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80년대 초부터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영화관에서 봤다. 그 동안 지금까지 4명의 다른 영화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다. 내가 영화관에서 처음 본 제임스 본드 영화인 1981년작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는 로저 무어(Roger Moore)가 제임스 본드였고, 80년대 중-후반엔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으로 교체되었으며, 90년대 중반엔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으로 바뀌더니 2000년대 중반엔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로 또 교체되었다.
70년대 초에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제임스 본드를 떠나고 로저 무어로 교체되었을 때엔 새로운 얼굴의 제임스 본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부턴 통하지 않는 얘기다. 주연배우가 나이가 들면 새로운 젊은 배우로 교체하고, 거기에 맞춰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네 번이나 바뀌었으니 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영화관에서 본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스카이폴(Skyfall)' 만큼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던 영화가 없었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던 2012년 개봉작 '스카이폴'은 유감스럽게도 맘에 드는 부분보다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았다. 50주년 기념작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그럴싸한 껍데기뿐인 영화였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로 스타트는 좋았는데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 빗나가는 듯 하더니 '스카이폴'에선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어디까지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일각에선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졸작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냐고 한다. 객관적으로 퀄리티만 놓고 따지면 일리 있는 주장이긴 하다. 007 시리즈의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영화보다 나아진 건 논할 가치가 없을 만큼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왜냐,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엔 원래 그런 줄 알고 봤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실망하고 자시고 따질 게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영화가 피어스 브로스난 시대보다 낫다는 데서 위안을 찾으라는 건 007 시리즈를 평가하는 기준이 얼마나 낮은지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데서 언제나 높은 스탠다드를 요구하는 꾸준한 본드팬들과 유행따라 왔다가 조금 있으면 사라질 사람들과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해 해둘 게 있다.
브로스난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비록 퀄리티는 한심했어도 007 시리즈라는 점이 의심되거나 불확실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가 맘에 들지 않은 적은 있어도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퀄리티는 낮았어도 정체성은 뚜렷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로 넘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퀄리티는 전보다 나아졌으나 그 대신 정체성이 매우 희박해졌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스카이폴'은 제임스 본드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만 제임스 본드일 뿐 완전히 다른 헐리우드 액션영화처럼 보였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아스톤 마틴 DB5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에만 잠깐 동안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씬이 차고 씬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아마 '스카이폴'이 유일할 듯 하다.
'카지노 로얄'로 산뜻하게 출발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바보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했다. 적어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유치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카이폴'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억지스러운 플롯, 우스꽝스러운 대사, 배트맨이 되고픈 007 등등 도저히 진지하게 보기 불가능한 영화였다. 겉으로 보기엔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였지만 약간 생각을 하면서 찬찬히 들여다 보면 '스카이폴'의 유치함은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 저리가라 수준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스카이폴'이 더욱 신경에 거슬렸다. 브로스난 시절엔 영화가 가볍고 유치해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스카이폴'에선 쥐뿔도 아닌 내용으로 심각한 척까지 하니 더욱 봐주기 어려웠다. 유치한 소리를 가벼운 분위기에서 하면 웃어넘길 수 있어도 유치한 소리를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늘어놓으면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이런 문제점은 진지한 영화를 제대로 만들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 또는 이런 문제를 바로 픽업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겨냥한 영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12세들을 위한 영화인지 12세들이 만든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웃지 못할 비판을 자주 듣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스카이폴'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처럼 '스카이폴'엔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스카이폴'을 로저 무어(Roger Moore) 주연의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 레벨로 보고 있다. '문레이커'도 당시엔 흥행에 대성공했던 영화이지만 가장 제임스 본드 시리즈답지 않은 영화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70년대말 '스타 워즈(Star Wars)'의 인기가 엄청났던 것까지는 인정하더라도 제임스 본드가 우주에 나가 광선총을 쏘는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선을 넘은 것이다. '스카이폴'도 마찬가지다. 요즘에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아무리 인기가 높다고 해도 대놓고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스타일을 모방한 건 선을 넘은 것이다. 유행을 따른다 해도 정도껏 센스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문레이커'와 '스카이폴' 모두 상업영화로썬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로는 꼽을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행 때문에 개성을 잃고, 흥행 때문에 정체성을 잃은 실패 케이스다.
007 제작진은 007 시리즈를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만들면서 흥행성공까지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한 것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007 제작진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생각 자체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게 문제다. 돈만 벌린다면 '스타 워즈'를 007 시리즈에 억지로 갖다 붙였던 것처럼 '스카이폴'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저질렀던 이들이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만드는 데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은 김이 좀 빠진다 싶으면 원작소설 타령을 하면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임을 확인시키는 수법을 지난 60년대부터 써왔으므로 조만간 또 그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젠 제임스 본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약속이 립서비스로만 들릴 뿐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까지만 해도 원작 타령을 그렇게 하더니 '스카이폴'에 와선 방향을 싹 바꾼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이언 플레밍이 쓴 소설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떠올리라고 하더니 '스카이폴'에선 배트맨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007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물과 달리 브로콜리 패밀리가 항상 제작을 맡기 때문에 브로콜리 패밀리 없는 007 시리즈는 상상할 수 없는 얘기다. 다른 시리즈물에선 상황에 따라 프로듀서부터 제작진 전체를 물갈이 할 수도 있지만 007 시리즈는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감독, 주연배우는 계속 바뀌어도 프로듀서는 바뀌지 않는다. 007 영화 시리즈는 대물림을 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다. 따라서 제임스 본드다운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브로콜리 패밀리에 대한 믿음이 가시기 시작했다면 문제가 커진다.
그들의 비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들도 눈에 띈다. 공동 프로듀서 중 하나인 마이클 G. 윌슨(Micahel G. Wilson)은 이미 70대에 접어들었다. 윌슨은 오래 전부터 007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베테랑 중 하나이지만 그도 이젠 70대가 됐다. 그래도 아직 70대 초반이므로 당분간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3년마다 한 편 꼴로 나오는 007 시리즈에 언제까지 프로듀서로 머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윌슨의 아들 데이빗과 그레그가 007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고 있지만 007 시리즈를 물려받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언젠가는 데이빗과 그레그가 물려받겠지만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007 시리즈를 맡기는 건 피하고 싶은 씨나리오다. 마이클 G. 윌슨과 함께 공동 프로듀서 중 하나인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는 윌슨에 비해 젊지만 남성 판타지 성향이 강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여성 프로듀서가 올바로 이끌 수 있겠냐는 데 집중적으로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007 시리즈가 남성 위주라는 특수성이 문제다. 많은 본드팬들은 007 제작진이 여성과 게이로부터 인기 높은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한 것도 여성 프로듀서의 입김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드팬들은 여성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트와일라잇(Twilight)' 등과 같은 소녀들을 위한 영화로 둔갑시키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도 현재 007 제작진의 이상한 다니엘 크레이그 제임스 본드 만들기 프로젝트를 떠올리면 앞으로 이보다 더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이미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볼 때마다 그의 007 캐릭터가 남성 취향에 맞춘 터프하고 늠름한 캐릭터인지 아니면 여성들을 위한 크리스챤 그레이(Christian Gray) 타잎의 여성 취향에 맞춘 여성 판타지 캐릭터인지 분간이 안 되므로 - 사실 크레이그의 본드는 크리스챤 그레이 쪽에 훨씬 가까운 여성용 캐릭터로 보고 있다 - 바바라 브로콜리가 이런 부분을 앞으로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바바라 브로콜리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전히 망쳐놓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바바라 홀로 007 시리즈를 제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007 시리즈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언오피셜 '제임스 본드 비긴스' 트릴로지를 완성한 007 제작진이 '본드24'부터는 보다 전통적인 스타일로 옮겨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스카이폴'에서 새로운 M, Q와 머니페니를 등장시킨 이유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의 방황을 끝내고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려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상한 짓을 이제 그만하고 본래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본드팬들의 지적이 수년간 꾸준하게 나왔으므로 이러한 본드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을 어떻게 접목시킬 생각인지 알 수 없으므로 덮어놓고 반가워할 일도 아니다. 크레이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실없는 농담을 중얼거리게 한다거나 유머를 보강한답시며 유치한 아동용 유머를 잔뜩 집어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이 균형을 맞추는 소질이 별로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으므로 이번엔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을 살렸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면서 또 엉뚱하게 만드는 게 아니냔 걱정이 앞선다.
007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보면서도 어렸을 적 코기(CORGI)사가 만든 제임스 본드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이야기를 기회 올 때마다 하며 하드코어 본드팬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영화감독 샘 멘데스(Sam Mendes)에게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멘데스가 훌륭한 영화감독이란 점에는 이의 없지만 그가 007 시리즈의 적임자라는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멘데스가 이해하는 21세기 제임스 본드의 세계가 '스카이폴'이었다면 믿음은 커녕 굉장히 걱정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멘데스가 007 시리즈로 데려온 스크린라이터 존 로갠(John Logan)의 '본드24' 스크린플레이에 불만족해 새로운 스크린라이터를 고용해 대대적인 다듬기 작업을 벌였던 해프닝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줬다. '본드24' 제작진은 007 시리즈 적임자들로 뭉친 '드림팀'으로 보이지 않고 이름값 좀 하는 영화인들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든다고 모여서 엉뚱한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만약 멘데스가 007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하는 영화감독이라면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는 걸 굳이 부각시킬 필요가 없다. 자신을 본드팬이라 칭하는 사람들 중에 제임스 본드 완구를 가지고 놀았던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지금도 제임스 본드 다이캐스트 자동차 몇 개 정도는 다들 갖고 있다. 나와 같은 경우만 해도 제임스 본드 관련 콜렉티블이 몇 박스가 된다. 어디 가서 콜렉터라고 명함 내밀 수준은 못 된다고 생각하지만 수백 점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관련 콜렉티블을 갖고 있다. 이러한 본드팬들은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영화감독이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을 맡길 원하지 않는다. 팬보이는 팬들의 몫이지 영화감독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멘데스도 어렸을 적 추억이 있겠지만 007 시리즈 연출을 맡았다면 팬보이가 아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제임스 본드로써 모든 조건을 갖춘 듯했던 피어스 브로스난이 훌륭한 제임스 본드로 기억에 남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프로페셔널 영화배우라기보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신이 난 팬보이에 가까워 보였다는 점이 꼽힌다는 사실을 멘데스가 유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007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본드팬들에게 같은 팬보이처럼 접근하는 건 과히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전문가적인 프로페셔널함으로 본드팬들로부터 007 시리즈의 적임자라는 인정을 받도록 노력해야지 장난감 가지고 놀던 이야기로 본드팬들과 소통하려 해선 안 된다. 왠지 007 영화감독으로 자신이 없으니까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장난감 가지고 놀았던 이야기를 꺼내는 듯한 인상을 주기 딱 알맞다. 게다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스타 워즈'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골수팬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서 얄팍한 수법은 잘 통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결과지 애들 데리고 놀듯 하면 문제가 생긴다.
과연 멘데스와 '본드24' 제작진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이번엔 좀 제대로 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제작진이 워낙 우왕좌왕하는 듯 해서 '본드24'에서 안정을 되찾으며 어느 정도 정착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마치 007 제작진이 영화 서 너편 만들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접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단지 '본드24' 뿐만 아니라 앞으로 007 시리즈의 미래 자체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과거엔 주연배우가 교체되고 영화의 톤이 바뀌어도 여전히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으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부턴 그러한 기초적인 믿음부터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변화라는 미명 하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이렇게까지 훼손시켜 놓은 게 결정적인 원인이다. 오피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더이상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든 대가가 예상보다 혹독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본드24'를 좀 더 전통 007 시리즈 쪽으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로썬 제작 방향을 또다시 극에서 극으로 바꾸는 또다른 리부트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한다면 억지로나마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변화의 폭이 너무 큰 나머지 멀미가 날 수도 있다. 많은 본드팬들이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밝지 않아도 30년 이상 인연을 맺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미워도 내 새끼' 격이 돼버렸으니 앞으로 '본드24' 제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기로 하자.
70년대 초에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제임스 본드를 떠나고 로저 무어로 교체되었을 때엔 새로운 얼굴의 제임스 본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부턴 통하지 않는 얘기다. 주연배우가 나이가 들면 새로운 젊은 배우로 교체하고, 거기에 맞춰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네 번이나 바뀌었으니 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영화관에서 본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스카이폴(Skyfall)' 만큼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던 영화가 없었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던 2012년 개봉작 '스카이폴'은 유감스럽게도 맘에 드는 부분보다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았다. 50주년 기념작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그럴싸한 껍데기뿐인 영화였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로 스타트는 좋았는데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 빗나가는 듯 하더니 '스카이폴'에선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어디까지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일각에선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졸작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냐고 한다. 객관적으로 퀄리티만 놓고 따지면 일리 있는 주장이긴 하다. 007 시리즈의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영화보다 나아진 건 논할 가치가 없을 만큼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왜냐,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엔 원래 그런 줄 알고 봤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실망하고 자시고 따질 게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영화가 피어스 브로스난 시대보다 낫다는 데서 위안을 찾으라는 건 007 시리즈를 평가하는 기준이 얼마나 낮은지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데서 언제나 높은 스탠다드를 요구하는 꾸준한 본드팬들과 유행따라 왔다가 조금 있으면 사라질 사람들과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해 해둘 게 있다.
브로스난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비록 퀄리티는 한심했어도 007 시리즈라는 점이 의심되거나 불확실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가 맘에 들지 않은 적은 있어도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퀄리티는 낮았어도 정체성은 뚜렷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로 넘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퀄리티는 전보다 나아졌으나 그 대신 정체성이 매우 희박해졌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스카이폴'은 제임스 본드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만 제임스 본드일 뿐 완전히 다른 헐리우드 액션영화처럼 보였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아스톤 마틴 DB5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에만 잠깐 동안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씬이 차고 씬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아마 '스카이폴'이 유일할 듯 하다.
'카지노 로얄'로 산뜻하게 출발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바보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했다. 적어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유치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카이폴'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억지스러운 플롯, 우스꽝스러운 대사, 배트맨이 되고픈 007 등등 도저히 진지하게 보기 불가능한 영화였다. 겉으로 보기엔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였지만 약간 생각을 하면서 찬찬히 들여다 보면 '스카이폴'의 유치함은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 저리가라 수준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스카이폴'이 더욱 신경에 거슬렸다. 브로스난 시절엔 영화가 가볍고 유치해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스카이폴'에선 쥐뿔도 아닌 내용으로 심각한 척까지 하니 더욱 봐주기 어려웠다. 유치한 소리를 가벼운 분위기에서 하면 웃어넘길 수 있어도 유치한 소리를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늘어놓으면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이런 문제점은 진지한 영화를 제대로 만들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 또는 이런 문제를 바로 픽업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겨냥한 영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12세들을 위한 영화인지 12세들이 만든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웃지 못할 비판을 자주 듣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스카이폴'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처럼 '스카이폴'엔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스카이폴'을 로저 무어(Roger Moore) 주연의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 레벨로 보고 있다. '문레이커'도 당시엔 흥행에 대성공했던 영화이지만 가장 제임스 본드 시리즈답지 않은 영화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70년대말 '스타 워즈(Star Wars)'의 인기가 엄청났던 것까지는 인정하더라도 제임스 본드가 우주에 나가 광선총을 쏘는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선을 넘은 것이다. '스카이폴'도 마찬가지다. 요즘에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아무리 인기가 높다고 해도 대놓고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스타일을 모방한 건 선을 넘은 것이다. 유행을 따른다 해도 정도껏 센스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문레이커'와 '스카이폴' 모두 상업영화로썬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로는 꼽을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행 때문에 개성을 잃고, 흥행 때문에 정체성을 잃은 실패 케이스다.
007 제작진은 007 시리즈를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만들면서 흥행성공까지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한 것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007 제작진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생각 자체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게 문제다. 돈만 벌린다면 '스타 워즈'를 007 시리즈에 억지로 갖다 붙였던 것처럼 '스카이폴'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저질렀던 이들이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만드는 데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은 김이 좀 빠진다 싶으면 원작소설 타령을 하면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임을 확인시키는 수법을 지난 60년대부터 써왔으므로 조만간 또 그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젠 제임스 본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약속이 립서비스로만 들릴 뿐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까지만 해도 원작 타령을 그렇게 하더니 '스카이폴'에 와선 방향을 싹 바꾼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이언 플레밍이 쓴 소설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떠올리라고 하더니 '스카이폴'에선 배트맨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007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물과 달리 브로콜리 패밀리가 항상 제작을 맡기 때문에 브로콜리 패밀리 없는 007 시리즈는 상상할 수 없는 얘기다. 다른 시리즈물에선 상황에 따라 프로듀서부터 제작진 전체를 물갈이 할 수도 있지만 007 시리즈는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감독, 주연배우는 계속 바뀌어도 프로듀서는 바뀌지 않는다. 007 영화 시리즈는 대물림을 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다. 따라서 제임스 본드다운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브로콜리 패밀리에 대한 믿음이 가시기 시작했다면 문제가 커진다.
그들의 비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들도 눈에 띈다. 공동 프로듀서 중 하나인 마이클 G. 윌슨(Micahel G. Wilson)은 이미 70대에 접어들었다. 윌슨은 오래 전부터 007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베테랑 중 하나이지만 그도 이젠 70대가 됐다. 그래도 아직 70대 초반이므로 당분간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3년마다 한 편 꼴로 나오는 007 시리즈에 언제까지 프로듀서로 머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윌슨의 아들 데이빗과 그레그가 007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고 있지만 007 시리즈를 물려받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언젠가는 데이빗과 그레그가 물려받겠지만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007 시리즈를 맡기는 건 피하고 싶은 씨나리오다. 마이클 G. 윌슨과 함께 공동 프로듀서 중 하나인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는 윌슨에 비해 젊지만 남성 판타지 성향이 강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여성 프로듀서가 올바로 이끌 수 있겠냐는 데 집중적으로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007 시리즈가 남성 위주라는 특수성이 문제다. 많은 본드팬들은 007 제작진이 여성과 게이로부터 인기 높은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한 것도 여성 프로듀서의 입김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드팬들은 여성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트와일라잇(Twilight)' 등과 같은 소녀들을 위한 영화로 둔갑시키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도 현재 007 제작진의 이상한 다니엘 크레이그 제임스 본드 만들기 프로젝트를 떠올리면 앞으로 이보다 더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이미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볼 때마다 그의 007 캐릭터가 남성 취향에 맞춘 터프하고 늠름한 캐릭터인지 아니면 여성들을 위한 크리스챤 그레이(Christian Gray) 타잎의 여성 취향에 맞춘 여성 판타지 캐릭터인지 분간이 안 되므로 - 사실 크레이그의 본드는 크리스챤 그레이 쪽에 훨씬 가까운 여성용 캐릭터로 보고 있다 - 바바라 브로콜리가 이런 부분을 앞으로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바바라 브로콜리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전히 망쳐놓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바바라 홀로 007 시리즈를 제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007 시리즈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언오피셜 '제임스 본드 비긴스' 트릴로지를 완성한 007 제작진이 '본드24'부터는 보다 전통적인 스타일로 옮겨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스카이폴'에서 새로운 M, Q와 머니페니를 등장시킨 이유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의 방황을 끝내고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려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상한 짓을 이제 그만하고 본래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본드팬들의 지적이 수년간 꾸준하게 나왔으므로 이러한 본드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을 어떻게 접목시킬 생각인지 알 수 없으므로 덮어놓고 반가워할 일도 아니다. 크레이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실없는 농담을 중얼거리게 한다거나 유머를 보강한답시며 유치한 아동용 유머를 잔뜩 집어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이 균형을 맞추는 소질이 별로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으므로 이번엔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을 살렸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면서 또 엉뚱하게 만드는 게 아니냔 걱정이 앞선다.
007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보면서도 어렸을 적 코기(CORGI)사가 만든 제임스 본드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이야기를 기회 올 때마다 하며 하드코어 본드팬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영화감독 샘 멘데스(Sam Mendes)에게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멘데스가 훌륭한 영화감독이란 점에는 이의 없지만 그가 007 시리즈의 적임자라는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멘데스가 이해하는 21세기 제임스 본드의 세계가 '스카이폴'이었다면 믿음은 커녕 굉장히 걱정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멘데스가 007 시리즈로 데려온 스크린라이터 존 로갠(John Logan)의 '본드24' 스크린플레이에 불만족해 새로운 스크린라이터를 고용해 대대적인 다듬기 작업을 벌였던 해프닝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줬다. '본드24' 제작진은 007 시리즈 적임자들로 뭉친 '드림팀'으로 보이지 않고 이름값 좀 하는 영화인들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든다고 모여서 엉뚱한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만약 멘데스가 007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하는 영화감독이라면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는 걸 굳이 부각시킬 필요가 없다. 자신을 본드팬이라 칭하는 사람들 중에 제임스 본드 완구를 가지고 놀았던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지금도 제임스 본드 다이캐스트 자동차 몇 개 정도는 다들 갖고 있다. 나와 같은 경우만 해도 제임스 본드 관련 콜렉티블이 몇 박스가 된다. 어디 가서 콜렉터라고 명함 내밀 수준은 못 된다고 생각하지만 수백 점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관련 콜렉티블을 갖고 있다. 이러한 본드팬들은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영화감독이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을 맡길 원하지 않는다. 팬보이는 팬들의 몫이지 영화감독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멘데스도 어렸을 적 추억이 있겠지만 007 시리즈 연출을 맡았다면 팬보이가 아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제임스 본드로써 모든 조건을 갖춘 듯했던 피어스 브로스난이 훌륭한 제임스 본드로 기억에 남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프로페셔널 영화배우라기보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신이 난 팬보이에 가까워 보였다는 점이 꼽힌다는 사실을 멘데스가 유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007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본드팬들에게 같은 팬보이처럼 접근하는 건 과히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전문가적인 프로페셔널함으로 본드팬들로부터 007 시리즈의 적임자라는 인정을 받도록 노력해야지 장난감 가지고 놀던 이야기로 본드팬들과 소통하려 해선 안 된다. 왠지 007 영화감독으로 자신이 없으니까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장난감 가지고 놀았던 이야기를 꺼내는 듯한 인상을 주기 딱 알맞다. 게다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스타 워즈'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골수팬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서 얄팍한 수법은 잘 통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결과지 애들 데리고 놀듯 하면 문제가 생긴다.
과연 멘데스와 '본드24' 제작진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이번엔 좀 제대로 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제작진이 워낙 우왕좌왕하는 듯 해서 '본드24'에서 안정을 되찾으며 어느 정도 정착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마치 007 제작진이 영화 서 너편 만들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접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단지 '본드24' 뿐만 아니라 앞으로 007 시리즈의 미래 자체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과거엔 주연배우가 교체되고 영화의 톤이 바뀌어도 여전히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으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부턴 그러한 기초적인 믿음부터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변화라는 미명 하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이렇게까지 훼손시켜 놓은 게 결정적인 원인이다. 오피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더이상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든 대가가 예상보다 혹독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본드24'를 좀 더 전통 007 시리즈 쪽으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로썬 제작 방향을 또다시 극에서 극으로 바꾸는 또다른 리부트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한다면 억지로나마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변화의 폭이 너무 큰 나머지 멀미가 날 수도 있다. 많은 본드팬들이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밝지 않아도 30년 이상 인연을 맺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미워도 내 새끼' 격이 돼버렸으니 앞으로 '본드24' 제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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