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 일요일

'레드 2', 신선도 떨어져도 전편보다 나았다

Retired, Extremely Dangerous...

은퇴했지만 굉장히 위험한 전직 스파이들이 돌아왔다. 은퇴 후 조용한 삶을 살지 못하고 2010년 영화 '레드(RED)'에서 이미 한바탕 소동에 휘말렸던 이들이 2013년 여름 속편 '레드 2(RED 2)'로 컴백했다.

Retired Extremely Dangerous 멤버들은 다들 한가닥 하는 전직 베테랑 에이전트일 뿐 아니라 상당히 유명한 양반들이기도 하다. 80년대부터 수많은 액션영화에 출연한 헐리우드 액션스타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노미네이트 경력의 개성 넘치는 배우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국 여배우 헬렌 미렌(Helen Mirren), 여러 편의 히트작에 출연한 유명한 스코틀랜드 배우 브라이언 콕스(Brian Cox) 등 모두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여기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국 영화배우 앤토니 홉킨스(Anthony Hopkins), 한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이병헌 등 이번 '레드 2'에 새로 합류한 배우들까지 합하면 출연진 하나 만큼은 빵빵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위험한 일에서 손을 떼고 완전히 은퇴한 프랭크(브루스 윌리스)는 사라(매리-루이스 파커)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프랭크와 마빈(존 말코비치)은 'NIGHTSHADE'라 불리던 냉전시대 휴대용 핵무기 미션과 얽힌 음모에 휘말려 한국인 프로페셔널 킬러 한(이병헌)과 MI6로부터 프랭크와 마틴 제거 명령을 받은 빅토리아(헬렌 미렌)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얼떨결에 도망자 신세가 된 프랭크, 마빈, 사라는 'NIGHTSHADE' 미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유럽으로 건너간다...

과연 이번 속편도 화려한 캐스팅 하나 빼곤 볼 것 없는 영화였을까?


2010년작 '레드' 1탄을 그리 재밌게 보지 않은 관계로 '레드 2'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배우들이 우스꽝스러운 액션을 보여주며 억지 웃음을 쥐어짜는 또 하나의 유치한 영화가 아니겠나 싶었다. 쟝르는 액션/코메디이지만 액션과 유머 모두 별 볼 일 없고 화려한 출연진 덕에 영화배우만 보이는 영화일 것 같았다.

게다가 오리지날보다 나은 속편이 드문 것도 사실이므로 기대치를 좀 더 낮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레드 2'는 'NOT BAD'이었다. 2010년작 '레드'는 출연진만 푹 익었을 뿐 영화는 설익은 맛이 났으나 2013년작 '레드 2'는 영화에서도 제법 익은 맛이 났다. '레드 2'에선 액션과 유머가 제 역할을 해줬으며, 전체적으로 전편보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영화였다. 전편은 좀 어수선한 감이 있었다면 '레드 2'는 보다 안정돼 보였다.

그렇다. '레드 2'가 2010년작 '레드' 1탄보다 나았다.

전편에 비해 크게 새로워진 점을 찾기 어려웠던 건사실이다. 예상했던 대로 '레드 2'도 노장배우들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던 지난 '레드' 1탄과 똑같은 포뮬라의 신선도 떨어지는 유치한 코메디 영화였다. 하지만 이번엔 썰렁한 헛스윙 유머가 부쩍 줄었으며, 대부분의 유머가 제 역할을 해냈다. 새로운 점은 찾기 어려웠어도 나아진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캐릭터와 출연진도 완벽했다. 액션맨과 코믹 연기를 오가는 프랭크 역의 브루스 윌리스, 괴상한 행동으로 볼 때마다 웃음을 자아내는 마빈 역의 존 말코비치, 굉장히 터프한 아줌마 빅토리아 역의 헬렌 미렌, 얼떨결에 휘말려든 사건을 아주 즐겁게 즐기는 사라 역의 메리-루이스 파커(Mary-Louise Parker) 뿐만 아니라 이번 '레드 2'에 처음으로 등장한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과학자 역의 앤토니 홉킨스, 섹시한 러시안 에이전트 역의 캐서린 제타-존스(Catherine Zeta-Jones), 주먹질 발길질을 곧잘 하면서도 살짝 멍해 보이는 킬러 역의 이병헌 등 모두가 물건들이었다. 프랭크(브루스 윌리스)를 놓고 사라(메리-루이스 파커)와 카챠(캐서린 제타-존스)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도 재미있었고, '퀸(Queen)'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헬렌 미렌이 왕관을 쓰고 "나는 여왕이다!"라고 외치며 정신병자 시늉을 내는 씬에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레드 2'는 클린 액션영화였다. 액션은 풍부했고 때로는 격렬했지만 지나치게 거칠지 않았으며 출혈 씬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총격전을 벌이는 씬은 제법 많이 나왔지만 출혈 씬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으며, 이병헌의 맨손격투 씬도 이연걸의 무술영화를 연상케 했을 뿐 지나치게 거칠지 않았다. 요새 나오는 액션영화는 청소년이 주로 보는 PG-13 레이팅 영화도 어둡고 인텐스하며 폭력수위도 제법 높은데, '레드 2'는 그렇지 않았다. '레드 2'는 덜 잔인하고 덜 격렬하고 굳은 얼굴로 애써 똥폼잡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쿨하고 스타일리쉬한 패밀리용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그렇다고 완벽한 오락영화는 아니었다. 스토리는 엉성했고, 한마디로 코메디 버전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처럼 보였다. '레드 2'에서 가장 부실한 부분은 아무래도 스토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뇌 한쪽 빼놓고 보는 영화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팔장끼고 무표정하게 앉아있을 각오를 하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그럭저럭 볼 만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어도 기본은 한 영화였다. 이런 류의 가벼운 액션/코메디 영화가 이 정도 했으면 제 역할을 다 한 셈이다.

다음 편에선 얼마나 더 나아질까 기대되기도 한다.

그런데 3탄이 나오려나...?

댓글 2개 :

  1. 레드 원작 만화는 무지 하드보일드하고 심플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인데.

    영화는 한번 코믹하고 시원한 액션으로 가더니 계속 이쪽으로 흘러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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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초부터 구상을 그쪽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레드는 나이 든 액션히어로의 어색함을 유머로 커버하고 익스펜더블은 총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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