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2일 일요일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 1탄 '닥터노'를 극장에서 보다!

"Welcome to D.C, Mr. Bond!"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가 워싱턴 D.C 근교에 위치한 영화관 AFI Silver에서 상영됐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으로 AFI(American Film Institute) Silver가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상영한 것이다.

'닥터 노(1962)'가 개봉했던 60년대 초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숀 코네리(Sean Connery)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단 한 편도 극장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코네리 주연의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개봉했을 당시 너무 어렸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극장에서 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

여기엔 나도 해당된다. 내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본 게 80년대 초였으므로 코네리 주연의 60년대 클래식은 극장에서 본 적이 없다. 모두 홈 비디오로 보긴 했지만 코네리의 클래식 본드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간혹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 흘러간 제임스 본드 영화를 상영하는 이벤트를 갖곤 했지만 코네리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AFI Silver 덕분에 코네리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왔다. 멀리 여행할 것도 없이 D.C 근교에서 코네리의 클래식 007 시리즈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지?

7월21일 토요일, 워싱턴 D.C의 날씨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하지만 50년 전 '미스터 본드'를 극장에서 만나기 위해 비를 뚫고 AFI Silver로 달려갔다.

AFI Silver엔 모두 3개의 상영관이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1관이고 2관은 중간 사이즈이며 3관이 가장 작다. 3관은 1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소규모다. '닥터 노'는 3관에서 상영했다.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왔을까?

최신 영화가 아닌 50년 전 클래식인 데다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았으며 어제 덴버의 극장에서 총격사건까지 발생했던 만큼 많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처음엔 관람객이 열 댓명 정도밖에 안 될 것으로 보였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빈 좌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만원이 됐다. 실제로 매진이 되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눈으로 극장 내부를 둘러봤을 때엔 매진으로 보였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중년이었고, 70대 이상도 많이 눈에 띄었다. 50년 전 '닥터 노'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 극장에서 관람했던 올드팬들이 과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나머지는 3040대였다. 10대는 하나도 없었으며 20대는 혹시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봤을 땐 30대 아래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오리지날 클래식을 틀어 주지 않고 블루레이 버전을 돌리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AFI에서 설마 그렇게 하겠나 싶었지만 간혹 DVD나 블루레이를 돌리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50년 전 클래식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는데 디지털 리매스터링을 한 DVD나 블루레이 버전을 무성의하게 틀어주면 김이 빠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아 해소됐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DVD나 블루레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30~40년대 흑백 클래식 영화들도 자주 상영하는 극장인 만큼 이번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007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건배럴 씬이 나오자 박수를 치는 관객도 있었다. 건배럴씬은 최근에 만들어진 007 시리즈에도 나오므로 특별하게 반가울 것은 없었으나 숀 코네리 시절의 60년대 건배럴씬을 극장에서 보는 기분은 분명히 달랐다. 아마도 관객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을 느꼈던 듯 하다.


건배럴씬에 이어 너무나도 친숙한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가 흐르자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 본드 테마 역시 요즘에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극장에서 1962년 영화 '닥터 노'를 보면서 제임스 본드 테마가 울려퍼지자 기분이 참 묘했다. 항상 듣던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 테마였는데도 왠지 새롭게 들렸다.

숀 코네리가 007 시리즈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소개하는 유명한 씬에서도 극장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50년 전엔 전혀 웃기지 않은 진지한 씬이었지만 50년 이후의 관객들에겐 너무나도 웃긴 씬이었다.

왜냐, 너무나도 유명한 씬이기 때문이다!


'닥터 노'에서 제임스 본드가 자신의 이름을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소개하는 씬은 AFI가 선정한 '가장 유명한 영화 대사 100선(AFI's 100 Years...100 Movie Quotes)' 중 22위에 올라있다.


관객들은 "본드, 제임스 본드" 하나가 전부가 아니라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즐기는 듯 했으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웃음이 거의 끊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와 최근에 제작된 영화의 대사를 비교해 보면 클래식 버전이 얼마나 위트가 넘치는지 금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신 영화에선 1962년작 '닥터 노'와 같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고 스타일리쉬한 씬과 대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신 영화들은 대부분 수준급 특수효과로 관객들을 "와우!"케 만들려 할 뿐 과거 클래식 영화와 같은 아기자기함이 크게 떨어진다.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세련된 유머와 사르카즘도 요샌 찾아보기 힘들다. 요새도 가끔씩 그것을 흉내내려 하지만 한마디로 억지로 시늉을 내는 것 같을 뿐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와서 보면 옛날 영화가 촌쓰럽고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영화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오늘 '닥터 노'를 극장에서 보면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요새는 왜 '닥터 노'처럼 영화를 쿨하고 섹시하고 스타일리쉬하면서 위트와 유머가 넘치도록 만들지 못하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역대 최고의 '본드걸'로 꼽히는 허니 라이더(우술라 안드레스)가 흰색 비키니 차림으로 자메이카 해변에 나타나는 너무나도 유명한 씬에서도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씬은 역대 최고의 비키니 씬으로도 유명하다.



Honey Ryder: What are you doing here? Looking for shells?


James Bond: No. I'm just.......L@@KING!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THE END'가 나오는 순간에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박수까지 나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나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객석에서 바로 박수가 터져나왔다. 영화가 시작할 때 터져나온 박수는 50년만에 극장으로 돌아온 '닥터 노'를 환영하는 의미였다면 마지막에 터져나온 박수는 '닥터 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였으리라.

이렇게 해서 나의 '60년대 체험'은 시작했다. '닥터 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AFI가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1963)', '골드핑거(Goldfinger/1964)', '썬더볼(Thunderball/1965)',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 등 60년대에 제작된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모두 재상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60년대 클래식 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1971)'와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1977)' 등 70년대 영화들도 상영할 예정이며, 내일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상영한다.

내일 또 AFI에 갈 거냐고?

에이, 답을 이미 알면서 왜 그런 걸 묻고 그래...ㅋ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