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3일 화요일

'007 스펙터' - 다니엘 크레이그의 네 번째 건배럴 씬도 좀 이상했다

'007 스펙터'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점은 건배럴 씬이 원위치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건배럴 씬(Gun Barrel Scene)은 007 시리즈 1탄부터 20탄까지 영화가 시작하는 맨 처음에 등장했으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시대에 들어서 제작진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꾼 바람에 많은 본드 팬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어떻게든 색다르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007 제작진이 잔머리를 굴린 듯 했으나,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을 건드렸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007 스펙터' 개봉 직후 건배럴 씬이 어디에 배치되었는가를 묻는 본드팬들의 질문을 007 시리즈 관련 사이트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만 봐도 다수의 본드팬들이 건배럴 씬의 위치 변경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반 영화관객들에겐 건배럴 씬의 위치 변경이 사소한 문제로 보일 수 있겠지만, 본드팬들은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전통이 깨진 점을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많은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가 흐르는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하지 않으면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007 스펙터'는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첫 번째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영화이다.

일단 건배럴 씬이 다시 원위치를 찾아간 것은 환영할 만하다. 어쩌다 이젠 건배럴 씬의 위치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나 하는 생각을 하면 화가 치밀지만, 어찌됐든 이제서라도 건배럴 씬을 제위치에 배치한 건 잘한 일이다.

또한, 건배럴 디자인도 클래식 버전과 비슷해졌다. 건배럴 씬의 위치가 바뀐 것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상당히 달라진 것도 맘에 들지 않았는데, '007 스펙터' 버전 건배럴 씬은 올바른 위치로 되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본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007 스펙터'의 건배럴 씬에서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이상하게도 본드가 총을 쏘자마자 화면이 어두워졌다. 화면의 오른쪽에서 걸어나온 본드가 정면을 향해 돌아서면서 총을 쏜 다음 위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본드가 총을 쏘자마자 화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며, 본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까지 어두워진 이후에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아니, 본드가 조명 담당 스태프를 쏘기라도 한건가?


아니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아틀란타 연설회장 조명 담당이 '007 스펙터' 건배럴 씬 조명을 맡았던 걸까?


그래도 어찌됐든 건배럴 씬이 영화의 맨 처음으로 돌아간 건 환영이다.

그.러.나...

'007 스펙터'가 건배럴 씬으로 시작하는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기 때문일까?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다.

문제는 MGM과 콜롬비아 로고가 나오는 씬에서부터 제임스 본드 테마가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007 시리즈는 영화사 로고가 나올 때엔 제임스 본드 테마가 흐르지 않으며, 건배럴 씬이 시작하는 순간 "타탓 단!" 하면서 제임스 본드 테마가 시작한다. 건배럴 씬이 시작하면서 "타탓 단!" 하며 제임스 본드 테마가 울려퍼지는 순간이 본드팬들에겐 가장 익사이팅한 순간 중 하나다. 그러나 '007 스펙터'는 영화사 로고가 나올 때부터 제임스 본드 테마가 배경에 흐르는 바람에 김이 많이 빠졌다. 건배럴 씬이 시작하면서 "타탓 단!" 하는 순간에 포인트를 주면서 관객이 화면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영화사 로고 씬부터 제임스 본드 테마가 흘러나오다가 건배럴 씬으로 넘어가다 보니 제임스 본드 영화가 시작한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김이 다 빠진 상태에서 흐지부지하게 건 배럴 씬으로 넘어갔다. 007 제작진이 건배럴 씬의 역할과 중요성을 모르거나 과소평가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편, 다니엘 크레이그는 매 영화마다 새로운 건배럴 씬을 만든 유일한 제임스 본드 배우이다. 숀 코네리(Sean Connery)와 로저 무어(Roger Moore)는 각각 2개의 건배럴 씬을 만들었고, 나머지 배우들은 1개의 건배럴 씬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는 매 영화마다 건배럴 씬을 새로 만들었다.

이번 '007 스펙터' 건배럴 씬은 크레이그의 네 번째 버전이다.





그렇다면 매 영화마다 건배럴 씬을 새로 만드는 게 007 시리즈의 'NEW NORMAL'로 자리 잡은 걸까?

한마디로, 매우 쓸데 없는 짓이다. 007 제작진이 얼마나 하찮은 것으로 주목받으려 노력하는지가 드러났을 뿐 007 시리즈에 도움이 된 건 하나도 없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007 제작진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꾸는 등 건배럴 씬으로 장난을 친 것부터가 한심스럽게 보인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번엔 건배럴 씬이 제 위치로 돌아갔는가?", "이번엔 건배럴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었나?" 등이 본드팬들의 최고 관심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007 제작진의 목표였는지 궁금하다. 관심을 끌 거리가 그렇게도 없어서 이 따위 것으로 관심을 끌려 했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새롭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을까?"와 "그래도 여전히 007 시리즈여야 한다"는 양쪽에 양다리를 걸치고 불필요할 정도로 고민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남긴 얼마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4개의 건배럴 씬이다.

007 제작진은 앞으로 건배럴 씬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꿔서도 안 되고, 매 영화마다 건배럴 씬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다. 건배럴 씬은 영화배우가 교체될 때마다 새로 만들면 되지 매 영화마다 새로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한마디로 돈 낭비,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한 번 만든 건배럴 씬을 이후 영화에 계속 사용해도 문제될 게 전혀 없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는 첫 영화부터 건배럴 씬이 비정상이었므로 매번 건배럴 씬을 새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치더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결론적으로, 건배럴 씬으로 불필요한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건배럴 씬으로 유별을 떨려 하지 말고 예전부터 해오던 대로 평범하게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007 스펙터'의 건배럴 씬이 썩 맘에 들지 않았으므로 만약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온다면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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