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1일 화요일

'행오버 2', 개성 만점 캐릭터들이 살렸다

누구에게나 '같이 술 먹기 싫은 사람' 블랙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술을 너무 권하는 인간, 술 한 번 먹자고 먼저 불러놓고 계산할 때 되면 사라지는 인간, 술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 꼭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간, 술에 취하면 야수로 돌변하는 인간 등이 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곤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과의 술자리는 반드시 피해야만 할 것 같은 인간들이 있다. 필(브래들리 쿠퍼), 스투(에드 헬름스), 그리고 앨런(잭 갤리피어내키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기피 대상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과 같이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어지면서 오만가지 사건에 휘말릴 각오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광란의 파티 다음날 행오버(숙취)로 고생하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그 다음 날 평범한 행오버가 아닌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하면 오래 생각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돌아왔다. 또 회까닥해서 광란의 술판을 벌이며 온갖 사고를 치려고 말이다.

필, 스투, 앨런은 지난 2009년 개봉한 '행오버(The Hangover)' 1탄에선 미국 라스 베가스에서 소동을 부렸다. 그런데 이제부턴 국제적으로 놀기로 했는지, 후속편 '행오버 2(The Hangover Part II)'에선 태국의 방콕으로 장소를 옮겼다. 술먹다 필름 끊기기 좋은 도시는 방콕보다 서울인 것 같지만 필, 스투, 앨런은 방콕을 택했다.



그렇다면 2탄에선 무슨 사건에 휘말리냐고?

이번엔 필과 앨런이 스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에 갔다가 또다시 필름이 끊어지는 광란의 파티를 벌인 뒤 다시 한 번 험악한 행오버에 시달리게 된다. 2년 전 라스 베가스에서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고를 치고 만다.

왠지 1탄과 많이 비슷한 것 같다고?

그렇다. '행오버 2'는 1탄을 본 사람들에겐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영화다.

세 명의 주인공들이 또다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필름이 끊어지고, 말도 안 될 정도의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처하게 된다는 설정까지는 문제될 게 없었다. '행오버' 시리즈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2탄의 스토리와 패턴이 1탄과 99.9% 겹친다는 점이다. 장소만 라스 베가스에서 방콕으로 바뀌었을 뿐 '친구의 총각파티(Bachelor Party)가 잘못 되면서 누군가가 깜쪽같이 사라진다'는 플롯을 비롯해 영화의 거의 전체가 1탄의 반복으로 채워졌다. 속편이라기 보다 리메이크에 가깝게 보일 정도였다.

결국 남는 것이라곤 '이번엔 또 이 친구들이 필름이 끊어져서 무슨 짓을 했느냐' 하나가 전부였다. 이것 하나가 볼거리였던 것이다.

과연 세 남자들의 '어젯밤에 생긴 일' 하나만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을까?

영화를 만들어 놓은 걸 보니, 적어도 제작진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영화관 내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이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브래들리 쿠퍼)이 스크린에 모습을 나타내자 마자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행오버 2'를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 대다수가 지난 1탄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필의 얼굴을 보자 마자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행오버'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Pretty Boy' 필 뿐만 아니라 'Nerdy-but-Devilish' 스투, 그리고 살짝 맛이 간 듯한 앨런으로 구성된 '행오버' 시리즈의 메인 캐릭터들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매력이 있었다. 특히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앨런(잭 갤리피어내키스)은 예술 수준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제외한 나머지는 엉망에 가까웠다. 1탄과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전체적인 줄거리, 신선도, 완성도 등 여러가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형편없는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볼 만 했다. 스토리도 뻔하고, 싱겁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마구 밀려왔는데도 왠지 싫지 않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이런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가끔 있는데, '행오버 2'가 그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한심한 영화를 볼 만한 영화로 둔갑시켰을까?

바로 캐릭터다. 볼 게 하나도 없는 영화를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살려낸 것이다. 영화가 여러 모로 실망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얼굴만 봐도 웃음이 솟구치게 하는 캐릭터들이 관객들을 웃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모든 조크와 유머가 수준급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코메디 영화가 관객들을 웃기는 데 성공했으면 유머 수준, 완성도 같은 것을 떠나서 일단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게 있다. 술에 취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실수와 사고를 저질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영화에서처럼 완전히 필름히 끊긴 상태에서 온갖 황당한 짓들을 저지르고 다니는 건 현실적으로 약간 힘든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다들 이런 과거사에 대해 말을 하기 싫어하지만 캐보기 시작하면 몇 건 이상씩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므로 남의 얘기같지 않은 매우 친근한 소재의 영화라는 점 또한 '행오버'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로 꼽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꼽자면, 사운드트랙이 있다. '행오버' 1탄 사운드트랙도 제법 들을 만 했는데, 2탄에도 괜찮은 곡들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하나 꼽자면, 스피드 보트 씬에서 흘러나왔던 Wolfmother의 'Love Train'.



Wolfmother의 곡은 '행오버' 1탄에도 사용되었는데 2탄에도 이들의 곡이 또다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행오버' 시리즈 제작진이 Wolfmother의 곡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Wolfmother의 'Love Train'을 한 번 들어보자.


여기까지는 다 좋았다고 하자. 하지만 똑같은 탬플릿에 맞춰 재탕, 삼탕 하는 게 언제까지 통하겠는지 의심스러웠다. 장소만 바꿔가면서 '술먹고 필름끊겨 사고친다'는 탬플릿에 맞춰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물론 2탄까지는 먹혀든 듯 했으며, 여전히 재미있는 소잿감인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번 2탄에서 한 것처럼 무작정 반복만을 거듭해선 인기있는 코메디 시리즈로 이어지기 힘들 것 같았다.

잠깐! 지금 3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그렇다. 3탄 제작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술먹고 회까닥한 남자들' 시리즈가 어디까지 계속될 지 현재로썬 알 수 없지만 적어도 3탄까지는 무난해 보인다.

솔직히 별로 기대가 되는 시리즈는 아니지만 3탄이 나오면 또 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3탄에선 변화를 좀 줄 생각을 해야지 이번 2탄에서 했던 것처럼 1탄을 반복하는 데서 그치면 '행오버' 시리즈는 3탄으로 '행업'하게 될 것이다.

댓글 4개 :

  1. 댓글 입력하려는데, 바뀌었네요...
    바꾸신 건가요 이렇게?
    아님 댓글 폼이 이렇게 바뀌었나... ㅎㅎㅎ
    대부분 공감이 갔던 모양입니다. 관객들 대부분요...
    또 3탄까지 억지설정은... 말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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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갑자기 박스가 안 뜨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다른 폼으로 바꿔놓고 뭐가 문제인지 확인했더랬습니다...^^
    이전에도 임베디드 코멘트 폼이 속을 썩였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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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공본드님, 행오버2 재미있겠는데요. 재미있고 즐거운 6월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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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 만 하더라구요...^^

    컥, 그러고 보니 벌써 6월이군요.
    루시퍼님도 멋진 6월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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