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일 목요일

내가 뽑아본 존 배리의 007 시리즈 스코어 베스트

007 시리즈 음악으로 유명한 영국 음악가 존 배리(John Barry)가 2011년 1월30일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제임스 본드와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부터 인연을 맺은 존 배리는 1962년부터 1987년 사이에 모두 12편의 007 시리즈 음악을 맡으면서 '사운드 오브 제임스 본드'로 불린다.

그렇다면 25년 동안 12편의 007 시리즈 음악을 맡으면서 존 배리가 남긴 베스트 곡들을 한 번 들어보기로 하자. 워낙 멋진 곡들이 많아서 베스트를 추리는 게 쉽지 않았으나, 기억에 오래 남는 곡들만을 대충 추려봤다.

일단 첫 곡은 너무나도 유명한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로 시작하자. 제임스 본드 테마는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의 메인 타이틀 곡이다.


제임스 본드 테마는 또다른 영국 음악가 몬티 노맨(Monti Norman)이 작곡을 했으며, 존 배리는 편곡을 맡았다. 편곡 과정에서 존 배리가 사실상 제임스 본드 테마를 새로 만들다시피 했다는 설도 있으나 제임스 본드 테마의 핵심 멜로디를 몬티 노맨이 작곡한 것은 사실이며, 지금도 작곡은 몬티 노맨으로 되어있다.

연주는 존 배리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다음 곡은 '007'. 곡의 제목이 '007'이다.

이 곡은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1963)'에서 집시 캠프 배틀 씬과 본드(숀 코네리)와 타티아나(다니엘라 비앙키)가 렉터를 들고 탈출하는 씬에 나왔다.


제임스 본드의 또다른 테마, 또는 배틀 테마 용도로 존 배리가 작곡한 '007'은 '위기일발' 이후에도 '썬더볼(Thunderball)',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문레이커(Moonraker)' 등 존 배리가 스코어를 맡은 007 시리즈에 사용되었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3탄 '골드핑거(Goldfinger/1964)'에 나왔던 'Into Miami'.

메인 타이틀이 끝나고 휴가를 보내고 있는 본드(숀 코네리)가 있는 마이애미로 이동할 때 흐르는 곡이다.


너무 짧은 게 흠이지만, 60년대 스파이 영화를 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곡이다.


다음 곡도 '골드핑거' 사운드트랙에서 골랐다. 이번에도 역시 위의 곡과 마찬가지로 빅 밴드 재즈 풍이다.


'Oddjob's Pressing Engagement'는 오드잡(해롤드 사카타)이 미국인 갱스터 미스터 솔로(마틴 벤슨)를 차에 태우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씬에서 흐른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4탄 '썬더볼(Thunderball/1965)'의 'Bond Below Disco Volante'.


이 곡은 본드(숀 코네리)가 스쿠바 장비를 갖추고 에밀리오 라고(아돌포 첼리)의 요트, 디스코 볼란테 아랫 부분을 조사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다음 곡은 역시 '썬더볼'의 'Death of Fiona'.


원래 이 곡은 'Kiss Kiss Bang Bang'이라는 제목으로 존 배리가 '썬더볼'의 주제곡으로 준비했던 곡이다. 그러나 주제곡은 톰 존스(Tom Jones)가 부른 '썬더볼'로 최종 결정되었고, 'Kiss Kiss Bang Bang'은 영화의 여러 씬에 인스트루멘탈 버전으로 사용되었다.

'Death of Fiona'도 그 중 하나다. 이 곡은 본드(코네리)가 스펙터의 여성 킬러 피오나(루씨아나 팔루지)와 '마지막 댄스'를 추는 씬에 흘러나온다. 점점 강해지는 봉고 비트로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1분49초부터 요란스럽던 봉고 사운드가 싹 사라지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그 트랜지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5탄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1967)'의 'Fight at Kobe Dock - Helga'. 이 곡은  'Fight at Kobe Dock'과 'Helga' 두 파트로 되어있다.

존 배리의 '007'과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가 부른 주제곡 'You Only Live Twice' 멜로디를 합친 경쾌한 분위기의 'Fight at Kobe Dock'은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일본 코베의 항구에서 몰려드는 적들과 격투를 벌이며 탈출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두 번째 파트인 끈끈한 분위기의 'Helga'는 코베 항구를 무사히 탈출하지 못하고 오사토(테루 시마다) 일당에 잡힌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스펙터 에이전트 넘버11인 헬가(카린 도)를 유혹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본드가 헬가의 옷을 벗기며 "Things I do for England..."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는 바로 그 순간에 나온 곡이다.


그럼 'Fight at the Kobe Dock - Helga'를 들어보자.


다음 곡은 '두 번 산다'의 'The Wedding'.


이 곡은 일본인 어부로 위장한 제임스 본드가 일본 여성 에이전트 키시(미에 하마)와 일본 전통식으로 위장 결혼을 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6탄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의 메인 타이틀.


호주 출신 모델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여왕폐하의 007'은 메인 타이틀 씬에 가수가 부른 보컬 주제곡 대신 존 배리가 작곡한 메인 타이틀이 사용됐다.


다음 곡은 '여왕폐하의 007'의 'Try'.


이 곡은 제임스 본드(조지 래젠비)가 호텔 카지노에서 트레이시(다이아나 리그)를 만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다음 곡은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 인스트루멘탈 버전.


가장 아름다운 007 시리즈 음악 중 하나로 꼽히는 인스트루멘탈 버전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부른 보컬 버전과 함께 영화의 러브 테마 격으로 사용되었다. 인스트루멘탈 버전은 제임스 본드가 스위스 마굿간에서 트레이시에게 청혼하는 "WILL-YOU-MARRY-ME" 씬, 결혼식을 올린 뒤 본드와 함께 신혼여행을 가던 트레이시가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 일당에 의해 살해된 직후에 흘러나온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7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1971)'의 'Bond Meets Bambi and Thumper'.


제목 그대로 이 곡은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기계체조 선수들로 보이는 2명의 여자 보디가드들과 마주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본드가 쥐죽은 듯 조용한 고급 주택을 혼자 걸어 들어가는 순간 흘러나오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주제곡 인스트루멘탈과 제임스 본드 테마는 영화의 씬과 멋지게 어울린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9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1974)'의 'The Man with the Golden Gun' 재즈 인스트루멘탈.

유머러스하고 익살스러운 분위기의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스타일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곡이다


이 곡은 스카라망가(크리스토퍼 리)의 펀 하우스(Fun House)에 마련된 알 카포네 인형이 전시된 무대에서 흘러나온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11탄 '문레이커(Moonraker/1979)'의 'Cable Car And Snake Fight'.

첫 파트는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가 케이블카에서 죠스(리처드 킬)과 격투를 벌이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1분56초부터 시작하는 두 번째 파트는 본드가 아마존의 피라미드 내부에서 거대한 뱀과 싸우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그럼 'Cable Car and Snake Fight'을 들어보자.


다음 곡은 '문레이커'의 'Space Laser Battle'.


많은 사람들이 '문레이커'를 최악의 007 시리즈로 꼽는 이유는 우주정거장에서 광선총을 쏘며 전투를 벌이는 '스타 워즈(Star Wars)'에나 나옴 직한 씬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러 말도 안 되는 가젯들로 허풍을 떠는 정도는 007 시리즈인 만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지만 우주에 나가 광선총 배틀을 하는 것은 007 시리즈 허구의 선을 넘었다고 본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존 배리의 '문레이커' 사운드트랙은 베스트 중 하나로 꼽을 만 하다. 특히 우주 광선총 배틀 씬에서 흐르는 존 배리의 사운드는 한마디로 '예술'이다.


다음 곡은 007 시리즈 13탄 '옥토퍼시(Octopussy/1983)'의 'Yo Yo Fight & Death of Vijay'.


이 곡은 본드(로저 무어)가 장난감 요요처럼 던졌다 다시 받을 수 있는 톱니 모양을 한 '요요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악당과 격투를 벌이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다음은 007 시리즈 14탄 '뷰투어킬(A View to a Kill/1985)'의 'Snow Job'.


제목 그대로 이 곡은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가 시베리아에서 소련군의 추적을 따돌리며 탈출하는 프리 타이틀 씬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이 곡은 '액션 테마' 격으로 오프닝 스키 체이스 씬 이외의 여러 액션 씬에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다음 곡은 '뷰투어킬'의 'Airship to Silicon Valley'.


이 곡은 맥스 조린(크리스토퍼 워큰이 실리콘 밸리를 날려버릴 폭탄들을 설치한 뒤 에어쉽을 타고 빠져나가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다음은 007 시리즈 15탄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1987)'의 'Koskov Escapes'.

소련 장군 코스코프(여른 크라베)가 구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오스트리아로 망명하는 것을 본드(티모시 달튼)와 MI6가 돕는 씬에서 흘러나온 'Koskov Escapes'는 영화의 씬과 무척 잘 어울리는 곡 중 하나다.

이 곡의 긴장감이 감도는 첫 파트는 코스코프가 송유관을 통해 체코에서 오스트리아에 무사히 도착해 Q(데스몬드 류웰린)로부터 "Welcome to Austria" 인사를 받는 데서 나온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코스코프를 맞이하는 Q

1분14초부터 시작하는 강렬한 '클라이맥스'는 코스코프를 태운 영국 공군 해리어가 건물 옥상에서 이륙하는 씬에서 나온다.

코스코프를 태운 채 이륙하는 해리어

1분25초부터는 '빅토리 팡파레'가 나온다. 코스코프를 태운 해리어가 무사히 이륙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전이 성공한 것을 확인한 제임스 본드(티모시 달튼)가 동료 에이전트 선더스(토머스 위틀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승리의 미소를 짓는 제임스 본드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일 뿐, 1분38초부턴 제임스 본드 테마로 넘어간다. 제임스 본드가 에이전트 선더스와 'Business Talk'을 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MI6 에이전트 선더스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본드
자, 그렇다면 위의 씬들을 머릿 속에서 그리며 존 배리의 'Koskov Escapes'를 들어보자.


다음 곡은 역시 '리빙 데이라이트'의 'Mujahadin and Opium'.


'Mujahadin and Opium'은 소련 군부대에서 탈출한 제임스 본드(티모시 달튼)가 아프간 무자하딘들과 함께 말을 타고 그들의 근거지로 이동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황량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치와 참 잘 어울리는 곡이다.


마지막 곡은 역시 '리빙 데이라이트'의 'Hercules Takes Off'. 이 곡은 제임스 본드(티모시 달튼)가 아프간 주둔 소련군 기지에서 수송기를 탈취해 이륙하는 씬에서 흘러나온다. 이 씬에서 사용된 수송기가 C-130 허큘레스(Hercules)였다.

'Hercules Takes Off'는 수송기 씬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가 탕헤르(Tangier) 마을의 지붕 위를 달리는 '루프탑 체이스 씬'에서도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그렇다. 바로 그 유명한 '루프탑 체이스 씬'이다.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가 개봉한 지 정확하게 20주년이 되는 2007년 개봉한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이 20주년 기념(?)으로 루프탑 체이스 씬을 따라한 이후 수많은 액션영화들이 이 씬을 따라하고 있다. 가장 최신작으로는 며칠 전에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헤이와이어(Haywire)'까지 들어간다.

그렇다면 마지막 곡이자 '오리지날' 루프탑 체이스 씬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Hercules Takes Off'를 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내가 뽑아본 존 배리의 007 시리즈 스코어 베스트를 모두 들어봤다.

이쯤 되었으면 내가 왜 요새 나오는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스코어)을 듣지 않는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요새 영화음악엔 과거 존 배리의 음악과 같은 감미로운 멜로디의 곡들이 없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가지 생각해볼 것이 남았다:

과연 존 배리에 버금가는 뮤지션이 나타나 앞으로 007 시리즈 스코어를 맡게 될까? 25년간 존 배리의 멋진 음악들로 귀가 고급이 된 본드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뮤지션이 새로 나타날까?

이 문제는 다음 포스팅에서 한 번 짚어보기로 합시다...

댓글 2개 :

  1.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운드트랙은 "여왕폐하의 007"입니다.
    개별의 곡 자체도 좋지만, 그 슬픈 엔딩을 생각하다보면 아련한 느낌이 남더라구요.
    말씀하신대로 트레이시 본드가 살해당한 이후에 나오는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의 멜로디를 듣다보면 아 이래서 "여왕폐하의 007"이 최고의 작품일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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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HMSS의 엔딩은 스페셜하죠. 007 시리즈에 아직까지 그런 엔딩이 또 나온 적이 없으니까요.
    We Have...가 끝나자마자 제임스 본드 테마로 바로 넘어가는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슬픈 엔딩이긴 해도 여전히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점을 바로 알려주는 센스가...^^
    저도 영화 완성도, 음악 등 여러 면에서 OHMSS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래젠비가 007 시리즈에 계속 남았더라면 코네리를 능가하는 엄청난 본드가 됐을 것 같은데...
    암튼 앞으로 나올 007 영화에서 저런 퀄리티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근데 요새 영화 스코어는 다 이상한 것 같습니다.
    영화 스코어 전문가들의 작품이라기 보다 억지로 영화음악 흉내낸 짝퉁들이 만든 것처럼 들립니다.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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