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3일 금요일

게임중독의 문제는 온라인 게임이지 게임 전체가 아니다

요즘 조선일보에서 게임의 폭력성과 중독성 문제를 크게 다루고 있다. 나도 몇 년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참 많이 했던 만큼 문제점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조선일보가 핵심을 제대로 집어내는지 관심있게 지켜봤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시원스럽게 핵심을 집어내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핵심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바로 이 기사다. 제목이 좀 이상하지만 이 기사에서 문제의 핵심 중 하나가 나온다.

게임에 빠진 아들 구하자" 아예 외국으로 유학 보낸 가정도


이 기사에서 중요한 부분은 "언제, 어디서나 게임에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인프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이지만 이를 나쁜 방향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다는 것"과 "오프라인 게임은 본인의 결심으로 게임을 끊는 게 용이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수많은 '게임 친구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게 너무 힘들어 게임을 끊기가 어렵다"는 부분이다.

'오프라인 vs 온라인' 비디오게임 파트는 내가 10년전부터 했던 얘기다.

게이머들 상당수가 현실세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게임세계에서 스트레스를 풀어보려는 생각에서 게임을 한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등 오프라인 콘솔 게임들은 모두 엔딩이 있기 때문에 게임에 빠져서 밤을 새면서 게임을 한다고 쳐도 일단 엔딩을 보면 그만이므로 부담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반면 온라인 게임은 사정이 다르다. 게임 자체보다 각지에서 접속한 다른 온라인 게이머들과 어울리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매달마다 사용료를 걷어가는 식이라서 인지 온라인 게임은 끝이 없다. 또한 정해진 범위 내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전부인 오프라인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은 다른 유저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으므로 자유도도 매우 높다. 오프라인 게임은 아무리 빠져들었다 해도 한 번 엔딩을 보고 나면 흥미가 시들해지지만, 온라인 게임은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유도가 높아 게임진행이 변화무쌍하므로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게임세계에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시작했던 게임에 자꾸 빠져들기 쉽게 돼있다. 오죽했으면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SOE)가 개발한 MMORPG '에버퀘스트(Everquest)'를 미국 게이머들이 '에버크랙(Evercrack)"이라고 마약에 비유한 적도 있었다.

온라인 게임으로 인한 자살 등 여러 사건들이 미국에서도 실제로 발생한 바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현실세계에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홀로 고립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외롭고 짜증나는 현실세계보다 게임세계를 더욱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부는 게임상에서 벌어진 일로 낙담해 자살을 택한 케이스도 있다.

어이없지만 사실이다. 지금 급하게 찾아보니 이런 기사를 찾았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서 내가 말한 사건이 이 사건인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 이런 일들이 꽤 많이 보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서 '에버퀘스트' 등을 비롯한 온라인 게임에 무조건 중독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순 없다. 온라인 게임들이 유저들을 게임중독으로 이끌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해도 멀쩡한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게임이 중독자를 만들었으냐 아니면 중독자 포텐셜이 있던 사람이 게임을 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이냐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한 사람들이 100이면 100 모두 중독되는 것이 아닌 이상 온라인 게임에만 전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곤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 상당한 원인제공을 한 것만은 분명하므로 문제와 책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게임중독은 온라인 게임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온라인 게임을 완전히 금지시킬 수도 없을 테므로 시원한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겠지만, 게임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온라인 게임에 있지 게임 전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오프라인 게임도 학생들의 공부시간을 빼앗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중독의 위험은 낮은 만큼 게임중독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프라인 게임까지 끌고 들어가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게임들은 건전한 홈 엔터테인먼트로 권장할 만하다. 간단한 비디오게임은 노인들의 치매예방에도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콘솔 게임기는 젊은 사람들에겐 사용하기에 간단하지만 노인들에겐 또다른 얘기다. 그러므로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노인들이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기 개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그렇다. 게임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어떤 게임을 어떻게 즐기느냐다. 나도 수많은 비디오게임을 했지만 아직도 멀쩡하니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콘솔용 게임은 지난 90년대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들까지 합하면 300개가 훨씬 넘는다.

아래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들 일부. 지금은 다 박스에 넣어버렸다.


그렇다면 폭력게임 문제는?

게임에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레이팅이 있다.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긴 해도 비슷비슷하다.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다.

미국에서는 적어도 2000년대 초부터 미성년자로 보이는 손님이 17세 이상 레이팅을 받은 게임을 구입하려 하면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동행한 부모/보호자 동의 하에서만 판매가 가능하게 돼있다. 대개의 경우 미국에서 게임을 판매하는 곳은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둔 게임 전문 판매점 또는 음반/DVD/전자제품 판매점 등 대형 체인점들이므로 미성년자 신분증 확인 절차는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게임매장 측이 아닌 소비자 측에서 목격됐다.

미성년 아들이 17세 이상 레이팅의 게임을 사려고 하자 게임 점원이 이를 제지하면서 동행한 그의 아버지에게 "저 게임은 어린이에 적합한 게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내 자식에게 내가 게임을 사주겠다는데 게임 점원이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냐"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 점원은 양손을 펼쳐보이며 "오케이"라고 말했다. '나는 할 일 했으니 그 다음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라는 제스쳐였다. 그들이 게임 스토어에서 나간 뒤 그 점원에게 저런 경우가 흔하냐고 묻자 "어떤 부모들은 나이 계산까지 하면서 자녀에게 적합한 게임을 사주려 노력하는 반면 게임점원이 어린이에 부적합한 게임이라고 충고를 해도 오히려 신경질을 내는 부모들도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게임 레이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문제는 게임회사나 게임 스토어 쪽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

여기까지는 오프라인 게임의 얘기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미성년자들이 17세 이상 레이팅을 받은 온라인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즐기는 것을 막는 게 쉽지 않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최후방 수비수가 제 역할을 하기가 오프라인 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나쁜 방향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다"는 기사 내용이 와 닿는다.

그렇다면 모든 게임을 전체 이용가 레이팅으로 통일하면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곤란하다. 2000년대 중반 미국의 한 리서치 회사가 게임구입에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는 연령층을 알아본 결과 29세로 나온 적이 있다. 게임을 보면 흥분하는 것은 어린이들일 지 모르지만 게임에 꾸준히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뚜렷한 수입이 있는 성인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높아지는 게이머 연령층에 맞춰 폭력수위가 높은 게임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넌센스 폭력게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액션게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폭력게임이 게이머들의 성격을 포악하게 만든다는 점은 사실이다. 한 번은 내가 아는 동생 녀석이 컴퓨터로 '카운터스트라이크(Counter Strike)'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유저가 동생 녀석의 캐릭터를 죽이더니 "FUCKER"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동생 녀석은 "이거 은근히 기분나쁘네..."라면서 모니터를 한참 노려봤다. 성격이 유들유들한 편이라서 쉽게 화를 안 내는 편이라 이것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듯 했지만 열이 받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저 게임 하는 녀석들은 매너가 원래 저 모양이냐"고 묻자 녀석은 웃으면서 "언젠가 한 번은 저 게임하다가 열받은 애들이 진짜 총을 들고 PC방에 달려가 '총싸움'을 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웃어 넘겨야지 뭐...ㅋㅋ

어떤 사람들은 '철권(Tekken)' 등과 같은 대전 격투게임을 하면서도 몹시 흥분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기 싫어서 이런 류의 대전게임은 피하곤 한다. 스포츠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겨루기와 별 상관 없는 카지노 또는 퀴즈 게임을 하면서도 흥분하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다. 비디오게임을 즐기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상대할 땐 져주는 게 상책이다. 져준 덕분에 이긴 것을 모르고 이겼다고 좋아서 온갖 육갑을 떨어도 그냥 웃어넘긴다. 그게 이긴 것이다.

그렇다. 게임이라는 것은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즐기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댓글 2개 :

  1. 사실 오프라인 게임이야 빠져봐도 며칠이죠.
    가장 문제는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대전게임이나 아니면 여럿이 같이하는 팀 플레잉 게임 인것 같습니다.^^
    예전에 일본 KOEI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하다가 거의 폐인 되었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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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다행히도(?) 그런 삼국지 같은 게임엔 별로 안 빠졌습니다.
    대신 전 일본산 RPG를 100시간 넘게 한 적은 있습니다...^^
    요샌 게임을 전혀 안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 때 그 게임음악을 들으면 불끈불끈합니다.
    맞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중독성은 온라인 게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의 특수한 재미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잘못 걸리면 돈과 시간을 무진장 소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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