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만 놓고 스토리를 예상해 봤을 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행세를 한다'는 단순한 줄거리의 영화일 수도 있어 보였고, 이것만으로는 우스꽝스러워질 수도 있는 만큼 '백업 플랜'을 마련해둔 영화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시 말하자면, 요즘에 흔히 찾아보기 힘들 만큼 처참할 정도로 유치한 영화이거나 그보다 조금 나은 영화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는 얘기다.
그렇다. '언노운' 트레일러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떤 성격의 영화인지, 제작진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대충 감이 잡혔지만, 깔끔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스릴러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개봉을 했으니 한 번 가서 보기로 했다.
그럼 '언노운'은 어떤 영화였을까? 처참할 정도로 유치한 영화였을까? 아니면 그보다는 조금 나은 영화였을까?
영화를 보고 나니 후자에 해당되더라. 하지만 그런데도 개운치 않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플롯에 구멍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영화 '언노운'은 마틴 해리스 박사(리암 니슨) 부부가 바이오테크 서밋에 참석차 베를린 공항에 내리면서 시작한다. 해리스 부부는 예약해 놓은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잡아 짐을 싣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서류 가방 하나를 빠뜨린다. 호텔에 도착해 택시에서 가방을 내리면서 서류 가방을 공항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 차린 해리스 박사는 첵인하러 호텔 로비로 들어선 아내 엘리자베스(재뉴어리 존스)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또다른 택시를 바로 잡아 타고 공항으로 되돌아 간다.
그러나 문제의 택시가 사고를 당한다. 강에 빠진 것이다.
해리스 박사는 보스니아 출신 불법 체류자인 택시 운전사 지나(다이앤 크루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사고 당시 입은 머리 부상으로 나흘 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해리스 박사는 머리 부상으로 기억이 오락가락하지만 호텔에 아내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간다. 그러나 해리스는 호텔에서 기절초풍할 광경을 목격한다. 전혀 모르는 남자(아이단 퀸)가 마틴 해리스 박사를 사칭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내, 엘리자베스까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해리스는 자신이 진짜 마틴 해리스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할 신분증 등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리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페셔널 킬러들에 쫓기는 신세까지 된다. 생전 처음 본 남자가 마틴 해리스라며 자신을 사칭하고 있고, 몇 년간 함께 생활한 그의 아내까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막히는 상황에 처했는데,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이젠 킬러들까지 따라다니는 것이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되면 "Who you gonna call?"
"TAXI DRIVER!"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리스가 서류 가방을 찾아오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 '우발적인 사고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음모인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발적인 사고라면, 어쩌다가 가짜 해리스가 나타나고 그의 와이프가 진짜 해리스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인지가 미스테리다. 만약 누군가가 진짜 해리스를 가짜로 바꿔치기 하기 위해 꾸민 음모라면, 진작에 진짜 해리스를 죽였어야지 상식적으로 맞아 떨어지지 않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자동차 사고를 가장해 살해하려 했다고 쳐도, 해리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와 "내가 진짜 마틴 해리스다"라며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 그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미심적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플롯에 구멍이 많았다.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피해갔지만 마치 기관총에 맞은 듯 플롯에 구멍이 벌집처럼 나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긴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줄기만 대충 정리되었을 뿐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다. '언노운'은 생각을 하면서 봐서는 안 되는 영화다. 그저 '테이큰(Taken)', '프롬 파리 위드 러브(From Paris With Love)' 등의 룩 베송(Luc Besson) 영화들과 맷 데이먼(Matt Damon)' 주연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를 흉내내는 것에만 열중한 스릴러라는 선에서 만족하고 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줄거리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진지하게 보기 힘든 영화다.
사실 '언노운'은 룩 베송 영화들과 제이슨 본 시리즈를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꼽아보자. 해리스가 물에 빠지며 기억을 잃는 부분은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 남녀가 함께 탄 차가 강에 빠지는 씬은 '본 수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프로페셔널 킬러들에 쫓기는 부분은 제이슨 본 시리즈 전체와 겹친다. 또, 리암 니슨이 연기한 '언노운'의 마틴 해리스는 니슨이 룩 베송 영화 '테이큰'에서 맡았던 캐릭터와 이미지가 비슷했고, 테러리스트 암살 플롯이 나오는 부분은 베송의 또다른 영화 '프롬 파리 위드 러브'와 겹쳐졌다. '테이큰'과 '프롬 파리 위드 러브'에 살짝 깔려있었던 반이민, 안티-아랍 정서를 '언노운'에서 뒤집은 것도 의도한 것으로 보였다. 이렇다 보니 '언노운'은 룩 베송의 최신 영화들과 세 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이미 본 사람들에겐 새로울 게 하나도 없어 보였으며, 줄거리는 다른 스릴러 영화들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들을 줄레줄레 연결시켜 놓은 게 전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말이 좀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줄기차게 들었지만, 멋진 리암 니슨과 언제 봐도 섹시한 다이앤 크루거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인지 마지막까지 영화를 보는 덴 그럭저럭 별 지장이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출연배우들의 덕은 제대로 본 듯 했다. 그러나 영화는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간신히 평균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상영 도중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고픈 충동이 일 정도로 유치찬란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잘 만든 스릴러 또한 아니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베를린 전경을 배경으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이 영화가 6~70년대 무디(Moody)한 분위기의 스파이 스릴러였더라면 더 멋졌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리암 니슨, 다이앤 크루거 주연의 영화라면 암울한 분위기의 스파이 영화가 더욱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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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저도 이번 위크엔드에 가서 볼 계획입니다.
답글삭제정말 지난 여름의 "나잇 앤 데이," "솔트(이것도 좀 so~ so~ 였지만 그런데로 괜찮았던) 이후에 제대로 된 스릴러가 없군요.
결국 내년 11월까지 기다려야 하는군요.~
그래도 워낙 볼 영화가 없으니 주말에 극장으로 가긴 가야겠습니다.~
제 생각에도 요새 스릴러 중에 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별 것 없으면서 퍼즐, 반전, 미스테리 등으로 복잡한 것처럼 만든 영화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쟈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았더라면 '언노운'도 골든글로브 노미네이트됐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맞습니다. 요새 볼 영화 진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제이슨 본 시리즈를 갖다 놓았네요.
답글삭제그리고, 다른 영화들도 다 ㅎㅎㅎ
줄거리 적으신 걸 보니, 구미가 안 땡기는 걸요?
본 시리즈를 오히려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ㅋㅋㅋ
여러 영화들을 따라한 것도 문제지만,
답글삭제스토리가 워낙 말이 안 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스릴러 영화 스토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미스테리, 반전으로 장난을 칠 거면 똑바로 해야겠죠.
아니면 그저 때려부수는 액션영화를 만들던가...ㅋㅋㅋ
러브액츄얼리와 테이큰에서 멋진 연기에 팬이 되어 버렸는데..
답글삭제이번 영화는 좀 살짝 부족한가 보네요..^^;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는 식의 스토리라인이 자꾸 거슬리더라구요.
답글삭제억지, 우연이 너무 많고, 나중엔 좀 엉뚱해집니다.
이런 걸 다 무시하고 보기 힘든 스타일의 영화였는데...
어둠의 세계에 뜨면 봐야겠네요.
답글삭제열심히 글 올려주신거 보니까 대단합니다~
전 영화볼 때 아무생각없이 봐서리
리뷰 쓰시는 분들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저의 막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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