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FOX의 새로운 TV 시리즈 '테라 노바(Terra Nova)'다.
우선 줄거리부터 살짝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시대 배경은 2149년.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필터가 달린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호흡을 하기 곤란한 세상이 됐다. 뿐만 아니라 자녀는 단 2명만 낳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졌으며, 이를 어길 경우 법적 처벌을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 그리 살기 좋은 미래는 아니다. 그래서 인지, 2149년 사람들은 8천5백만년 전 세계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타게이트'에서 본 것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장치를 이용해 공룡들이 돌아다니던 시절로 '이민'을 가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바로 이것이 '테라 노바 프로젝트'다.
8천5백만년 전 세계의 정착촌, 테라 노바는 겉으로 보기엔 자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였으나 영화 '아바타'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전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정글에 지은 정착촌은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의 달마빌(Dharmaville)의풍경과도 매우 흡사해 보였다.
이러한 테라 노바로 새로 이주해온 가족이 있다. 바로 섀넌 가족이다.
짐(제이슨 오마라)은 전직 시카고 경찰이었으나 자녀들 둘만 낳아야 한다는 룰을 어기고 세 째를 낳았다가 수감된 신세의 사나이고,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셸리 콘)는 뛰어난 의사다. 섀넌 부부는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뒀는데, 막내 딸이 '불법'이다.
수감 중인 짐을 면회온 엘리자베스는 '테라 노바 프로젝트'에 선발돼 가족을 데리고 이주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불법'인 막내 딸은 데리고 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짐을 탈옥시켜 짐과 막내 딸까지 모두 다 함께 테라 노바로 이주한다는 계획을 짠다. 테라 노바로 일단 한 번 가면 다시 2149년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편도 여행'이므로 어떻게든 테라 노바로 가기만 하면 그걸로 성공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149년 세계를 탈출해 테라 노바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섀년 가족은 무공해의 평화로운 새 환경에서의 삶에 적응해 간다. 그러나 인간을 공격하는 위험한 공룡들이 도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착민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는 등 생각보다 심각한 위험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시간 짜리 '테라 노바' 시리즈 프리미어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일 먼저 느낀 건 CGI가 TV 시리즈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높은 퀄리티라는 점이었다. 쟝르가 SF 판타지인 데다 공룡까지 돌아다니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만큼 CGI가 빠질 수 없는 세팅이었는데, TV 시리즈 치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비쥬얼을 과시했다. 물론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극장용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TV 시리즈에서 이 정도라면 대단한 수준이었다. 여러 해 동안 인기를 끌었던 '로스트'의 CGI 퀄리티가 90년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테라 노바'의 그것은 블록버스터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 했다.
그렇다면 '테라 노바'의 이미지를 몇 장 보기로 하자.
비쥬얼 면에선 '쥬라기 공원'이었다면 스토리와 캐릭터에선 '아바타'와 '로스트'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아바타'에 콰리치 대령으로 출연했던 영화배우 스티븐 랭(Stephen Lang)이 '테라 노바'에서 정착촌 리더, 코맨더 테일러 역을 맡았다는 점이었다. '아바타'에선 외계 식민지에서 근무하는 캐릭터로 나오더니 '테라 노바'에선 8천5백만년 전의 식민지 정착촌 리더 역을 맡았다.
'아바타'에 이어 눈에 띈 건 '로스트'의 흔적이었다.
촬영지가 비록 하와이는 아니었지만 열대 정글에 자리잡은 테라 노바 정착촌의 풍경과 테라 노바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한 식서스(Sixers)라 불리는 또다른 정착민 그룹과의 대립 등은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티가 났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편도 여행을 떠나 테라 노바에 온 정착민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새로운 직업을 갖고 생활한다는 설정부터 시작해서 정착촌 풍경에 이르기까지 '로스트'의 달마빌 사람들과 비슷한 데가 많이 보였고, 테라 노바 정착민과 식서스 간의 갈등은 비행기 추락 생존자들과 'The Others'로 불리던 달마빌 사람들과의 대립과 겹쳐졌다. 테라 노바 정착민들은 차림새가 모두 깔끔한 반면 식서스 쪽은 약간 지저분해 보이는 원주민 스타일이라는 점도 '로스트'와 비슷해 보였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SF 블록버스터라 불릴 만한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헐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테라 노바'가 과연 TV에서도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을까?
'테라 노바'는 극장용 SF 블록버스터와 '로스트'와 같은 인기 TV 시리즈에 친숙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볼거리 또한 풍부한 편이었다. 하지만 2시간 짜리 영화가 아닌 TV 시리즈로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알 것 같았다. 2시간 짜리 SF 블록버스터는 줄거리가 별 볼 일 없더라도 액션과 비쥬얼이 받쳐주면 어렵지 않게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TV 시리즈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성공하기 위해선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스토리와 미스테리가 뒷받침해줘야 할 것 같은데 과연 '테라 노바'가 비쥬얼 뿐만 아닌 스토리로도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지 확실치 않았다.
'테라 노바'를 보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너무나도 진부한 전형적인 패밀리 SF 영화 세팅이었다는 점이었다. '테라 노바'가 어떠한 스타일의 TV 시리즈인 지 금세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물론 첫 에피소드였던 만큼 수준급 비쥬얼에 감탄하면서 그럭저럭 보는 덴 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스페셜한 드라마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드라마의 세계에 푹 빠진 것 같은 게 왠지 매주마다 꼬박꼬박 챙겨 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뻔할 뻔자의 SF 시리즈라는 생각이 바로 드는 것이 왠지 금세 식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지지고 볶고. 공룡들은 수시로 인간들을 공격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노닥거리는 뻔할 뻔자 씨나리오가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리즈 프리미어 에피소드를 보고 벌써 식상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테라 노바'의 성공은 스토리가 어느 쪽으로 어떻게 흘러가느냐, 풀어야 할 미스테리가 몇 가지 눈에 띄었는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흥미로우냐 등에 달렸다. 만약 스토리와 미스테리로 매주마다 꼬박꼬박 볼 만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비쥬얼이 화려하고 수준급이더라도 이것만으로는 시청자들을 시즌 내내 붙잡아두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테라 노바'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새 시리즈였다. 캐스팅, 비쥬얼, 음악 등은 맘에 들었지만 워낙 흔해 빠지고 식상한 스타일의 SF 물로 보이는 것이 미래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친숙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SF 드라마가 과연 TV에서도 블록버스터 급 성공을 거둘 수 있을 지 앞으로 지켜보기로 하자.
'테라 노바'는 매주 월요일 저녁 8시(미국 동부시간) FOX에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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