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레이커'는 '스타 워즈(Star Wars)' 시리즈의 성공에 자극받은 007 제작진이 만들어낸 엉뚱한 제임스 본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도 '문레이커'는 흥행엔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매번 이런 식으로 만들 순 없었다. 제임스 본드가 원래 스페이스 셔틀을 타고 우주에 나가 광선총을 쏘며 전투를 벌이는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 시리즈가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터무니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고정 팬들이 떨어져나갈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문레이커'까지 합해 모두 네 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출연했던 영국 영화배우 로저 무어(Roger Moore)까지 007 시리즈를 떠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미 50대 초반이었던 로저 무어는 '문레이커'를 마지막으로 제임스 본드 역을 떠날 생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007 제작진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새로운 얼굴 물색에 나섰으며, 우주 여행까지 했던 제임스 본드를 다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의 캐릭터로 되돌려놓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배우와 함께 플레밍의 원작으로 되돌아가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배우 교체는 없었다. 로저 무어가 다시 007 시리즈로 돌아온 덕분이다. 그러나 영화 스타일은 제임스 본드 교체를 전제로 계획했던 대로 지나치게 터무니 없어 보이던 '문레이커' 스타일에서 벗어나 보다 리얼하고 스파이 영화 냄새가 제법 풍기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 차이는 바로 비교된다.
'문레이커'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유영을 즐겼다.
그러나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아찔한 암벽에 매달려 중력과 사투를 벌인다.
Welcome back to the Earth, Double-O dude!
이와 함께 '유어 아이스 온리'에선 온갖 터무니 없어 보이는 가젯(Gadget)들도 사라졌다.
당장 '본드카'에서부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본드가 흰색 스포츠카 로터스 터보(Lotus Turbo)를 운전하는 씬에선 '아, 이번 영화에도 온갖 특수장치로 가득한 본드카가 나오는구나' 싶었다. '유어 아이스 온리'에 나온 로터스 터보는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에서 잠수정으로 변신했던 로터스 에프스리(Lotus Esprit)와는 다른 모델이었지만, 그 때 그 본드카를 연상시키기에 딱 알맞은 자동차였다.
그러나 본드의 로터스 터보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았다. 악당 중 하나가 잠겨있는 로터스의 운전석 문을 열려고 하다가 유리를 깨자 그냥 폭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이번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과거와 같은 스페셜한 본드카가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번 영화는 리얼한 스타일의 액션 스릴러로 돌아간 만큼 '버튼을 누르면 미사일이 발사되는 본드카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 대신 본드가 선택한 자동차는 초라해 보이는 노란색 씨트로엥(Citroen 2CV).
당시 기준으로 초현대식이었던 로터스 터보가 폭발해 버리자 본드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노란색 씨트로엥을 타고 추격하는 적들을 피해 도주한다. '골드핑거(Goldfinger)',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처럼 본드가 여러 가지 특수 장치들이 달려있는 고급 스포츠카를 운전하면서 적들을 여유있게 무찌르던 데서 벗어나 초라한 씨트로엥을 타고 위태롭게 보이는 추격전을 벌이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유어 아이스 온리'의 씨트로엥 카 체이스 씬은 007 시리즈 최고의 카 체이스 씬 중 하나로 꼽힌다.
이어지는 스키 체이스 씬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본드는 또다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다. 핸드건도 잃어버리고, 특수 장비는 고사하고 스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추격해오는 적들을 피해 위태롭게 보이는 추격전을 벌인다.
이전 영화들에선 제임스 본드가 위태로운 상황에 절대로 처하지 않을 것 같은 수퍼히어로와 같은 캐릭터였지만 '유어 아이스 온리'에선 여러 불리한 조건 하에 위태롭게 위기를 빠져나가는 나름 리얼한 캐릭터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로저 무어는 격렬한 격투 씬을 보여주진 않았다.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는 가젯 의존도가 높은 소프트한 캐릭터로 인식되었는데, 여러모로 분위기가 달라진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도 이를 바꿔놓을 정도의 피지컬한 액션 씬을 보여주지 않았다. 무어가 당시에 이미 50대였으므로 몸으로 때우는 격렬한 액션 씬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여러 종류의 아슬아슬하고 익사이팅한 체이스 씬이 있었다. 50대의 중년 제임스 본드가 피지컬한 액션에 부적합해 보이자 스릴넘치는 스턴트로 대신한 것이다.
최근엔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과거의 가젯 위주에서 벗어나 리얼한 액션 위주로 바뀌었다. 젊은 크레이그는 몸으로 때우는 피지컬한 액션도 소화하고 있으며, 가젯이라고는 핸드폰을 제외하곤 별다른 게 아직 등장한 바 없으며, 특수 장치로 가득한 본드카도 아직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본드에 특수 장치들을 제공하는 Q도 아직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 투명 자동차까지 나왔던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절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는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유영을 하던 제임스 본드가 추락사를 면하기 위해 암벽에 아슬아슬하에 매달리는 쪽으로 바뀐 것과 같은 맥락이다. 007 시리즈는 지난 60년대부터 코믹북 판타지 어드벤쳐 스타일로 가다가 다시 플레밍의 원작소설 스타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해오고 있다.
"For Your Eyes Only"는 전체적인 시리즈에서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Diamonds Are Forever"에서 맛이 가기 시작해서 "Moonraker"에서 완전히 망가졌던 시리즈가 겨우 방향을 다시 잡았던것 같습니다.
주제곡도 좋았고, 본드 걸도 괜찮았고, 악당도 상당히 현실적이었고...
로저 무어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가장 큰 약점은 로저 무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로저 무어에게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코믹 북 캐릭터 제임스 본드로만 기억될뻔 했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나마 본드 다운 본드로 기억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로저 무어 시대 영화를 보면서 늘 느끼는 건 정말 액션연기는 안습인 것 같습니다.
제작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겠지만 차라리 달튼이 이때부터 역할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조금 아쉽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로저 무어 안티는 아닙니다~^^
휴~ 이제 좀 로딩이 빠르네요 ㅋㅋㅋ
답글삭제그 사이 구글이 수정을 했나 보군요. ㅎㅎㅎ
저 스키씬 기억남둥~
역시 스파이다워야 007...
@CJ:
답글삭제사실 유어 아이스 온리는 로저 무어의 영화로 준비된 영화가 아니었죠.
그러니 그 때부터 달튼이 맡았더라도 문제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달튼으로 바뀌었다면 옥토퍼시, 뷰투어킬로 뒷걸음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때 교체됐다면 관객들이 새로운 본드에 적응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유어 아이스 온리는 사실상 여왕폐하의 007 파트2였는데,
배우와 스타일을 모두 바꾸지 않고 50%만 바꾼 게 안전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달튼도 안전 루트를 택했다고 봅니다.
리빙 데이라이트도 사실은 달튼을 위해 준비된 영화는 아니었죠.
만약 달튼의 데뷔작이 라이센스 투 킬이었다면...
난리났을 겁니다...^^
2000년대에 와선 다니엘 크레이그가 해냈지만 80년대에 가능했겠는지 모르겠거든요.
@KEN:
답글삭제저기 옆에 있는 RECENT COMMENT 위젯박스를 눈여겨 보세요.
가끔씩 글자 수가 불었다 줄었다 합니다.
글자 수가 많을 때가 정상인데요, 이 때엔 따옴표가 깨집니다.
그런데 글자 수가 줄어들면 따옴표가 안 깨지더라구요.
RECENT COMMENT가 원인은 아닌 것 같지만 요새 뭐가 좀 어수선합니다...^^
아, 저 영화를 보셨군요...^^
그렇죠. 007 시리즈는 뭐 스파이 영화라 하긴 힘들어도 그쪽 냄새가 좀 나야 그럴싸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