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일 수요일

'유어 아이스 온리' 30주년: 저평가 받는 본드걸 린 할리 존슨

많은 사람들은 1981년 제임스 본드 영화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에 나왔던 본드걸 비비 달을 저평가한다. 비비가 저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본드걸들과는 달리 명랑한 10대 소녀였기 때문에 007 시리즈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드걸'이라고 하면 '쭉빵섹시'가 떠오르는데 피켜 스케이팅을 하는 10대 말괄량이 소녀가 무슨 얼어죽을 본드걸이냐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틀렸다.

사실 비비 달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들에 나온 여러 본드걸들을 하나로 합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플레밍의 소설엔 비비 달이라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지만, 그가 남긴 여러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에 나왔던 여러 본드걸 캐릭터들의 특징을 한데 모은 캐릭터가 바로 비비 달이라는 것이다.

그 몇 가지 증거를 찾아보기로 하자.

틴에이저 본드걸은 플레밍의 소설 '닥터노(Dr. No)'에 나온다. 그렇다. 허니 라이더가 10대 소녀였다. 많은 영화팬들은 '본드걸 허니 라이더'라고 하면 영화에서 라이더 역을 맡았던 농염한 우슐라 안드레스(Ursula Andress)를 떠올리지만, 원작에서의 허니 라이더는 블론드의 10대 소녀였다. 오죽했으면 본드가 라이더에게 "아직도 숫처녀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유어 아이스 온리'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비비 달이 본드의 호텔 침대에 누워 본드가 오기를 기다리는 씬이 있다. 그렇다. 이것은 1963년 제임스 본드 영화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의 오마쥬였다.

[이미지: '유어 이아스 온리'의 비비 달 (위), '위기일발'의 타티아나 (아래)']




영화 '유어 아이스 온리'의 호텔 침실 씬에서 틴에이저 소녀 비비가 본드를 유혹하려 하자 본드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이것 또한 플레밍의 원작소설 '닥터노'를 참고한 것이다. 소설 '닥터노'엔 겉으론 성숙해 보여도 나이는 아직 1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허니 라이더가 본드를 유혹하려 하자 본드가 난감해 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피겨 스케이팅 선수는?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기는 본드걸이 '골드핑거(Goldfinger)' 등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과 영화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본드걸이 피겨 스케이터인 경우는 '유어 아이스 온리'의 비비 달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007 제작진은 왜 피켜 스케이터 본드걸을 등장시킨 것일까?

1981년 개봉한 '유어 아이스 온리'는 1980년 미국 뉴욕 주 레이크 플래시드(Lake Placid)에서 열렸던 제 13회 동계 올림픽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영화다. 007 제작진이 동계 올림픽의 흥분과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아마도 아이스하키 결승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1980년 동계 올림픽은 미국 아이스하키 팀이 금메달 유력 후보였던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미라클 온 아이스(Miracle on Ice)'로 유명한 올림픽이다.

007 제작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히는 스키 체이스 씬을 195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던 이탈리아의 코르티나(Cortina d'Ampezzo)에서 촬영했다. 제작진은 이곳에서 스키 점프, 밥슬레이, 바이애슬론, 아이스하키 등 여러 가지 동계 올림픽 종목들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동계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종목은 무엇일까?

바로 피겨 스케이팅이다. 그러므로 동계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종목인 여자 피켜 스케이팅 선수를 본드걸로 등장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레밍의 소설과 영화 시리즈에 나온 본드걸 중에서 피켜 스케이터에 가장 근접한 캐릭터가 없을까?

굳이 찾아보자면, 아무래도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의 타니아나가 될 듯 하다. 플레밍의 소설에 의하면, 타티아나는 레닌그라드에 있는 발레 학교를 다녔는데 키가 너무 자라는 바람에 그만둔 것으로 나온다.

물론 발레와 피켜 스케이팅은 크게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비 달에서 타티아나의 오마쥬를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을 보면, '유어 아이스 온리'의 비비 달은 옛 전공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린 타티아나가 피켜 스케이터로 환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 싶다.

그렇다면 영화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비비 달을 연기한 여배우는 누구일까?



바로 린 할리 존슨(Lynn-Holly Johnson)이다. 피겨 스케이터에서 영화배우로 전향한 미국 여배우 린 할리 존슨은 유명한 70년대 스포츠 멜로 영화 '아이스 캐슬 (Ice Castle)'로 배우 데뷔를 했으며, 로저 무어 주연의 1981년 제임스 본드 영화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피겨 스케이터 본드걸, 비비 달 역을 맡았다.

댓글 4개 :

  1. 영화에 나온 비비 달도 상당히 앳되 보이네요.
    실제로도 선수였었군요... ㅎㅎㅎ
    81년작이니, 30년이네요 딱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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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어 아이즈 온리" 참 재밌게 봤던 기억이...
    오공본드님 포스팅 보니 확실히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본드 걸로 나올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군요.
    그나저나 요즘 카르트 블랑쉬 기다리고 있는데 참 시간이 더디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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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EN
    린 할리 존슨이 58년생이니까 저 때 22세쯤 되었겠군요.
    저, 저도 그 또래였을 땐 예뻤습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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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J
    로저 무어가 찍은 7편의 007 영화 중 단연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어 아저씨가 10년만 젊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

    전 그 카르트 블랑쉬를 영국판으로 주문 넣으려다 말았습니다.
    가만 생각하니까 그게 여기에 도착할 즈음 되면 북미판이 나왔겠더라구요.
    뭐 익스프레스로 부치라고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픈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저도 기다려지긴 합니다만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어서 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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