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1일 화요일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 그럴싸 했지만 새로운 게 없었다

"영국에 제임스 본드(James Bond)가 있다면 미국엔 잭 라이언(Jack Ryan)이 있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미국판 제임스 본드'에 가장 가까운 헐리우드 캐릭터가 잭 라이언이기 때문인 듯 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 소설가 톰 클랜시(Tom Clancy)가 창조한 CIA 캐릭터 잭 라이언은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제법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아직까지 제임스 본드처럼 성공적인 영화 시리즈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가 잭 라이언 역을 맡았던 지난 90년대엔 제법 그럴 듯해 보였지만 그 때 잠시 반짝했던 게 전부였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벤 에플렉(Ben Affleck)이 잭 라이언 역을 맡았던 2002년 영화 '공포의 총합(The Sum of All Fears)'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 역시도 아니었다.

2014년 1월 잭 라이언이 다시 빅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제목은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Jack Ryan: Shadow Recruit)'.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는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섯 번째 영화이다. 이전 네 편의 영화와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이번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는 톰 클랜시의 원작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클랜시가 창조한 캐릭터 잭 라이언만 나올 뿐 스토리는 클랜시의 소설과 무관한 내용이다. 이번 영화는 잭 라이언 시리즈를 새로 리부팅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에서 메인 캐릭터 잭 라이언 역을 맡은 영화배우는 크리스 파인(Chris Pine). 파라마운트의 SF 블록버스터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의 리딩맨이 파라마운트의 또다른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보이는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트르'의 리딩맨을 맡았다.

크리스 파인은 알렉 발드윈(Alec Baldwin),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벤 애플렉(Ben Affleck)에 이어 네 번째로 잭 라이언이 됐다.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의 스토리는 CIA 애널리스트 잭 라이언(크리스 파인)이 달러 가치 폭락으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려는 러시안 이코노믹 테러리스트 빅터(케네스 브래너) 일당의 음모를 저지한다는 내용이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시리즈의 미래가 밝아 보이는 잭 라이언 영화가 드디어 나온 것일까?

굳이 답변을 하자면 "50/50"라고 해야할 듯 하다. 그럭저럭 볼 만했어도 아주 잘 된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인 스토리는 괜찮은 편이었다. 케빈 프리맨(Kevin Freeman)이 쓴 책 '시크릿 웨폰(Secret Weapon: How Economic Terrorism Brought Down the U.S. Stock Market and Why It can Happen Again)'을 떠올리게 하는 메인 스토리와 악당을 준비한 것에 대해선 후한 점수를 줄 만했다.

그러나 후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이코노믹 테러를 소재로 한 메인 스토리는 제법 그럴 듯 했지만 영화는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시리즈 등을 짬뽕한 게 전부였다. 다른 스파이 액션 영화들과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억지스러운 스토리라인과 함께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흉내내는 데 그쳤다.

잭 라이언 영화엔 제임스 본드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보다 리얼하고 그럴 듯한 스토리라인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먄 다른 스파이 시리즈와 비슷하면서도 잭 라이언 영화만의 특징을 살리면서 차이가 나도록 만들 수 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테러 플롯을 저지하는 건 007 시리즈 전문이고 팀 멤버들이 모여 함께 작전을 벌이는 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대표적인 특징이므로 잭 라이언 영화는 이런 걸 피해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 제작진은 완전히 다른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제작진은 요새 유행하는 스파이 영화 포뮬라를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무조건 된다고 판단한 듯 했다.

제법 그럴 듯해 보였던 이코노믹 테러 플롯은 어느 덧 007 시리즈 수준의 테러 플롯으로 부풀려졌으며, 잭 라이언이 CIA 동료들과 함께 적의 사무실에 침투하는 씬은 코믹할 정도로 미션 임파서블과 비슷했다. 뿐만 아니라 제작진은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을 연상케 하는 뉴욕시 체이스 씬까지 집어넣으며 '요새 유행하는 스파이 시리즈 빅3 모두 베끼기'를 완성시켰다.

이렇다 보니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는 남의 것만 무성의하게 베끼기만 한 비슷비슷한 또 하나의 헐리우드 스파이 영화가 되고 말았다.

007 시리즈 이후에 나온 스파이물은 소설과 영화를 막론하고 제임스 본드를 흉내낸 아류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는 이를 의식해 자신의 작품은 007 시리즈와 크게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007 시리즈와 차별화를 시도한다. 영국 스파이 소설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 렌 다이튼(Len Deighton)의 해리 팔머(Harry Palmer) 시리즈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다. 유니버설의 본 시리즈도 한 때 007 시리즈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킨 바 있다.

가뜩이나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스파이 쟝르 영화에서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뚜렷하게 살리지 않고 엇비슷하고 두루뭉술하게 만드는 건 절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영화가 되면 수많은 비슷비슷한 스파이 쟝르 영화들 중에서 눈에 띄기 힘들다. 007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의 경우엔 메인 테마 곡만 흘러도 분위기가 바로 잡힐 정도로 워낙 역사가 깊고 유명한 시리즈라는 큰 어드밴티지가 있어서 많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지 모르지만 나머지 스파이물들은 무언가 색다르다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줘야 성공할 수 있다. 영화 중에선 유니버설의 본 시리즈를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시리즈도 일부 플롯과 액션 씬 등에서 007 시리즈를 모방하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007 시리즈와 분명하게 다른 느낌의 스파이 스릴러였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는 색다른 면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톰 클랜시가 창조한 널리 알려진 캐릭터 잭 라이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 하나를 제외하곤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흔해 빠진 스파이 영화 포뮬라를 따른 것이 전부였을 뿐 잭 라이언 영화라는 사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이 잭 라이언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또는 이든 헌트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일 정도로 다른 영화들과 비슷해 보였을 뿐 잭 라이언 영화만의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 파인은 잭 라이언 역에 그럭저럭 잘 어울려 보였지만 인상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파인이 '에이전트' 타잎의 캐릭터에 제법 잘 어울리는 배우라서 그런대로 봐줄 만했던 것이지 개성있는 잭 라이언을 보여주진 못했다. 영화가 흐리멍텅했으니 캐릭터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톰 클랜시의 냉전시대 캐릭터 잭 라이언을 포스트 9/11의 21세기 캐릭터로 다시 탄생시킨 것까진 좋았지만 크리스 파인의 잭 라이언은 그저 평범한 '헐리우드 스파이 에이전트'의 모습이었을 뿐 '21세기 버전 잭 라이언'으로써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렇다. '잭 라이언: 섀도우 리쿠르트'는 썩 만족스러운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도 영화는 그럭저럭 볼 만했다. 유치할 정도로 억지스러운 플롯 등 문제점이 눈에 많이 띄는 지극히 평범한 레벨의 영화였지만 못봐줄 정도로 한심한 영화는 아니었다. 새로운 건 전혀 없었어도 그런대로 그럴싸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기대에 크게 못미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크리스 파인 버전 잭 라이언 영화도 왠지 스타트가 과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댓글 2개 :

  1. 이대로 잭라이언 시리즈는 또 다른 리부트를 기다리던지 아니면 묻힐 것같다는 느낌이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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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생각에도 크리스 파인의 잭 라이언 시리즈가 계속되긴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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