즈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가 '인크리먼트'를 영화로 제작할 계획인 듯 하다. 작년엔 브룩하이머의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가 개봉했었는데, 아무래도 이 양반이 이란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인크리먼트'는 '바디 오브 라이스'를 영화로 옮기면서 부부싸움 파트를 싹 날려버렸던 것처럼 큰 손질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디 오브 라이스'를 영화로만 본 사람들은 '무슨 부부싸움 파트냐'고 하겠지만, 각색 과정에서 그 파트를 누락시킨 덕분에 영화에 나오지 않은 것일 뿐 원작소설엔 짜증나는 부부싸움 파트가 있다. '인크리먼트'가 그나마 '바디 오브 라이스'보다 나은 점은 통째로 빼버려야 할 만큼 문제가 있는 파트가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영화로 옮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다. 최근들어 스파이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대부분 액션 중심의 영화들이지 스토리 중심의 진짜로 스파이 스토리 다운 스파이 영화는 없었다. 너무 진지하고, 현실정치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영화들은 관객들이 꺼리는 경향도 있다. 그러므로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주인공의 네오콘 비판'이라는 설정이 오히려 "또 이런 얘기냐"는 식상한 반응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런데 '인크리먼트'를 영화로 옮겨서 흥행성공작을 만들 수 있겠는지 모르겠다. 액션 씬은 사실상 없을 것이며, 해리 패퍼스가 영국의 SIS와 함께 벌이는 이란 과학자 망명작전도 나름 흥미진진하게 각색할 수는 있겠지만 전개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따분해질 수 있다.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유명한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가 손을 댄다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엔 흥행실패작들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혹시 제법 괜찮은 스파이 스릴러가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브룩하이머가 블록버스터 급 스파이 액션영화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인크리먼트'는 왠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아직까지는 영화 제작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2개 :

  1. 무쟈게 흥미있겠는데요? ㅎㅎㅎ
    근데, 저 표지 해리슨 포드 닮았는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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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해리슨 포드 맞습니다.
    90년대초/중반에 개봉했던 톰 클랜시 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인데요,
    한국어 제목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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