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일 목요일

007 23탄 'SKYFALL' 본드걸도 또 총 쏘는 '액션걸'?

지난 달 007 시리즈 23탄의 공식제목과 출연진 등이 발표됐다. 금년 초부터 나돌았던 출연진 루머는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으며, 제목 'SKYFALL'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러나 영국 여배우 나오미 해리스(Naomie Harris)가 자신의 캐릭터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스는 자신의 캐릭터를 "이브라는 이름의 필드 에이전트"라고 말했다.

필드 에이전트?

해리스가 M의 여비서 머니페니 역을 맡을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는데, 오피스 여비서가 아니라 필드 에이전트 역할을 맡았다?

베레니스 말로히(왼쪽)와 나오미 해리스(오른쪽)

그렇다면 이브라는 새로운 본드걸은 어떤 캐릭터일까?

아직은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하지만 해리스가 요가와 사격 훈련을 받았으며, 한 인터뷰에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Kick Ass'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이브가 액션성이 강한 캐릭터가 아닌가 짐작된다.

그렇다면 총을 들고 설치는 '액션 본드걸'이 또 나오는 것이냐고?

현재로썬 그렇게 보인다. 나오미 해리스의 설명에 의하면 'SKYFALL'에 나오는 이브는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서 미국 여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가 맡았던 징크스와 비슷한 캐릭터로 들린다. 요가 + 사격 + Kick Ass라면 사실상 답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007 시리즈 40주년 기념작인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할리 베리가 맡았던 리딩 본드걸 징크스는 역대 최악의 본드걸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이번 영화는 이전 '다이 어나더 데이'와 톤이 다를 것이므로 지난 번처럼 지나치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등장할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액션성이 강한 본드걸이 나올 것처럼 들리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007 시리즈에서 총쏘는 액션 본드걸을 보고싶어 한단 말인가?

90년대 이후부터 007 시리즈가 과거와는 다른 여성 캐릭터를 소개하려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007 제작진이 잊어선 안 되는 것은, 액션은 제임스 본드의 몫이라는 점이다. 본드걸이 과거의 섹스인형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엔 찬성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액션 씬에 뛰어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강한 본드걸 캐릭터를 충분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와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리딩 본드걸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강하고 전문적인 본드걸을 보여주고 싶다면 '골든아이'의 나탈랴(이자벨라 스코럽코),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에바 그린)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의 쿵푸 본드걸 와이 린(양자경)이나 2002년 '다이 어나더 데이'의 징크스(할리 베리)처럼 총질, 칼질에 발길질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7 제작진은 계속해서 '액션 본드걸'에 미련을 두고 있는 듯 하다.

다시 말하지만, 'SKYFALL'은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절의 007 시리즈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날 것이므로 '액션 본드걸'이라고 해도 지난 번처럼 우스꽝스러운 코믹북 캐릭터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톤이 달라져도 우리의 007 제작진은 어떻게서든 유치한 본드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낸다. 지난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좋은 예다. 본드걸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와 어울리지도 않아 보이는 몹시 어색한 액션 씬들이 영화를 유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본드걸이 총을 들고 과하게 설치면 영화를 잡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007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며 그 취지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본드걸을 제임스 본드의 섹스토이로 일방적으로 묘사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섹스' 자체를 영화에서 걷어내면 된다. 차라리 007 시리즈를 '섹스리스'로 만드는 것이 총을 들고 어색하게 설치는 '액션 본드걸'을 바라보는 것보다 나을 듯 하다.

007 제작진은 도대체 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우면서도 쉽게 다 주지(?) 않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본드걸'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은 나오미 해리스의 캐릭터에 대한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이브가 어떠한 성격의 본드걸인지 분명하게 판단하긴 힘들다. 의외로 유치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괜찮은 본드걸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것만은 사실이라고 해야 겠다. 과연 나오미 해리스의 본드걸이 쓸데 없는 액션으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또 하나의 본드걸이 되는 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4개 :

  1.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던 리 타마호리가 다이 어나더 데이라는 희대의 쓰레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명감독으로 인정받는 샘 멘데스가 과연 졸작을 만들지 아니면 괜찮은 작품을 만들지 점점궁금해집니다.
    설마 나오미 해리스가 리딩 본드걸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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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장 궁금한 건 샘 멘데스가 007 시리즈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냐 인데요.
    벌써부터 액션이 많다/적다로 논란이 있었던 점을 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해가 부족한데 자꾸 무언가를 의식하게 되고 거기에 억지로 맞추려 하면,
    쓸데 없는 것으로 007 양념을 치려 할 수 있거든요.
    총을 들고 설치는 본드걸 캐릭터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에 전통 007 요소를 섞는 데서 실패하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LTK에선 영화가 완전히 다른 길로 가다가도 Q가 나오면 다시 본궤도로 돌아오곤 했죠.
    그러나 이번엔 젊고 낯선 Q로부터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고...
    저는 나오미 해리스 캐릭터도 이런 쪽에서 보고 있습니다.
    90년대 이후의 본드걸 중엔 총들고 설치는 본드걸이 많았으니 말이죠.
    나오미 해리스가 리딩 본드걸은 아닐 것 같지만,
    베네리스인가 하는 친구가 워낙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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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 저 빨간 옷 왠지 모르게 매력적인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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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80년대 영화 우먼 인 레드가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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