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8일 수요일

'헝거 게임', 청소년용으로 적합한가?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또 하나의 소녀용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헝거 게임(The Hunger Games)'이다. '헝거 게임'도 '트와일라잇'에 못지 않은 만만치 않은 팬 층을 확보한 틴에이저/영 어덜트(Young Adult)용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기초로 한 영화로, 개봉 이전부터 흥행성공이 예상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헝거 게임'은 미국 개봉 첫 주말에 1억5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는 역대 미국 개봉 첫 주말 흥행기록 3위에 해당하는 액수다. 3월달에 개봉한 틴에이저 소녀용 영화가 성수기에 개봉한 메이저 블록버스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적인 흥행성공을 거둔 것이다.

도대체 '헝거 게임이 무엇에 대한 영화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높은 것일까?

영화 개봉에 앞서 소설 시리즈를 먼저 읽은 10대 소녀들이야 훤히 다 알고 있겠지만, 그쪽 그룹에서 살짝 벗어난 사람들은 '헝거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사실이다. 제목과 간단한 시놉시스 정도야 어디선가 줏어들은 기억이 있는 듯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스토리를 살짝 훑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헝거 게임'은 현재의 미국이 멸망한 이후 새로 생겨난 전체주의 국가, 팬앰을 배경으로 한다. 이 나라는 캐피탈과 12개의 디스트릭트로 구성되었는데, 캐피탈만 부유한 생활을 하고 나머지 12개 디스트릭트는 매우 가난하게 산다. 문제는 캐피탈이 디스트릭트 당 남녀 2명씩 모두 24명의 틴에이저들을 추첨으로 뽑아 '헝거 게임'이라 불리는 서바이벌 게임에 강제로 내보낸다는 것. 24명의 틴에이저들이 참가하는 '헝거 게임'은 마지막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생사가 좌우되는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리얼리티 쇼 형태로 TV로 중계된다. 캐피탈 뿐만 아니라 12개 디스트릭트에도 24명의 디스트릭트 출신 틴에이저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광경을 TV로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디스트릭트 12에 살던 16세 소녀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여동생이 '헝거 게임' 추첨에 뽑히자 그녀를 대신해 '헝거 게임'에 자원한다. 캣니스는 디스트릭트 12에서 함께 추첨에 걸린 16세 소년 피타(조쉬 허처슨)와 함께 캐피탈로 이동해 참가자 24명 중 23명이 죽어야 끝나는 서바이벌 게임 '헝거 게임' 훈련에 들어간다...


출연진은 생각보다 화려한 편이다. 주인공 캣니스 역엔 '윈터스 본(Winter's Bone)'으로 만 20세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가 맡았으며, 이밖에도 엘리자베스 뱅크스(Elizabeth Banks), 우디 해럴슨(Woody Harrelson),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 그리고 락 뮤지션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s) 등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볼 게 많지 않았다. '헝거 게임'의 세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Nineteen Eighty-Four)'의 것과 비슷했고,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는 점은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데스 레이스(Death Race)' 등과 비슷했으며,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을 TV로 중계한다는 점은 CBS의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Survivor)'와 겹쳐졌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든 게 어디서 본 듯 했을 뿐 참신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토리 또한 뻔하고 예측이 가능했으며, 메인 캐릭터들이 캐피탈에 도착해 '헝거 게임'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영화는 그럭저럭 볼 만했다. 걱정했던 만큼 지나치게 아동틱하거나 지지배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영화인 것은 분명했으나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처음 봤을 때처럼 난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열광적으로 박수까지 치는 10대 소녀들 만큼 재미있게 즐기진 못했으나 못봐줄 정도의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았다. 'NOT-TOO-BAD'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가장 신경이 쓰인 점은 재미, 스토리, 완성도 등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린이/청소년용으로 적합하냐'는 것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나 메시지 등은 일단 둘 째 치고 '10대 청소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TV로 지켜보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가 청소년용으로 적합한 소재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헝거 게임'은 성인용 테마에 주인공만 틴에이저로 바꾼 게 전부로 보였을 뿐 진정한 청소년물로 보이지 않았다. 작가가 요즘 방송을 점령한 넌센스 리얼리티 쇼를 풍자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틴에이저들끼리 서로 때려죽이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로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만약 '헝거 게임'이 '1984', '글래디에이터', '데스 레이스' 등과 같은 성인용 영화였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겠지만, 12살짜리 여자 아이들이 환장하고 보는 영화(또는 소설)에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을 포함시킨 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욕심많은 부모들에 의해 어려서부터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불쌍한 아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 해도 때가 덜 묻은 틴에이저들이 보는 영화/소설에 아이들끼리 서로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나온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신경에 거슬렸다.

폭력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영화에 이보다 폭력수위가 높은 영화들도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틴에이저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인다는 것이지 폭력수위는 둘 째다. 물론 이 모든 게 흥행을 위한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메인 캐릭터만 10대 청소년으로 바꾼다고 무조건 청소년물이 되는 건 아니다. '헝거 게임'을 쓴 작가가 이 점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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