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3일 일요일

'다크 섀도우', 초반에만 반짝하고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헐리우드 프로듀서/영화감독 팀 버튼(Tim Burton)과 영화배우 쟈니 뎁(Johnny Depp)이 다시 한 번 뭉쳤다. 지난 1990년작 '에드워드 씨저핸드(가위손?) (Edward the Scissorhand)' 이후 여러 차례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버튼과 뎁이 또다시 함께 한 것이다. 버튼과 뎁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기 시작한 영국 영화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 또한 빠지지 않고 합세했다. 뿐만 아니라 본드걸 출신 프랑스 여배우 에바 그린(Eva Green), 왕년의 미녀스타 미셸 파이퍼 (Michelle Pfeiffer) 등 출연진도 빵빵하다.

이들이 함께 한 새 영화 제목은 '다크 섀도우(Dark Shadows)'. 제목부터 상당히 팀 버튼스럽다.

그렇다면 스토리부터 간략하게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다크 섀도우'의 주인공은 18세기에 영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미국으로 이주해 큰 성공을 거둔 바나바스 콜린스(쟈니 뎁). 문제는 바나바스가 그를 지독히 사랑하는 마녀 안젤리크(에바 그린)를 열받게 하면서 시작한다. 바나바스가 안젤리크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단단히 열이 받은 안젤리크는 바나바스의 부모를 살해하고 그의 새 애인을 자살케 만들 뿐만 아니라 바나바스에게도 저주를 내려 그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린다.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뱀파이어가 된 바나바스는 안젤리크에 의해 산 채로 매장당한다. 200여년 동안 관 속에 갖혀 있다 우연히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된 바나바스는 그가 과거에 살았던 저택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는 후손들과 만난다. 그러나 바나바스가 살았던 옛 동네엔 그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저주를 내렸던 마녀 안젤리크까지 떡 버티고 있었으니...


제법 괜찮아 보인다고?

그렇다. 제법 괜찮은 스토리다.

문제는 괜찮은 스토리가 여기까지가 전부라는 것.

스타트는 좋았다. 바나바스가 어쩌다가 뱀파이어가 되어 200여년이 흐른 뒤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파트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관 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바람에 1970년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나바스의 컬쳐 쇼크 관련 유머도 기대에 크게 못 미쳤으며 200여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바나바스와 안젤리크의 재회도 생각했던 만큼 흥미진진하지 않았다. 이 두가지가 '다크 섀도우'의 가장 큰 볼거리일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기대에 크게 못 미칠 만큼 싱겁고 밋밋했다.

이쯤 되자 뻥 뚫린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다가 갑자기 극심한 러시아워 트래픽에 갖힌 기분이 들었다. 유머엔 나름 신경 쓴 듯 했으나 그리 신통치 않았고, 스토리마저 갈수록 흐리멍텅해졌다. 바라바스와 그의 후손 가족들과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볼 게 없었고, 바라바스와 안젤리크 사이의 이야기도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었을 즈음만 해도 '무언가 더 있겠지'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바라바스와 안젤리크의 갈등과 로맨스가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싱겁게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대를 접었다. 나아질 기미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60년대 클래식 TV 시리즈를 기초로 한 배경 줄거리는 완벽했다. 캐스팅 또한 마찬가지였다. 괴상한 분장을 한 쟈니 뎁의 코믹 연기와 찰떡궁합일 것 같았다. '고딕(Gothic) 본드걸'로 유명한 에바 그린을 괴팍스러운 마녀 역으로 캐스팅한 것도 멋진 선택이었다. 에바 그린은 귀엽고 애교가 넘치는 듯 하면서도 심술궂고 악질적인 마녀 안젤리크 역으로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미셸 파이퍼, 헬레나 본햄 카터 등의 서포팅 캐릭터 연기도 모두 훌륭했다.


그런데도 영화 '다크 섀도우'는 이 모든 가능성을 살리지 못했다. 배경 스토리를 설명해주던 영화 초반에만 잠깐 반짝한 이후 나머지 파트는 '어둠의 그림자'에 묻혔다. 배경 스토리만 흥미진진했을 뿐 정작 메인 스토리는 볼품 없었기 때문이다. 제법 괜찮은 캐릭터와 배경 스토리를 갖추고도 메인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꾸미지 못하면서 영화를 망친 것이다. 팀 버튼 영화 특유의 매력은 여전히 느껴졌으나 스토리가 너무 빈약했고, 빈약한 스토리의 빈자리를 메꿔줄 유머나 기타 볼거리 등 또한 턱없이 부족하거나 기대에 못 미쳤다.

만약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에드워드 씨저핸드'의 묘한 분위기의 스토리에 유머를 곁들인 아주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크 섀도우'는 충분히 그렇게 될 만한 포텐셜을 갖추고 있었다. 괴상한 분장을 한 쟈니 뎁의 코믹 연기, 에바 그린, 배경 스토리, 기타 등등 모든 것이 섹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유머는 코메디로 보기엔 부족했고 기억에 남는 코믹한 씬도 없었다. 영화의 스타일도 '애덤스 패밀리(The Addam's Family)'와 같은 뚜렷한 어린이/패밀리용 영화도 아니고 스토리가 흥미진진한 스토리 중심의 영화도 아닌, 한마디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흘러간 70년대 노래와 히피 문화 등으로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려 했지만 이것 역시 '말로만 70년대'로 보였을 뿐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이것저것 늘어놓은 것은 많은 것 같았는데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저 쟈니 뎁과 빵빵한 출연진, 잘 알려진 클래식 TV 시리즈 제목, 그리고 흥미진진한 배경 스토리만 있었을 뿐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었다.

중반을 지나면서 영화에 이미 흥미를 잃어서 였을까? 런타임이 2시간이 채 안 되는 비교적 짧은 영화였는데도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였나?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서 일어서는 관객들의 안색이 전부 이렇더라니까...


한마디로 '다크 섀도우'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제대로 만들면 대단히 재미있을 것처럼 보이면서도 왠지 큰 기대가 가지 않았는데, 결과는 "역시나" 였다.

'다크 섀도우'는 요란한 분장을 쟈니 뎁의 뻔한 영화, 팀 버튼의 뻔한 영화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은 '요란한 분장의 쟈니 뎁'과 '팀 버튼 영화'라는 데 낚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듯 한데,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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