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FX의 TV 시리즈 '아메리칸', 훌륭한 냉전시대 스파이 시리즈 될 수 있을까?

미국의 케이블 채널 FX가 새로운 TV 시리즈를 시작했다. 제목은 '아메리칸(The Americans)'. 매주 수요일 밤 10시 방송되는 '아메리칸'은 80년대 초 평범한 미국인 가족으로 위장 침투한 KGB 에이전트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파이 픽션 시리즈다.

불과 몇 해 전에 미국에서 활동하던 러시아 스파이 일당이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보면서 '미국에 침투한 러시아 스파이 이야기'가 아직도 흥미를 끌 만한 소잿감으로 활용될 만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미국인 가족으로 위장한 KGB 슬리퍼 에이전트를 그린 냉전시대 배경의 스파이 시리즈가 나왔다.

새로운 스파이 시리즈 '아메리칸'의 주인공은 미국인 부부로 위장해 미국에 침투한 KGB 에이전트 필립(매튜 리스)과 엘리자베스(케리 러셀). 이들은 부부 사이로 위장한 것일 뿐이지만 실제 부부처럼 보이기 위해 자녀까지 두고 미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필립과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실제 관계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며, 함께 낳아 기르고 있는 어린 자녀들에겐 그들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 필립과 엘리자베스의 부부 관계는 KGB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 해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의 자식임이 분명하므로 KGB 슬리퍼 에이전트라는 불안한 삶을 살면서 언제까지 자녀들을 돌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더욱 뜨거워지고(?), 필립과 엘리자베스의 미션들도 갈수록 위험해 진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필립과 엘리자베스의 이웃으로 FBI 에이전트까지 이사온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KGB 에이전트를 찾아내거나 포섭하는 일을 하는 베테랑 FBI 에이전트 스탠(노아 에머리크)은 직감적으로 그의 새로운 이웃 필립과 엘리자베스를 수상하게 여긴다.

한편, 필립과 엘리자베스는 FBI 에이전트가 이웃으로 이사온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그들의 정체가 탄로났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두고 혼란스러워 한다. 어느 쪽이 맞든 간에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 듯 출발은 익사이팅했다.  평범한 부부로 위장해 미국에 침투했던 러시아 스파이들이 적발됐던 최근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80년대 냉전시대와 접목시킨 아이디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미녀 스파이'로 인기를 끌었던 애나 챕맨(Anna Chapman)을 비롯한 미국에 침투했던 러시아 스파이들이 적발되었을 때 왠지 '영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80년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TV 시리즈로 먼저 나온 듯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이 훌륭한 냉전시대 스파이 시리즈가 될 수 있을 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오케이'였으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부부로 위장하기 위해 자녀까지 둔 KGB 에이전트들이 일과 가족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문자 그대로 문앞에까지 와 있는 FBI의 눈까지 피해야 한다는 설정은 맘에 들었지만, 그리 강하게 흥미가 끌리지 않았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진부한 스파이 스릴러가 되어가는 조짐이 보였다. 나름 리얼한 냉전시대 스파이 스릴러를 시도한 흔적은 보였으나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서로 상대 에이전트를 포섭해 정보를 빼내는  등 이미 다 아는 냉전시대 이야기의 반복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위장결혼을 해 자녀까지 뒀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미국에 침투한 KGB 에이전트들이 한순간에 쉽게 정체가 탄로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리스키해 보이는 미션을 맡는 것도 조금 지나쳐 보였다. 냉전시대에 미국에서 부부로 위장해 활동하는 '부부 KGB 스파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시리즈라서 그들의 라이프 스토리에 더욱 흥미가 끌렸는데, 왠지 '아메리칸'도 미션 위주의 평범한 스파이 스릴러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메리칸'의 세계에 흥미가 붙기 시작한 건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였다. 실제 부부인지 위장일 뿐인지 서로의 관계가 분명치 않은 데서 오는 혼란과 쉽지 않은 부부 생활 등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고민과 문제, 그리고 과거사 등을 짊어진 채 미국의 수사망을 피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필립과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서서히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미국에 침투한 KGB 에이전트들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스파이 시리즈다워 보였다.

또한,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레이건 저격사건, FBI의 KGB 미행과 포섭 등 8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에피소드의 소재로 삼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들을 끌어들이면서 시리즈가 보다 리얼해 보였고 묵직함이 느껴졌다. '소련'과 'KGB'만 나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80년대 냉전시대를 막연하게 배경으로 삼은 다른 흔한 스파이물과 살짝 차이가 나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데가 있었다. 미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KGB 에이전트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점은 신선해 보였으나, '부부 스파이'를 제외한 나머지 스토리는 전직 KGB 장군들의 회고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KGB 내부의 CIA 첩자들을 색출함과 동시에 얼드리치 에임스(Aldrich Ames) 등 KGB에 정보를 파는 CIA 에이전트들을 다루는 일을 했던 80년대 당시 KGB 장군들의 회고록을 몇 권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아메리칸'의 스토리가 이들의 회고록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라는 점을 한 번에 알아볼 것이다. 물론 리얼한 80년대 스파이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서 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부부 스파이'를 제외한 나머지 파트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부부 스파이'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그럴싸하게 연결시키는 게 전부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2010년 발생한 러시아 스파이 사건의 시대 배경을 80년대로 바꾼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80년대 냉전시대 스파이 스토리가 앞으로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메리칸'이 훌륭한 냉전시대 스파이 시리즈가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일단 주인공이 미국에 침투한 KGB 에이전트라는 점 등 약간 색다른 스파이 스릴러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악당이나 살인자, 범죄자 등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나 TV 시리즈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80년대에 미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부부 KGB 에이전트'는 아무래도 느낌이 또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요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미국 내에 침투한 중동 테러리스트 이야기(홈랜드(Homeland)?)'가 더욱 와 닿을 수도 있다. 하지만 FBI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녀들에게까지도 정체가 탄로나지 않도록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하는 냉전시대 KGB '부부 스파이'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진진해 질 수 있다. '액션/스릴러'와  '드라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무리하지 말고 적국에 침투해 매우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스파이들의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찬 머릿 속을 들여다 보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아주 멋진 스파이 시리즈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헐리우드 리포터에 의하면, FX의 TV 시리즈 '아메리칸'이 시즌2로 계속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KGB 부부 스파이의 미국 '침투'는 일단 성공적인 듯 하다.



'아메리칸'은 현재 시즌1 에피소드5까지 방송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시즌1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아메리칸'은 미국의 케이블 채널 FX에서 매주 수요일 밤 10시(미국 동부시간) 방영된다.

Smiert Shpi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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