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VHS 테이프 정리하는 것도 맘처럼 쉽지 않네...

요새는 '홈 비디오' 하면 DVD, 블루레이, 디지털 포맷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조금만 과거로 리와인드를 하면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던 시절이 나온다. 베타(Beta) 포맷과 VHS 포맷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놓고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샌 비디오테이프는 커녕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영화를 보는 세상이 됐다.

아마도 지난 80년대에 내가 한국에 살 때 처음 구입했던 비디오 플레이어는 대우전자의 베타맥스 플레이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VHS로 나온 영화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베타맥스를 고집했던 이유는 단 하나, 테이프 디자인이 VHS보다 작은 게 더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베타맥스 플레이어를 사게 됐다. VHS로만 출시된 영화를 베타로 옮기는 노가다를 하면서 베타맥스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족들 앞에선 입도 뻥끗 안 했던 기억이...ㅡㅡ;

그 때 그 시절에 보던 베타맥스 플레이어와 비디오테이프들도 분명히 모두 어딘가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현재 내가 살고있는 곳에 있지 않다는 점. CD와 DVD에 시달리는 판에 80년대 베타맥스까지 돌아다니는 시츄에이션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데도 찾아보니 아직도 베타 테이프가 몇 개 있더라. 베타맥스 테이프가 아니라 베타캠(Betacam) 테이프이긴 해도 외관상으론 별 차이가 안 난다.


그렇다면 VHS는 사용하지 않았냐고?

아니다. 어느 정도 버티다가 결국엔 VHS로 바꿨다. VHS로 넘어오면서부터 정품 테이프로 영화를 수집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과거 베타맥스 시절에도 영화수집을 했지만 대부분이 불법 복사판이었는데, VHS로 넘어온 이후부턴 정품으로 수집하는 데 맛을 들였다. 특히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비디오 판매점에 진열돼있는 방대한 양의 비디오테이프들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 했던 기억도 난다. 이제 와서 보면 8~90년대 옛날 얘기지만, 아마도 그 때가 홈 비디오를 가장 많이 구입하고 홈 시어터 시스템 등에 관심을 많이 갖던 때였던 것 같다. VHS 플레이어도 소니, 토시바, 파나소닉 등 여러 브랜드의 것으로 여러 대 구입했고, 스피커 등 오디오 시스템도 사다놨으며,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도 구입해서 거실을 노래방으로 만들어놨던 적도 있다.

80년대 초부터 제임스 본드 시리즈 팬이었던 내가 007 시리즈를 VHS로 모으지 않았을 리 없겠지?

지난 8~90년대에 미국에선 여러 버전의 제임스 본드 VHS 세트가 출시되었다. 지금 현재 내가 1탄부터 15탄까지 가지고 있는 VHS 세트는 90년대 초에 007 시리즈 30주년 기념으로 나왔던 세트로 기억한다.


그렇다. 007 시리즈만 해도 테이프가 벌써 15개나 된다. 사진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007 시리즈 VHS까지 합하면 007 시리즈 테이프만 거진 20개가 된다. 다른 영화 테이프는 제외하고 007 시리즈 테이프만 거진 20개가 된다는 얘기다. 다행히도(?) 다른 영화 테이프들은 이사다니는 와중에 대부분 사라져줬지만, 홈 비디오가 이후에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정품 영화 테이프들이 아니다. 가장 골치아픈 건 공 테이프에 TV 프로그램을 녹화한 테이프들이다.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관계로 내가 녹화한 프로그램은 100% 스포츠 중계방송이다. 큰 맘 먹고 도대체 테이프가 얼마나 많은가 확인해 봤더니 90년대 NFL 경기들부터 2002년 월드컵 경기까지 박스 2개 정도가 나왔다. 테이프 수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제법 큰 박스와 그것보다 조금 작은 중간 사이즈 박스 2개가 꽉찰 정도였으니 5~60개는 충분히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 이것들을 어찌한다?

이 테이프들도 추억의 일부라서 인지 그냥 내다 버리자니 왠지 섭섭했다. 원래 콜렉팅이라는 게 물건을 수집하는 재미보다 추억을 수집하는 재미가 더 크지 않은가. 물론 이런 VHS 테이프들은 수집품이라고 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지만, 수집되어있던 추억을 내다버리려니 왠지 찜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지도 않는 쓸데 없는 테이프들을 잔뜩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럼 하는 수 없지. VHS를 컴퓨터 파일로 전환하는 수밖에...ㅡㅡ;

요새 나는 이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덕분에(?)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NFL 경기들을 다시 보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경기들도 거의 대부분 다시 봤다. 지금도 데스크 옆에 있는 다른 컴퓨터에선 2000년 시즌 세인트 루이스 램즈(St. Louis Rams)와 탬파 베이 버캐니어스(Tampa Bay Buccaneers)의 먼데이 나잇 풋볼이 한창이다. 2000년도면 커트 워너(Kurt Warner)가 램즈 주전 쿼터백이었고 토니 던지(Tony Dungy)가 버캐니어스 헤드코치이던 시절이다.

매일같이 테이프를 못해도 한두개씩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한참 했더니 큰 박스 하나는 완전히 비었고, 작은 박스에 남은 테이프도 이제 얼마 되지 않는다. 끝이 보인다!


그.러.나...

비디오테이프 박스 2개 내다 버린다고 작전이 종료되는 게 아니다. 그 다음은 DVD-R에 녹화된 경기들을 컴퓨터로 옮길 차례다. 이것 때문에 두꺼운 DVD 바인더가 몇 개나 되는 줄 아슈...ㅡㅡ;

짐이란 게 불리긴 쉬워도 줄이긴 무척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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